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기록법』(2025)을 읽고
나는 결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쓰고, 혼자 헤매기 위해 기록한다. 그리고 대외적인 결과물은 이 기록과 메모 더미 중 일부를 꺼내 이리저리 궁리해서 붙이고 자르고 재가공한 것일 뿐이다.(p. 15)
어릴 적에는 수첩을 들고 다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꽤 열심히 끄적였다. 주로 시상(詩想)을 기록했는데, 워낙 내밀한 이야기였는지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어떤 녀석이 호기심에 훔쳐보기도 했지만, 내 악필을 해독하지는 못했다. 그 수첩은 어느새 너덜너덜해져서 지금은 서랍 두 번째 칸에 고이 모셔져 있다. 언젠가 쓰려던 아이디어를 기록으로 남긴 채.
취업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지금에 와서야, 그때의 수첩과 ‘쓰는 행위’를 되새겨 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기록한다는 목적 이전에 쓰고 싶다는 욕망 그 자체가 있었다. 글은 늘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답답함에서 시작되었다. 다 나오지 못한 글은 의도치 않게 여기저기 끼어들었다.
‘우리’라는 단어가 그랬다. 습작 모임에 나가던 시절, 존경하는 형으로부터 그 단어의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안에는 타인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고.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 정도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내 안의 검열관이 검지를 흔들면 그 즉시 삭제됐다. 나는 언제쯤 ‘우리’를 당당히 쓸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러고 보면, 기록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과 같다.
많이 읽히는 콘텐츠는 재밌어야 한다. 재밌는 글의 필요조건은 솔직함이다. … 기록이 유의미하려면 솔직해야 한다.(p. 69)
아버지는 식당에서 가끔 나를 부르곤 하셨다. 조금 더 먹어야 하지 않니, 만두 하나만 더 시켜. 당신의 말씀이 테이블을 맴도는 사이 나는 의도를 간파했다. 아, 조금 더 드시고 싶은가 보다. 가끔은 돌아가는 그 대화가 싫어서 짜증을 낸 적도 했다. 그냥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정말 답답했을 때만 그랬다.
돌려서 말하지 않는 게 솔직함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진정성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삶에서 나오지 않은 글이란 그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네가 말하는 진정성이 뭔데.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지금도 삶이 아닌 허공에 웅얼거리고 있다.
만두는 아버지의 솔직함이 아니었다. 당신의 화법에는 마주 앉은 내가 있었다. 함께 식사하는 것, 접시처럼 가운데로 놓이는 사랑과 배려가 곧 아버지의 솔직함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우리의 대화가 즐거웠다. 내가 아버지의 비밀을 알아채는 유일한 사람 같아서. 어쩌면 진정성이란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앞으로 살아갈 콘텐츠의 시대를 주체적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나에게 좋은 콘텐츠를 꾸준히 접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p. 164)
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며 우연히 알아낸 건,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삶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은 부지런한 글쟁이가 할 수 있는데, 나는 단 한 권의 책도 집필해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쓴 분량이 A4 다섯 장이나 될까 싶다. 그동안 머릿속으로는 수십 권의 책을 냈지만.
생산적으로 일하며 사람들과 농담을 던지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그런 하루를 소망한다. 이렇게 적으며 나는 또 반걸음 물러선다. 이 겁쟁이는 산책로를 좋아한다. 어제 본 풀줄기가 오늘은 몇 센티미터나 자랐을까. 내일은 저 바위가 갈라지지 않을까. 늘 안전하게 살았던 탓인지, 나는 이러한 익숙함에서 희미한 걸 찾아다녔다. 그 은밀한 빛이 내게는 ‘좋은’ 것이니까.
어두운 방에서 보는 스마트폰은 편리하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색다른 게 끊임없이 나온다. 하지만 AI의 알고리즘은 나의 세계를 더 안전하고, 더 견고하게 만든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하는데, 이 시스템은 산책로만 걸어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더는 겁쟁이처럼 멀리서 지켜볼 수도 없으니 차라리 약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프롬프팅(Prompting)을 거쳐 스스로 시스템을 설계한다면, 적어도 내가 만든 미로 안에서는 나가는 법도 안전하게 알 수 있으리라는 망상을 갖는다.
어쨌든 쓰지 않는 삶을 바란다면, 이 겁쟁이는 나가야 한다. 진정으로 좋은 콘텐츠란 기록이 아닌 세계에 있으니. 무엇보다 나는 ‘우리’를 방구석이 아닌 바깥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나. 기록을 이어가며 ‘나’라는 사람의 설계자가 되기를. 그러면 ‘우리’도 우리가 되리라고 굳게 믿는다.
참고서적: 김송희 외 9인, 『에디터의 기록법』, 자기만의 방, 2025. 인용 p. 15, 69, 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