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네
JTBC에서 방영한 <효리네 민박>에서 이상순의 모습은 참으로 다정하다. 윗층에서 이효리가 유리를 깨트리자 아래층에서 민박객과 이야기하던 이상순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잠깐만요."하며 침착한 말과는 다르게 재빠르게 이효리를 향해 달려갔다. 놀랐을 이효리에게 괜찮냐는 걱정과 괜찮다는 안정을 동시에 주는 이상순의 모습은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상순에게 의지하는 건 건 당연했다(나도 이상순을 오빠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 집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 무언가 필요할 때 이효리는 이상순을 불렀다. "오빠!", "오빠!!", "오빠아아아!!". 그 오빠의 부름에는 '당신이 지금 필요해'라는 필요성의 측면을 넘어 '당신이 없으면 안 돼'라는 뜻이 담겨 있는 사랑의 언어이다.
하루에 수십 번을 부르는 이효리에게 이상순은 "이제 오빠 하루에 20번만 불러."라고 장난스럽게 받아친다. 연하의 여성이 연상인 남성을 부를 때 가장 좋은 호칭은 '오빠'이기에 이름 대신 부르는 친밀하고 애정의 표식이 오빠이다. 나도 오랫동안 연애를 하며, 또 결혼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단연 오빠다. 그 호칭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데, 최근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
26개월이 된 아들은 요새 말이 부쩍 늘었다. 아들이 말하지 못할 때는 일방적으로 내가 말하는 입장이었는데 점점 대화가 되고 있다. 올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더 늘었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했어?"라고 물어보면 "뽀로로" 영화를 봤다고 대답하거나 어린이집에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이야기하기도 한다. 밥 먹었냐는 질문에는 이전 같으면 대답도 안했는데 이제는 먹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특히 밥을 먹다가 본인이 배부르면 그릇을 내쪽으로 밀며 "배부어(배불러)" 하고 자기 의견을 표현한다.
아이들은 마치 '스펀지'와 같다는 말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진짜 외부의 그 무엇들을 습득하고, 습득한 걸 따라한다. 특히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그날 자신이 새로운 단어를 들었던 것을 입밖으로 반복적으로 내뱉으면서 복습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나둘 아는 단어가 많아지고 발음도 정확해지고 있는 듯하다. 발음을 하지 못하는 단어들은 자신이 발음할 수 있는 단어로 치환하여 내뱉었다. 예를 들면 '자동차'는 '짜', '여기'는 '에떼', '물고기'는 '무빠'라는 식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이 들으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부모는 안다. 마치 그게 둘만 알 수 있는 사인인냥 기분이 좋기도 했다. 왜냐면 나만 알 수 있었으니까.
하다하다 이제는 와이프가 나를 부르는 호칭인 '오빠'도 따라하기에 이르렀다. 와이프가 멀리서 "오빠아!"하고 부르면, 메아리처럼 아들이 "옼빠!!"하고 따라 부른다. 처음 그걸 들었을 때는 웃겨자빠지는 줄 알았다. "(웃으며) 내가 왜 너 오빠야. 아빠지이!"하고 알려주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아빠?"하며 수정하는 척을 한다. 이내 또 오빠! 라고 할 때 나도 장난기가 발동해 함께 장난치며 논다. 그러나 와이프가 오빠라고 부를 때는 차이가 있는데, 그때는 간담이 서늘하다. '빨랫감을 빨래통에 안넣어뒀나?', '밥 먹고 식세기에 안 넣어뒀나?' 하고 재빠르게 잘못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부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대답의 어투는 최대한 상냥하게, 이상순보다 더 다정하게 해야 한다.
나에게 하루는 매일 반복되는 삶이라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았는데, 아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커가면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또 자기의 세계를 점점 더 넓혀가기 위해 습득하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