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7.
불과 이틀 전 스웨덴 공항에서 노숙을 했다. 데자뷔가 일어난 것 같다. 꿈인가 싶다. 내일이면 정말 꿈같은 곳에 가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 여행을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 오로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esn에서 핀란드 라플란드 트립을 매 분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나도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투어 형식이다 보니 필요하지 않은 항목이 들어가 있었고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같이 있는 한국인 친구들도 북유럽을 가고 싶어 해서 우리끼리 가기로 했다. 북유럽에 대한 환상은 핀란드 하나로 만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눈 덮인 숲 속 마을과 오로라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유럽은 물가가 어마어마하다. 핀란드 여행이 확정되고 로망을 이룰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노르웨이에 대해 알기 전까지..
핀란드에 같이 가는 한국인 중 한 명이 북유럽 국가를 가는 김에 묶어서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계획은 먼저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보고 우리와 핀란드에서 합류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행 사전조사를 하고는 북유럽이 생각보다 볼 것이 많다고 말했다. 그 말에 호기심이 생긴 나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노르웨이에 대한 환상이 커져갔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다 보니 내가 자연에 환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트 3국, 폴란드 여행으로 유럽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는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더욱 끌려가게 만들었다.
예산이나 짜 보자! 하고 본격적으로 노르웨이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처럼 뚜벅이 여행자에겐 쉽지 않은 곳이었다. 특히나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온통 산, 바다, 강이다 보니 장소 간의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교통에 온 시간과 돈을 쏟아야만 할 것 같았다. 가장 의외였던 점은 겨울의 노르웨이는 여행하기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하면 떠오르는 피오르는 하이킹의 성지라고도 한다. 겨울이 되어 눈이 무진장 내리면 하이킹이 금지되거나 가이드와 동행해야만 한다..역시나 갑작스럽게 지어진 노르웨이 환상의 성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로포텐 제도!
로포텐 제도의 사진을 보고 나는 그곳에 완전히 꽂혀버렸다. 다시 한번 성의 밑바닥부터 쌓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맨 꼭대기에 내가 간다! 하는 깃발을 꽂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촌마을”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그곳으로 간다.
역시 가기란 쉽지 않다.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다. 정보가 없다. 버스가 많지 않다. 오슬로에 도착해서도 비행기를 타고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예산이 너무 초과되지 않을까?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잘 놀 수 있을까? 일주일 동안 고민을 했다. 항공권도 찾아놓고, 숙소도 찾아놓고, 대중교통 앱, 지도, 시간표 등 찾아 놓고 결제창 앞에서 며칠이고 망설였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비행기 표부터 끊었다. 나는 리투에서 노르웨이, 노르웨이에서 핀란드 두 가지 표가 필요했다. 금방 사라질까 싶어 동시에 진행했던 결제창이 혼란을 겪었다. 리투에서 노르웨이로 가는 표만 두 장이 결제되어 버린 것이다. 바로 고객센터에 연락해 환불을 받으려고 했다. 사이트의 시스템 정보에 의하면 내가 스스로 장바구니에 넣어둔 표를 지우고 같은 표를 두 개 사버린 상황이 되어 버렸다. 거의 반값이 수수료로 나가버렸다. 여기서 또 한 번의 일이 터진다. 고객센터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노르웨이에서 핀란드로 가는 비행 편이 사라진 것이다. 아 못 가는구나 싶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두 개를 모두 취소했다. 항공권 하나의 가격과 맞먹을 정도의 금액을 날려버렸다.
멍..그 후엔 좌절, 자책, 혼란, 대 환장의 날이었다. 돈을 날려먹었으니 포기할 법도 한데 오히려 더 가고 싶어졌다.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황이라 자고 다음날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은 이성적으로 돌아온 다음날이 되었다. 전날 내가 날린 비용은 말 그대로 매몰비용, 이미 날아가 버린, 어떻게든 되돌릴 수 없는 돈이다. 미련을 버리자. 곧이어 든 생각은 노르웨이에 대한, 로포텐에 대한 내 생각이다. 이대로 노르웨이를 포기하면 그곳은 돈 날려버린 마음 아픈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게 둘 순 없지. 다시 마음을 잡고 여행 계획표를 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세부 일정까지 모두 짰다. 결제 직전까지..또한 며칠..
뭐 하고 있는 거지? 두려운 건가?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결제만 하면 가는 건데, 시험기간에 하루 종일 고민만 하고 있는 것은 엄청난 낭비다. 내가 멈춰 선 곳은 결제창 앞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예산 초과. 노르웨이는 사전 계획에 없던 이벤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예상했던 지출 금액, 빠져나간 금액, 빠져나갈 금액을 계산해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사용했는지 찾아보았다.
마지막 건 하지 말았어야 했다. 오기 전부터 세워두었던 나의 지출 계획이 다른 사람의 것에 의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돈을 쓰는데 이용했던 나의 기준들이 하나씩 뽑혀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된다. 결국 여기저기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노르웨이 하나로 이게 무슨 요란인가 싶다.
결론은 알다시피 가는 거다. 합리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를 믿기로 했다.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며 나의 지출 습관을 돌이켜보니 나름 합리적으로, 조금은 구두쇠처럼 쓰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런 나의 작은 노력들이 노르웨이가 만들어내는 큰 구멍을 메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아직, 나는 오슬로 공항이다. 노숙..생각보단 할 만하다. 약 두 시간 뒤면 비행기를 타고 보도로 간다. 다시 몇 시간을 대기한 후 페리를 타고 로포텐으로 들어간다. 너무 아름답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