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는 어떻게 알았을까? (6)

제6장 얼음물고기와 개미 모양 딱정벌레

by 황사민

남극의 얼음물고기


션 B. 캐럴(Sean B. Carroll, 1960~)의 『한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이야기』는 진화를 과학적 증거들에 기초하여 설명한 명작이다. 그는 ‘부베 섬의 피 없는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대서양의 남쪽의 부베 섬은 희망봉에서 남서쪽으로 약 2,400km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작고 외로운 섬이다. 이 곳에서 1926년에 신기한 물고기가 잡혔다. 눈이 커다랗고 지느러미가 큰 창백한 물고기였는데, 놀랍게도 피가 붉은 색이 아니고 투명했다.

남극 얼음물고기라고 부르는 이 물고기는 매우 차가운 수온 (보통 –1.8 °C ~ 2 °C 정도) 환경에서 살아가며, 이러한 극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온 물고기다.

척추동물들의 피에는 산소호흡에 필요한 헤모글로빈을 포함한 적혈구가 들어 있기 때문에 붉게 보인다. 그런데, 얼음 물고기는 헤모글로빈이 없고 또 다른 산소 결합분자인 미오글로빈조차도 없다.

얼음물고기는 이렇듯 두 가지 산소운반분자를 모두 잃었지만 영하의 수온에서 산소를 얻어 생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심혈관계가 변화를 일으켰고, 결빙 방지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의 원형질에 채워 남극의 극한환경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5천5백만년전 섭씨 20도였던 수온이 차츰 내려가 영하로 낮아진 남극 주변의 바다에 적응해간 끝에 살아남았다. 얼음물고기의 혈관에는 영하의 차디찬 묽은 혈액이 흐른다. 혈액은 1% 정도만 세포일 정도 묽고 적혈구는 아예 없고 나머지는 모두 백혈구다. 다행히 찬물은 산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따뜻한 물에 비해 산소용해도가 훨씬 높다. 얼음물고기는 얼음 같은 물에 적응하기 위해 헤모글로빈을 포기하여 적혈구를 제거했다. 대신 비늘을 없애 피부가 바로 산소가 풍부한 물에 닿게 하고 피부에 넓은 모세혈관을 분포시켰다. 심장의 크기를 키우고 혈액량을 늘려 혈장에 녹인 산소를 온몸에 전달한다. 또 세포가 얼지 않도록 결빙을 방지하는 특수한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의 원형질을 채웠다.

캐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 역시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얼음물고기의 기지와 창의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위스콘신 사람들도 영하의 기온에서 자동차를 몰기 위해 다양한 조치들을 취하지만, 얼음물고기는 자동차가 움직이고 있는 동안 엔진을 통째로 바꾸는 일을 해낸 것이다. 이 물고기는 새로운 결빙방지 유전자를 발명하고, 점도가 지극히 낮은 새로운 등급의 기름(혈액)으로 바꾸고, 연료 펌프(심장)를 늘리고, 지난 5억년 동안 모든 어류에서 사용되던 부품 몇 가지를 폐기했다. 얼음 물고기를 비롯한 모든 종의 DNA 기록은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증거이다. … 이 특별한 얼음 물고기가 만들어진 과정은 DNA의 차원에서 적합한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과정을 대략적으로 보여준다. 얼음물고기는 따뜻한 물에서 살았던, 그래서 추운 환경의 삶에는 부적합했던 피가 붉은 조상들에서 진화했다. 남태평양의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얼음물고기의 적응은 즉각적인 설계의 문제도 아니고, 한 방향으로 진보하는 과정도 아니다. 이것은 몇몇 새로운 유전암호의 발명, 몇몇 오래된 유전암호의 파괴,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유전암호의 변형을 포함하는 수많은 단계들을 일련의 즉흥연주처럼 엮어낸 결과이다.’


개미 모양 딱정벌레


아래 그림은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옥당 출판사 2016)의 도입부에 나오는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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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그림의 아랫부분에 적힌 설명은 번역상의 실수로 뒤바뀐 것으로 보인다. Labidus praedator는 딱정벌레가 아니라 군대개미다. 반대로 Mimnesiton antennatum는 개미가 아니라 딱정벌레(beetle)로서 개미를 의태한 좀딱정벌레과의 한 종이다. 대상도 바뀌었고 설명도 바뀌었다. 그림 설명에 오류가 있지만 일단 그림과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

저자(도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딱정벌레는 개미와 모양이 다르다. 따라서, 만약 개미와 거의 똑같이 생기고, 더 나아가 개미집에서 일생을 보내는 딱정벌레를 본다면, 이 우연에는 뭔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그림 1-2>(a)는 사실 딱정벌레다. 일반적인 딱정벌레나 풍뎅이가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하지만 개미처럼 생겼고, 개미처럼 걷고, 개미집에서 개미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 아래 곤충(b)은 진짜 개미다.’

군대 개미를 의태하여 따라다니는 딱정벌레들은 진화론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루는 소재다.

군대개미는 열대 우림 및 습윤 산림 지역에 서식하는 군집성 개미로, 넓은 분포 범위를 가지고 있다. 잎 낙엽층 또는 토양 아래 구멍에서 군체가 나와 대규모 이동과 습격을 펼친다. 군대개미들은 지상으로 쏟아져 나와 지면 전체를 뒤덮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좀딱정벌레과의 일부 종들은 군대개미의 집에서 함께 지내고 개미 행렬에 동참하여 따라다니며 생활한다. 군대개미들은 숲속 바닥을 대규모로 행진하며 다른 절지동물을 사냥하는데, 이 행렬에 여러 종의 기생 딱정벌레가 동반하며 같이 이동한다. 기생 딱정벌레들 중 어떤 종은 개미에게서 먹이를 얻고, 어떤 종은 개미의 알·애벌레를 잡아먹기도 하고, 또 어떤 종류는 개미 군체 내에 해가 거의 없는 공생적 기회주의자로 살기도 한다. 이런 종들을 개미 공생 딱정벌레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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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공생 딱정벌레 가운데도 개미와 닮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데, 가장 완전한 의태를 보이는 종류의 딱정벌레는 외형도 개미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고, 행동도 비슷하게 흉내내고, 심지어는 화학분비물(페르몬)까지도 모방함으로써 개미들은 동족으로 인식하게 해서 공격 당하지 않는다. 이들은 개미 행렬 속에소 머리나 더듬이 움직임을 개미와 똑같이 흉내내고 걷는 속도나 리듬도 따라한다.

군대개미와 공생하는 딱정벌레 들은 매우 높은 숙주 특이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대개미 종의 지리적 변이 및 유전 다양성과 병행하여 딱정벌레들도 분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딱정벌레들의 진화가 개미의 진화 또는 분화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얼음물고기는 찬물에 적응해가고, 딱정벌레는 개미를 닮아갔을까?


얼음물고기나 개미 의태 딱정벌레를 보면, 보통의 물고기와 보통의 딱정벌레가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해간 것처럼 보인다.

남극의 수온이 차가워짐에 따라 붉은 피를 가진 물고기들이 스스로 심혈관계를 변이시켜 환경에 적응한 끝에 얼음물고기로 변해간 것처럼 보인다.

군대개미의 서식지 주변에서 생활하던 딱정벌레 일종이 군대개미로부터 공격을 피하고 먹이를 얻어 생존해가기 위해 개미로 가장하는 적응을 오랜 세월에 거쳐 수행한 것처럼 보인다.

얼음물고기가 환경에 적응한 놀라운 진화나 개미 의태 딱정벌레의 완벽한 의태는 생물 개체가 순전한 우연적 변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능동적으로, 혹은 방향성을 가지고, 적응해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진화가 오로지 우연적인 변이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개미 의태 딱정벌레는 너무나 많은 우연이 겹쳐야만 하는 것이어서 도저히 불가능한 확률로 보여질 수 있다. 개미와 닮아가려는 방향성이 없이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변이가 하필이면 개미의 형태와 같아지는 방향으로 연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페르몬까지 개미와 같은 것으로 변이된다는 것은 너무도 낮은 확률이어서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진화론이 제시한 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원리를 가지고 창조자나 설계자를 과학에서 몰아내는 것은 성공하였을지라도, 그 원리가 방향성이나 생물 스스로의 능동적인 적응 가능성까지 배제하는 것일까?

제7장 움직일 수 없는 진화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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