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광주 ACC 좋네요. 전시도 좋고 도서관도 너무 맘에 들어요."
"광주 ACC가 어디예요?"
"아,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에요." H선생님께서 광주 출신인 내가 당연히 ACC를 알거라 생각했나 보다. 카톡으로 얘기해서 망정이지 대면으로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면 분명 멋쩍어했을 것 같다. 나는 바로 폭풍 검색을 했다. 충장로가 있는 동구 쪽에 있었다. 부모님 집에서는 거의 끝과 끝에 위치해 있었다. 아시아를 주제로 문화 전시, 공연, 교육을 진행하는 문화공간이라는 소개글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전시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다음 날 큰 애와 함께 일찌감치 광주로 향했다.
광주 길목에 들어서 한참을 가니 하얀 뾰족탑 건물이 인상적인 대학교가 보였다. 주변으로 80년대 민주항쟁의 선두에 나선 성당과 가톨릭 센터 건물들, 광주 최초의 초등교육 기관 등 광주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건축물들이 아시아 문화전당 주변에 즐비해 있었다.
ACC는 그 이름에 걸맞게 예사롭지 않았다. 실내외 휴식과 힐링, 교제의 공간이 있었고, 지상공간은 광대하게 정원으로 가꾸어져 있었다. 지하공간은 복합 문화예술 공간으로 한국 최대 공간임을 자랑하고 있었다. 10년 전에 개장되었다는데 지금껏 한 번도 이곳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주 전시는 문화 창조원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 내부엔 도서관과 정보 검색대가 갖추어져 있었다. 일반적이지 않는 도서관 양식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많은 장서가 빼곡히 가득하진 않았지만, 깔끔하고 모던한 외곽은 고급스러움을 물씬 풍겼다. 우리는 먼저 이달의 소장품으로 전시된 "마탈라 회화"전을 찾았다.
미틸라 회화는 네팔과 인도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고대 미틸라(Mithila) 왕국의 수도를 중심으로 여성에 의해 그려진 전통 회화라고 했다. 딸은 그림을 그린 여자들처럼 회화 속 여자들 눈이 모두 엄청 크다고 말했다. 다양한 색채로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한참 감상하고 있던 나는 딸의 통찰력에 감탄을 하며 웃었다. 바로 이어 "아랍문자, 예술이 되다" 전시회로 향했다. 아랍글자가 캘러그라라피로 완성되니 신비스러움이 더했다.
이 밖에 몬순으로 열린 세계 < 동남아시아의 항구도시>, 구본창 <사물의 초상〉, ACC 미래상 2024 김아영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등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준비되어 있어 보는 눈을 행복하게 했다. 비록 모든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ACC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예술적 소양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앞으로도 ACC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전시를 다 돌고 나오니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돌아갈 길이 멀어 언니에게 그냥 저녁 식사는 담에 하자하고 했더니 많이 서운해했다. 형부가 오늘만을 기다리셨다는 말과 함께. 처제 사랑이 남다른 형부를 생각하니 그냥 돌아갈 수 없어서 언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멀리서 온 처제를 형부는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주셨다. 맛있는 고기를 먹자며 딸과 나의 손을 잡고 형부는 연신 싱글벙글이셨다. 토요일 저녁 시간이여 선지 가게 안엔 손님들로 가득했다. 돼지고기 특수 부위만을 골라 숯불에 구워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큰언니와 형부, 둘째 언니와 조카까지 오랜만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니 행복감이 두 배가 되었다. 가족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감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천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맘 같아서는 밤새워 가족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었지만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어느 날보다 만족스럽게 보낸 하루였다는 생각으로 뿌듯함이 가득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