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mberg

by 하이온

2023.10.28


로포텐에서의 첫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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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호스텔 메이트가 창밖을 보라고 했다. 푸른 바다와 그 위로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붉은 태양, 거대한 산과 알록달록한 집이 한눈에 담겼다. 창문틀을 액자로 삼아 잠시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했다.

고된 이동으로 늦잠을 자 버린 나는 하루에 세 대 뿐인 버스 중 하나를 벌써 놓쳤다. 다음 버스는 11시45분,,어젯밤 내팽개친 곧 터질듯한 가방에 숨 쉴 틈을 주기 위해 안에 있는 짐들을 정리하고 히트텍과 장갑, 모자 등 단단히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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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한 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이동했다. 버스에서의 이동은 또 다른 시각적 재미를 주었다. 구불구불한 해안가를 따라가면서 산을 뚫거나 둘러간다. 버스가 방향을 틀 때마다 장면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바다와 산, 호수의 아름다운 전경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사실 어디서든 대중교통을 타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모이는 것이 답답하다던지,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던지 하는 흔한 이유로..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조금 더 타고 있었어도 여전히 즐거웠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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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착한 ramberg.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역시 바로 해변가를 찾았다. 처음 모래사장을 밟고 깜짝 놀랐다. 모래가 얼어있어 미끄러웠다. 모래가..얼어..? 그래서 펭귄처럼 뒤뚱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약간 비릿한 해조류의 냄새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지만 왜인지 모르게 짠내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서인가, 차가운 날씨 때문인가, 무겁게 내려앉은 구름 때문인가, 서늘한 기운을 듬뿍 받으면 모래사장을 서성였다. 같은 앵글 안에서 설산과 해변을 보는 것이 묘하게 신비롭게 느껴졌다.

화질이 정말 좋은 영화 속에 들어와 있었다. 한참을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도중 저 멀리 어떤 생명체가 파도 사이로 빼꼼 빼꼼 하는 것이 보였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정말 아름다움 범고래 떼 사진을 본 적 있다. 내가 이곳에 온다면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때 보았던 범고래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빼꼼거리는 생명체가 고래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나고 있었다.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그것이 보이는 방향으로 조금 더 빨리 뒤뚱거렸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한 마리가 아니고 몇 마리씩 떼로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정면으로 서서 더 잘 보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바다로 뛰어들 수 없음에 아쉬워하는 도중 그것이 조금 더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리였다..아..그럼 그렇지..왜, 어떻게, 오리를 고래로 착각할 수 있었는지 어이가 없으면서도 잠깐 설레었던 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상상 속 고래의 정체를 확인하고 돌아서서 다시 가던 방향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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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도로옆에 인도가 거의 없다. 제설작업도 잘하지 않아 대부분이 얼음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를 이용하기도 하고 일반 관광지랑은 다른 느낌의 여행지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해변이 끝이 나고 도로 위로 올라와 조금은 위험하게 갓길을 따라 걸었다. 그러던 중 길인 듯 길이 아닌 듯 한, 지금 내가 걷는 길보다는 안전해 보이는 길이 보였다. 이건 길이야!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위험한 갓길을 피해 같은 곳을 계속 밟다 보니 생겨난 길 같았다. 계속 밟히니까 잔디가 자라지 않아 길이 생겨버린 느낌? 다음 해변을 가기 위해 길 아닌 길을 쭉 걸었다. 바닥은 거칠고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정리가 안되어 길쭉날쭉한 풀들이 다리를 스쳤고, 비가 왔는지 눈이 녹았는지 축축한 바닥은 자꾸 신발을 잡아당겼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첫날부터 꽤 익스트림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이곳을 제대로 느끼고 있구나! 하며 두근거렸다. 중간중간에 놓여 있었던 몇 개의 판자 덕분에 맞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렇게 나만의 액티비티를 즐기다 보니 또 다른 해변에 다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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