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띠리 띠리 띠리" 6시 30에 설정한 알림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잠을 거의 못 이룬 것 같은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긴장으로 인한 각성의 효과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며칠 전부터 도시락으로 싸줄 반찬을 고민했지만, 아이는 오버 떨지 말라면서 그냥 평소 먹던 볶은밥이면 족하다고 했다. 엄마를 향한 배려인지, 엄마 반찬 솜씨에 대한 불신인지 아리송했지만, 아이의 원대로 김치볶음밥과 감자된장국을 끓여서 보온통에 담았다. 담담한 척했지만, 시험 당일이 주는 긴장감과 불안감은 어쩔 수 없이 나의 행동에 표출되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면서도 자꾸 떨어뜨리고, 프라이팬이 자꾸 손에서 미끄러지는 게 평소 덤벙되는 나의 한도를 넘어섰다. 되려 아이는 더 덤덤해 보였다. "엄마가 왜 나보다 더 긴장하는데?? 왜 얼굴은 그리 어두운데" 아이가 내 표정을 안쓰럽게 살피고 어른스럽게 태연함을 비추는데, 그 모습이 더 내 마음을 찡하게 했다.
아빠와 함께 나서려는 아이를 붙잡으며 힘껏 꼭 안아주었다. 울지 않았고, 잘 보고 오라는 말도, 실수하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눈빛으로 따뜻한 허그로 아이는 충분히 나의 마음을 읽었으리라, 그리고 충분히 느꼈으리라, 가족이 보내주는 사랑과 지지를.
아이를 보내고 긴장되고 초조한 마음을 애써 감추기 위해 화장실부터 냉장고 청소까지 평소 게으른 내가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곳을 힘을 다해 닦고 쓸고 하면서 시간이 어서 가길을 바랐다. 그래도 오전 시간이 채 가지 않았다. 이제 뭐 해야 하나 싶어서 읽고 있는 책을 들었지만, 글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읽던 부분을 읽고 또 읽는 모습을 보면서 작년에는 느끼지 못한 수험생 학부로만이 느낄 수 있는 복잡 다단한 감정을 이제야 내가 느끼는구나 싶었다. 내친김에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파트 헬스장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뛰다 보면 시간이 더 빨리 갈 거라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한 시간 넘게 러닝을 했지만, 아직도 시험을 끝나기까지 한 시간이 더 남았다. 이제는 뭘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다가 아이의 방을 정리했다. 평소 깔끔한 성격이라 자기 방은 스스로 잘 치우는 아이이기에 자주 들어올 일이 없었다. 책상은 반듯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고, 평소 보던 책들도 책꽂이에 단정히 꽂혀있었다. 역시 깔끔한 성격이야 싶어 돌아서려 할 때, 우연히 아이의 책상에 놓아진 메모장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매일 본인에게 하고 싶은 응원의 글귀와 매일 해야 할 분량의 공부량이 체크되어 있었다. 휴학을 결정하고 난 후부터 매일 기록한 기록지는 아이가 지금껏 남모르게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아이에게 너무 무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마음 깊이 마안 했다.
시간이 흘러 아빠와 함께 집에 들어오는 아이의 표정은 생각보다 평온해 보였다. 이번에는 너무 고생했다고 한 마디하고 꼭 안아주었다. 시험 끝난 기념으로 치킨 파티를 하면서 아이는 사실 많이 긴장되고 힘들었는데, 자기가 힘든 내색을 하면 가족들이 더 부담될까 봐 애써 감정을 숨겼다고 털어놓았다. 큰애로서 느꼈을 부담감과 책임감이 아이에게 느껴졌다고 생각하니 아빠도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채점 결과 아이는 생각보다 더 시험을 잘 봐줬고, 무난히 본인이 응시한 대학이 요구하는 최저를 충분히 맞췄다. 이 정도면 서울에 있는 대학도 충분히 가능할 점수라고 생각하니, 학교를 자퇴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몰려왔다. 학교만 제대로 다녔다면, 충분히 더 좋은 대학을 응시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에 기쁨보단 아쉬움과 미안함이 교차되었다. 그래도 아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비싼 사교육 한번 받지 않고 독학으로 해낸 아이가 대견했다. 아이가 어느 선택을 하던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밀어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하루 아이와 함께 해준 내가 믿는 신께 감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