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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세준 Apr 20. 2023

소리를 내지 않는 생활 중입니다

아들의 잠이 우선입니다

딱히 수면 교육을 돈 주고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육아와 관련된 온갖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에서는 잠을 잘 못자는 아기들을 대상으로 거금의 돈을 받고 수면 코칭을 해주는 업체들이 즐비하게 소개돼 있다. 하나의 '시장'인 것이다. 아기가 잠을 잘 못 자고 뒤척임이 심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걱정될 수밖에 없다. 아기는 먹고, 싸고, 자고(쓰리고)만 잘해도 충분한데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상황이 심각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기를 키우는 입장이다보니 주변 지인이나 심지어 모르고 지내던 사람과도 육아라는 키워드로 대화가 연결된다. 그럼 당연하게 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아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그 중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삼요'다. "아기는 잘 먹어요?", "아기는 잘 싸요?", "아기는 잘 자요?". 나도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들은 정말 잘 먹고, 기저귀가 넘칠 정도로 잘 싸는데, 잘 자는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다.


거의 신생아 때부터 아기 방을 꾸며주고, 분리 수면을 선택했다. 홈캠을 설치해서 스마트폰과 연동시켜 어플로 아들의 모습을 24시간 관찰했다. 신생아 때야 배고파서 2~3시간마다 깨는 게 당연했지만, 점점 개월 수가 지나갈수록 잠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잠을 잘 자야 키도 쑥쑥 크고 건강해진다는 어떤 강박에 시달리는 것처럼. 그래서 매일 12시간 이상씩 아들을 재우려고 나와 와이프는 고군분투했다.


먼저 예민해서 잘 못잔다는 생각에 어두운 방을 더 어둡게 만들기 위해서 암막 커튼뿐만 아니라 창문에 천을 덧대었다. 불을 끄면 그야말로 암흑이다. 또 아들이 잘 때는 모든 소리를 제거하고자 했다. 부부 간 대화도 소곤소곤. 그러다 보니 밥 먹을 때는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처럼 조용히 밥만 먹기도 한다. 밥을 다 먹고 뒷정리를 할 때도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를 최소화하고자 모든 동작은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인다. 그러다 실수로 큰 소리라도 나면 전쟁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원인제공자를 죽일듯이 째려본다. 집에서 걸을 때도 몰래 잠입한 도둑처럼 살금살금. 인기척 없이 걷다보니 와이프와 갑자기 마주쳐 놀라 자빠질 뻔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소리없이 하는 생활의 최절정은 호캉스를 갔을 때였다. 와이프와 나는 아들을 따로 재우는 생활이 익숙해져 숙소를 예약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것이 구조다. 구조라고 했지만, 사실 방이 따로 있는지를 살핀다. 왜냐하면 아들을 따로 재우고 와이프와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부분 호텔은 방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방이 따로 있진 않고 침대와 거실이 칸막이로 분리돼 있는 곳을 주로 선택한다. 아들을 먼저 침대에 재운 뒤 거실에서 와이프와 티브이를 보며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집에 티브이가 없다보니 오랜만에 티브이를 보려고 했는데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이 깰까 봐 와이프와 나는 급기야 볼륨을 0으로 맞추었다. 당시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을 보고 있었는데 소리없이 화면만 둘이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소리 없이 티브이를 보다 보니 이게 뭐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오히려 집중하게 되었다. 출연진의 입을 쳐다보고 자막을 주의깊게 보게 됐고, 맥락을 상상하면서 보게 되었다. 소리를 듣지 않고 예능을 보면 재미가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보다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결국 한 편을 그렇게 소리없이 다 본 와이프와 나는 서로를 보고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들이 잠을 잘만 잔다면 와이프와 나는 뭐든 할 것 같아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다행히 이렇게 노력을 해서 그런지 아들이 잘 자고 있어 고맙다. 오후 4~5시만 되면 눈을 미친듯이 비비고, 졸려서 짜증부리고 하다가 저녁 6시~7시 사이면 잠에 든다. 그리고 아침 5시 30분 ~ 6시 30분에 일어난다. 중간에 깰 때도 간혹 있지만 바로 다시 잠에 빠지기도 하며, 아예 깨지 않고 쭉 잘 때가 더 많다. 낮잠은 하루에 1시간 30분에서 많게는 2시간까지 자니 약 13시간~14시간은 자고 있다.


아들이 푹 자준다면, 와이프와 나는 뭐든 할 준비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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