비건 셰어하우스 만들기 6화
마음에 드는 집에 가계약금을 걸어놓고도, 매물을 계속 찾아봤어요. 매일 밤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며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어요. 불안한 마음을 달래 보려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의문만 생겨났습니다.
이 집, 정말 괜찮은 걸까?
집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지하철을 1시간씩 타고 가던 비건 식당에 이제는 슬리퍼를 신고 갈 수 있다니, 설렘이 가득했어요. 남향 창문은 베란다에서 채소 키우기에 완벽했고, 셰어하우스로 운영하기에 부담 없는 가격까지. 모든 게 잘 맞았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불안했어요.. 은행을 3일 동안 10군데 넘게 돌며 상담했지만, 다 거절당했어요. 은행 창구에 앉을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담당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는 순간 이미 결과를 알아차릴 수 있었죠. "다가구라서 대출이 힘들어요"
너무 많이 거절을 당하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혹시 이 집은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종교는 없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우주가 나에게 반대의 신호를 보내는 건 아닐까 하고요.
임대인도 변덕이 있었죠. “빨리 입주할 사람 구해요.” → “아, 입주일 좀 미뤄야 할 수도 있어요.” → “다시 예정대로요.” 너무 변덕스러운 사람은 아닐까 걱정되었어요. 실제로 살게 되어서도 이랬다 저랬다 하면 어떡하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시그널도 많았는데도요.
집주인 중개인은 덩달아 재촉했죠. “대기자 많아요. 안 하시면 다른 분께 넘길게요.” 철저히 집주인 편만 들겠다는 단호함이 제 불안을 더 키웠죠. 그리고 그 재촉에 떠밀려서 하겠다고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진짜 괜찮은 거 맞을까?"
불안할수록 더 찾아봤어요.
다른 집을 좀 더 찾아봐야 하나? 아니야, 이 집을 계속해보자. 내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더 좋은 매물을 찾아서 빨리 갈아타는 게 낫지 않을까? 맘속에서는 갈팡질팡. 손가락 끝이 아플 정도로 검색을 반복했죠. 매일 한숨이 늘어났습니다.
낮에는 부동산 어플을 둘러보고, 밤에는 계약서 양식을 뒤적거렸죠. 다가구, 대출, 보증보험, 최우선변제, 확정일자... 찾아봐도 끝도 없이 모르는 게 계속 나오는 거예요. 눈물이 났어요. 내가 모르는 작은 디테일 하나가 내 미래를 망칠 것만 같았어요.
비건 셰어하우스라는 꿈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그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어요. 부모님께 제일 먼저 조언을 구했는데, 후회했어요. "네가 셰어하우스를 만든다고? 왜 일을 만드니", "안 돼. 위험해. 하지 마." 내가 원했던 건 지지와 조언이었는데, 매일 밤 통화로 논쟁을 했죠. 전화를 끊고 나면 항상 눈가가 촉촉해졌어요.
전문가를 찾아 간 자리에서 "부모님이랑 잘 상의해 보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제가 좀 동안이긴 해요 ㅎㅎ 그래도 외모로만 보고 전문가 찾으러 온 사람에게 보호자랑 상의하라니? 만약 제가 부모님이 없었다면 어쩌시려고. 공공기관에서까지 이런 소리를 듣는 게 더 속상했어요.
이 넓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네. 홀로 된 기분, 느낌이 들었어요.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그때, 외숙모와의 짧은 통화가 있었어요.
"괜찮은 것 같은데?"
그 한 마디에 불안이 사라졌어요. 외숙모는 공인중개사셨어요. 외삼촌 병간호 중이셔서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짧게 통화를 했어요. 그저 집이 몇 평인지, 방은 몇 개 인지, 다가구라는 얘기를 들으시고는 다른 집은 월세인지를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분석하듯 말씀하셨죠.
"융자가 없고, 시세 대비 가격 괜찮고, 집주인이 대출이 많은 것도 아닌 것 같고. 괜찮은 것 같은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순식간에 편해졌어요. 마치 걸어 다니는 시체처럼 겨우겨우 삶을 지탱하다, 좀비치료제를 맞고 사람이 된 것처럼, 회색 빛이었던 세상이 다시 컬러로 돌아온 것처럼 생기를 되찾았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제 판단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조카의 특별한 선택을 존중해 주는 외숙모의 태도가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통화를 끊고 청계천을 걸었어요. 영하의 바람이 볼을 스쳤지만, 그 차가움마저 상쾌하게 느껴졌어요. 발걸음이 가벼웠고, 오랜만에 깊은숨을 쉴 수 있었어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작은 확신 하나가 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거예요. 비건 셰어하우스를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설렘이 나를 다시 살아있게 만들었어요.
혼자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아요. 불안은 혼자 고민할수록 커져요.
중요한 건, 내 결정을 뒷받침해 줄 단 하나의 확신이에요. 그리고 그 확신은 "내 편"의 한마디에서 시작될 수 있어요.
아무리 내 편이 없는 것 같아도, 포기하지 마세요. 최대한 많이 도움을 요청하세요.
딱 한 명만 있으면 돼요. 딱 한 마디만 있어도 돼요.
그 한 마디가 때론 나를 지탱하는 작은 확신이 돼요. 흔들리던 내 세상에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줄 거예요.
'괜찮은 것 같은데?'
그 말 하나만으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제 선택을 믿을 수 있게 되었어요. 비건 셰어하우스를 향한 여정에서 이 작은 확신이 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이제 저는 이 확신을 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