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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Apr 03. 2023

<보스턴 교살자>를 통해 본 부부생활

하고 싶은 것을 밀어주는 용기

1960년대 미국 보스턴 일대에서 여성 13명이 살해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실화 영화가 디즈니+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는 개봉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나 봉준호 감독의 2003년 개봉작 <살인의 추억>을 구상할 때, 두 감독은 이 사건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고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는 보스턴 살인 사건은 누가 '범인'인가에 주목을 하기보다 또 누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얼마나 죽어야 

기사가 되나요


지역 신문 '레코드 아메리칸'의 여성 기자 로레타 매클로플린(키라 나이틀리)은 자녀 셋을 키우며, 생활부 소속으로 백인 남성들이 굵직굵직한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것과 달리, 새로 나온 토스터기를 사용하고 후기를 적는 등 능력은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위치에 놓여 있다. 그러던 중 혼자 사는 여성들이 집에서 한 명, 한 명 살해된다는 소식을 접한 로레타는 신문 국장에게 달려가 이 사건을 취재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백인 남성인 국장은 죽은 여성들은 "별볼일 없는 사람들(nobodies)"이라며 로레타에게 이런 일들은 남자들이 이미 하고 있으니 나서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죽어야 되냐며, 로레타는 국장에게 항의와 설득을 하였고, 결국 사건을 취재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취재하는 과정도 성차별과 맞서 싸워야 했다. 로레타는 진실을 쫓기 위해 묵묵히 견디며 살인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후 피해자에게 일명 시그니처를 남겼는데, 목에 나비모양으로 스타킹이나 스카프를 묶어둔 것을 로레타는 짚어낸다. 이후 신문사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신문 1면 톱 기사로 보도했다. 그제서야 사건 보도 경력자인 여성 기자 진 콜(캐리 쿤)을 합류 시키며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지원한다.


남편의 역할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것은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은 누구고 유력 용의자가 누구인지가 아니었다. 로레타라는 여성이 진정으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 더 나아가 응원을 해줄 수 있는 것과 같은 태도에 주목해서 영화를 감상했다.


로레타는 워킹 맘(Working Mom)이다. 남편 제임스 맥로린(모건 스펙터)이 있지만, 1960년 대 미국은 여성 차별이 극심했던 시기다. 여성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 1920년이므로, 불과 4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인종 차별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했던 시기였다. 


처음에 남편은 로레타가 일하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녀를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에 지치고 결국 불만을 직접적으로 쏟아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누나의 대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남편의 누나는 로레타가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을 험담하고, 남편은 이에 동조한다. 이러한 대화를 로레타가 듣게 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 본인이 발견하고자 했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속으로 삭힐 뿐이다.


살인 사건은 끊임없이, 밤낮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온 가족이 모인 새해 첫날에도 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진 콜에게 전화를 받은 로레타는 뛰쳐나간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장모님은 누가 모셔다 드리고?"하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또한 자녀의 등교를 로레타가 책임지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살인 사건 취재를 맡은 이후로 로레타는 이를 제임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는 '원래' 자신이 담당하던 일이 아니었으므로 이를 기분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추측을 해본다면, 로레타는 살인 사건 취재를 맡기 전부터 생활부 소속 기자로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자녀 등교, 육아, 부모 돌봄 등을 도맡아왔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럴 때 남편으로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일까? 


로레타는 결국 제임스와 이혼을 했다고 한다. 제임스는 '일하는' 로레타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레타도 그 당시 백인 남성들처럼 마음껏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뽐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러지 못했다. 


진정한 피해자


<보스턴 교살자>는 묻는다. 왜 어두운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 택배를 받을 때 등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 하는지, 여성 13명이 끔찍하게 살해되고, 유력한 용의자가 있었음에도 왜 미제 사건으로 남아야 했는지. 영화 속 신문 국장의 말처럼 살해당한 사람이 "별볼 일 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또 일하는 워킹맘들이 겹겹이 쌓인 성차별의 벽을 깨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음에도 이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다못해 국가가 해주지 못하면, 가까운 남편과 같은 가족은 지지해줄 수는 없었는가?


단순히 <보스턴 교살자>는 살인으로 인해 물리적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이미 물리적인 살인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적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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