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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Jul 15. 2022

장난감에서 흘러나오는 동요를 모두 외운다는 것

동요의 덫

'수능 금지곡' 같은 동요


나는 어렸을 적 동요를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 부모님이 잘 안 들려준 것인지, 내가 싫어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들이 동요를 흥얼거릴 때 '저건 무슨 노래지?' 했던 기억이 많다. 그랬던 내가 점점 성인이 되면서 거꾸로 동요가 좋아지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합창을 하는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울컥해지는 기분도 든다. 올해 2월 아들이 태어나고 장난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는 않지만, 하나 둘 쌓이다 보면 동요와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장난감에는 기본적으로 동요가 탑재돼 있기 때문이다. 


5개월 차 아들과 매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장난감에서 흘러나오는 동요의 멜로디와 가사, 다음 곡은 무엇인지 등 모두 외울 수 있다. 


와이프가 아들의 장난감으로 유명한 '튤립 사운드북'을 구매했다(광고 아님). 튤립 사운드북은 소위 '육아계의 이모님'으로 불리는데, 음, 뭐랄까. 이거 하나만 있으면 부모들이 30분 이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해방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각종 동요가 삽입돼 있어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현란한 빛이 나오면서 신나는 동요가 흘러나온다. 장난감을 쥐고 흔들면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게 '퐁퐁'하는 부수적인 소리도 나온다. 이것이 발단이었다. 


아직 어린 아들은 이 장난감을 직접 손으로 쥐고 있을 수가 없어서, 아들을 내 품에 앉히고 튤립 장난감을 눈높이에 맞춰줘야 한다. 아들이 질릴 때까지 이걸 들고 놀아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귀에 익게 되고 마치 '수능 금지곡'처럼 언제 어느 때나 삽입된 동요를 흥얼거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청소할 때, 젖병과 장난감 등을 닦고 열탕 소독할 때, 유아차에 아들을 태워 산책할 때, 심지어 자려고 누웠는데 첫 번째 곡이 떠올라 속으로 끝까지 다 불러야 속이 시원한 느낌이다.


어느 날은 장난감 없이 맨몸으로 아들과 놀아주다가 체력의 한계를 느껴 튤립을 꺼내 아들과 놀아주고 있을 때였다. 어김없이 귀에 익은 멜로디와 가사가 흘러나와서 나는 따라 불렀다. 첫 번째 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다음 곡을 입 밖으로 흥얼거렸다. 그다음 곡도, 또 그다음 곡도 마찬가지였다.  


"쏙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내 방울(내 방울). 쏙쏙쏙 방울 빙글빙글 방울 여기저기..."

- 동요 <비눗방울> 중


"밖으로 나가 놀자! 시원한 바람 솔솔솔~밖으로 나가 놀자! 해님은 방긋. 그네뛰기 미끄럼은..."

- 동요 <밖으로 나가 놀자> 중


"아기 오리가 도시락을 가지고 소풍을 가요! 짠 뒤뚱, 짠 뒤뚱, 돌다리를 건너서 언덕을 넘으면..."    

- 동요 <오리 가족 소풍> 중


내가 흥얼거리던 소리를 듣던 와이프는 곡 순서도 다 외운 거냐며, 박장대소를 했다. 이 장난감뿐만이 아니다. 육아를 하는 부모들은 모두 알겠지만,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에는 대부분 따라 부르기 쉬운 동요나 노래들이 삽입돼 있다. 튤립 장난감 말고도 모빌과 같은 다른 장난감의 멜로디와 순서를 모두 외워서 이제는 장난감 대신 내가 불러주기도 한다.


부부가 한 팀이 되어 육아를 함께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전에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육아까지 하려고 하니 사실 체력이 따라주질 않았다. 퇴근하고 바로 학교 수업을 듣고 집에 들어가면 아들은 벌써 자고 있었다. 주말도 학업과 관련된 활동을 하다 보니 아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현저히 적었다. 그래서 와이프가 독박 육아를 하다시피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서 회사에 육아휴직을 1년 신청했다. 육아는 혼자의 몫이 아니라 부부가 한 팀이 돼서 함께 하는 것이라는 평소 신념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요새는 아빠 육아휴직이 제도적으로도 점차 개선되고 있는 추세다. '3+3 육아휴직제'와 같이 자녀가 태어난 지 12개월 이내에 부부가 동시 또는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첫 3개월에 대해서 부모 각각 육아휴직 급여를 기존보다 상향해서 지급하기도 한다. 직장 내 분위기 면에서도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도 최근 들어 권장하고 있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 아마 직장 문화일 것이다. 눈치를 주는 것을 넘어 불이익을 받을까 봐 쓰지 못하는 남성 또는 여성들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속에서 올라오는 동요를 끝까지 불러야만 털어버릴 수 있는 동요의 덫에서 행복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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