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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월 Jan 11. 2024

오늘은 좋은 날이였어

치열한 추첨의 현장

찬 기운이 스물스물 몸속으로 파고들 기세다. 이대로면 바로 목이 붓고 코가 막히고 비염이 심해질 것이다. 몸에 열을 내기 위해 아직은(?) 계획한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말 질긴 인연인 런닝머신과의 만남은 오늘도 내몸에 열을 내주고 하루의 소소한 목표달성을 이루게 해준다.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중에 한가지는 컨디션이 좋은 날보다 그저그런 날이 많아서라고 해두자. 다른 이유까지 갖다 붙이자면 두꺼운 옷이 거추장스럽게 무겁고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일이 대부분이며 장갑으로도 찬기운을 다 막아내지 못할때는 울이라는 녀석이 친해질 수 없는 관계로 느껴진다.


겨울에 더욱 더 운동에 열을 올리는 이유이다.


피씨를 들여다 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꽉 찬 일정은 "운동을 하고 있으니 체력이 좋아지고 있어" 보상심리로 다가오기도 한다. 미세하게 붙었을 근육을 상상해보며 왠지 힘이 나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사실은 운동을 해서 피곤한건지 체력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건지 알 수 없는 일이지 힘을 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막둥이의 취학통지서를 받고 "축하드립니다"라는 통장님의 말에 기분좋았던 아침이 떠오른다. 예비소집일에 일정이 있어서 2차 예비소집일에 참석 후 돌봄교실 신청까지 마치니 정신 바짝 차려서 돌봄교실 추첨의 영광을 안으리 굳게 다짐해 본다.


추첨시간까지 차라리 여유가 없었던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떨리고 초조한 시간들이 더디게 흐른다. 제발 오늘만큼은 똥손이 아닌 금손이길 염원하며 나의 오른손에 모든 기를 집중시켜야 하는 날이므로 남편에게 일찍 퇴근할 것을 요청했다.


한 시간 남짓 한 시간동안 남은 에너지는 추첨의 오른손에게 쓰기 위해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제발"을 백만번 외치며 두 손을 꽉잡고 심장소리 점점 빨라져 온다. 마인드 컨트롤이 시작된다


'다 잘될거야. 걱정마. 모든 일은 잘 될거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다시 한번 화이팅을 외쳐보며 찬바람이 세어 들어와 컨디션을 저하시키는 일이 없도록 롱패딩의 지퍼를 단단히 채우고 길을 나선다.


시작 시간보다 20분 빨리 도착했는데 오늘이 추첨일인걸 상기시켜주는 학원들의 전단지와 사은품을 나눠주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다. 3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간신히 진정시켰던 심장이 더 심하게 나대기 시작하며 긴장의 끈이 조여오고 있다.


2차 예비소집에 참석했기 때문에 돌봄 추첨 순번이 뒷번호인데 앞사람들에게 행운이 다 가진 않겠지 걱정 한가득 안고 53번째 추첨을 기다리고 있다.


'제발 뒷사람의 행운도 남겨주세요. 제발요'


당첨이 된 사람들과 되지 못한 사람들의 표현이 엇갈리면서 더욱 더 긴장태세로 돌입한다. 무 긴장한 나머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소리지르는 소리에 결과가 궁금해졌다. 눈웃음으로 보아 당첨된 것 같아 괜히 기쁘다. 반면 아쉬움의 한숨섞인 목소리를 들었을땐 내가 다 아쉬워졌다.


이제 나를 포함해 뒤에 두명이 더 남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당첨을 기원하며 기를 모아 상자안에 손을 집어놓고 궁시렁 거린다.


 "그냥 뽑으시면 되요^^"

그냥 뽑으라니.. 뭔가 심상치 않다. 모 아니면 도같은데..


"공이 세개있는데 되겠쥬?"

초조한 마음에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손에 들린 것은 당첨!!! 꺄악~ 이럴수가 컨디션도 그지같고 안될것 같은 기운이 컸는데 진짜 된거야? 대박 ㅎㅎ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평소와는 다른 투머치가 되어 있다. 이보게 진정하라구!


진행자분께서 말씀하신다.


"남은 공은 다 당첨공이라서 그냥 뽑으셔도 당첨이세요^^"


내 바람대로 뒤에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줄 행운이 남아있다니. 뭔가 기분좋은 날이다.


투머치가 되어버린 인간은 나가면서 순서를 기다리는 추첨자에게 한마디 건넨다.


"잘 되실 거에요 헤헷"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인간)


긴장한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걸 보고 나서야 행운을 남겨준 오늘의 날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길을 나선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새해의 시작이 좋다. 찬바람따위 나의 컨디션을 조종하지 못하도록 더 열심히 살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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