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流浪): 목적지는 없습니다

풋내기 버스커의 겁 없는 어슬렁

by 재룬

* 음: 음향사 사장님

나: 안녕하세요 혹시 로드스타30 재고 있나요?

음: 버스킹 하시려고? 보자.. 하나 남았네요?

나: 하나요? 아..

음: 언제 오시려고요?

나: 내일 오후에 갈 건데.. 그전에 팔리려나요?

음: ㅋㅋㅋ 어떻게, 내가 좀 맡아드려?

나: 제가 군인인데, 어머니 모시고 버스킹 할 거라..

음: 이야 낭만 있네~ 알겠으니까 천천히 들러요~

나: 네 꼭 사러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돈 없던 21살.. 이렇다 할 장비가 없어 쌩기타 반주에 쌩목으로 버스킹을 하던 시절은 이제 끝. 22살의 나, 내일 앰프 사러 갑니다.



2017년 4월.


철없는 일병 때였다. 3달 만에 다시 휴가를 나가게 됐고, 본가에 내려가서 뭘 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저번 휴가보다 좀 더 긴 4박 5일이라 집에서 여유 있게 기타 좀 칠 시간이 있을 것 같아 기대됐다.


버스킹을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 역시 오랜만에 하루 이틀 정도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가볼까 고민하던 중, 번뜩 스쳐가는 생각에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맞다, 나 돈 많지?!


당시 일병의 월급은 176,400원. 이등병 때부터 딱히 쓸 데가 없어 그냥 쌓아 놓고 보니, 입대하고 반년 정도 지나자 통장 잔고가 70만원이 넘어 있더라. 요즘 병사 월급에는 한참을 못 미치지만, 그 정도면 22살에게는 꽤 큰돈이다.


생전 본 적 없던 숫자. 그러자 대학시절 맨 몸으로 짠내 나게 거리에 나앉았던 게 생각나 바로 앰프와 마이크, 스탠드 등 장비를 살 궁리에 들어갔다. 쇠뿔도 단숨에 뺀다고, 미루지 말고 당장 이번 휴가 때 다 FLEX 해버리고 내친김에 버스킹까지 조져버리기로.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는 국방부 시계가 진짜 고장 난 것 같았다. 그렇게 엉덩이가 무거워진 시간을 나는 그저 일과 후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입문용 버스킹 앰프' 이런 걸 검색하며 내 예비 자식(?)을 물색하며 견뎌야 했다.



그렇게 휴가 당일.


포천.. 의정부역.. 서울역.. 포항역까지. 버스와 기차를 쉴 새 없이 환승하며 달려도 6시간은 족히 걸리는 나의 휴가길. 하지만 오늘은 그닥 심심하지 않다. 곧 내 품에 안을 버스킹 앰프인 '로드스타30'의 사용법을 유튜브로 계속 탐구하면서 내려가니 금방이었다.


마이크와 기타를 동시에 연결했을 때 볼륨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음역대 별 볼륨은 또 각각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등 가슴에 새겨들었고 야외에는 플러그를 꽂을 단지가 잘 없기 때문에 건전지를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랬을 때 몇 시간 정도 사용이 가능한지도 꼼꼼하게 챙겼다.


오케이, 이제 직접 만져 보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시속 300km라고 알려진 KTX. 마음이 들떠서 그런지 바깥 풍경은 느리게만 스쳐간다. 그러나 별 수 있나. 내 자리에서 옴짝달싹 댈 수밖에.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3달 만에 보는 엄마가 마중을 나오셨다. 환히 웃으시는데 다행히 주름은 더 늘지 않았다. 아직 효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다는 뜻이겠지. 얼른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기타를 챙긴 뒤, 마지막 남은 앰프 팔지 말아 달라고 전화로 신신당부했던 음향사로 엄마와 함께 달려갔다.


가게에 도착하자 인상 좋은 사장님께서 나오셨고 '어제 전화드렸던..' 하자 바로 잠시만 있어보라며 어디 들어가셨다가 버스킹 앰프를 꺼내 오셨다. 내가 기타를 가져와서 그런지 전원을 연결해 주시곤 치려면 한 번 쳐봐도 된다고.. 그 말에 나는 숨을 헐떡이며 통기타를 꺼내 앰프에다 잭을 꽂았다.


그러자 '우웅-'하며 신기한 소리가 났다. 마치 기타가 '나 준비됐어요'하는 듯한 느낌? 오른손으로 줄을 튕겨보지 않아도 이게 잘 연결됐음을 알 수 있다. 왼손으로 기타 줄을 슥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그 미세한 소리가 앰프로 조용히 흘러나오니까.


곧이어 엄마와 사장님이 보는 앞에서 <정류장>의 도입부와 간주 정도까지 연주를 해봤다. 많이 다르다, 많이 달라..! 오리지널 한 통기타 소리와 앰프에서 나는 통기타 소리는 또 큰 차이가 컸다. 어쿠스틱 하면서도 묘하게 전자음 같지만, 근데 그게 일렉기타만큼은 또 아닌.. 그 특유의 통기타 앰프 소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지갑.. 열어야겠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결제 중이었다. 앰프 + 마이크 + 스탠드 3종 세트에 총 45만원. 한 50은 족히 나올 구성이었으나 감사하게도 군인이라고 좀 싸게 해 주셨고, 건전지도 서비스라며 풀로 꽂아주셨다. 구색도 갖췄겠다, 이제 쌩기타에 쌩목으로 길바닥에 나앉던 시절은 갔다.


첫 버스킹은 저녁 먹고 밤바다에서 하기로 일찌감치 정했다.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에는 '버스킹존'이 몇 군데 있는데, 여기 가서 빈자리 아무 데나 둥지를 틀면 되느냐? 그렇지 않고,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자유분방할 것 같은 거리공연이지만, 무질서함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문화예술회관이라는 곳에 가서 한 사무실에 들러 서류를 받아 간단한 인적사항과 원하는 버스킹존을 써서 제출하고 나왔다. '저녁 버스킹 시간까지 뭐 하지?'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날씨 참 좋았고, 회관 옆에 넓은 공원이 있었는데 푸른 잔디 뷰가 끝내주더라. 참을 수 없었다.


이제 장비도 갖췄으니, 인적 드문 곳에서 혼자 즐기지 말고 사람들의 왕래가 좀 있는 곳으로 향했고, 공원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카페가 하나 있길래 그 근처에서 해야겠다 싶었다. 시끄럽다고 할지도 모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러나 카페를 오가는 사람들이라면 나를 볼 수 있는 그런 전략적인 위치를 선점했다.


저녁에 해수욕장 버스킹존에서 제 실력을 뽐내야 하니, 지금은 신나 가지고 오버하다 목쉬지 말고 앰프와 마이크의 성능을 느껴보고 각 볼륨들의 균형을 잡아보는 데에 의의를 뒀다. 어느 유튜브에서 봤듯 앰프를 내 뒤에 배치하고 출력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모니터 했다. 코인 노래방 같으면서도 마치 무대 위의 유명가수가 된 듯한 느낌..!


일종의 테스트성 버스킹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주변에 적당한 벤치나 바위에 걸터앉아 내 노래를 듣다가 가는 분들이 좀 있었다. 그중엔 어르신들도 계셨는데, 거리 공연 문화가 생소하신 것 같았으나 편하게 앉아 고개를 까딱이다 또 갈길 가고 그러시더라. 감사했다. 덕분에 오늘 밤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 밤 격전지, 포항 밤바다.


다들 저녁 먹고 바닷가에 놀러 나왔거나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산책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인파 속에서 한 청년이 기타 가방과 버스킹 장비들을 가득 담은 캐리어를 끌고 조그만 무대 위에 오른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좀 많이 불어 혹시 마이크에 잡음이 섞일까 걱정하며 짐을 하나씩 풀었다.


버스킹이란 건 준비할 때가 가장 어색하다. 앰프를 적당한 위치에 두고, 기타 잭을 연결하고, 스탠드에 마이크를 꽂고 그러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말이 다 들려서 그렇다. 보통 '누구지?', '뭐 하나 보다~' 이런 말들인데, 극내향인으로서는 그 시간이 가장 힘들다. 얼른 세팅 끝내고 노래하고 싶다.,!


그런 뻘쭘한 상황에서 첫곡은 참으로 중요하다. 스스로도 긴장이 덜 풀린 상태고, 관객들 또한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므로 가장 자신 있는 곡으로 선빵을 쳐야 한다. 또한 템포가 느린 발라드보다는 좀 빠른 곡이 좋으며, 기타 리프가 재밌는 곡이라면 더욱 좋다. 그래야 행인들이 흥미를 보이고, 잠시 걸음을 멈춘다.


아, 너무 질질 끌었다. 그래서 첫곡은 뭐냐. 버스커 버스커의 <향수> , 그 숨겨진 버전인 <향수2>가 있다. 난 웬만한 버스킹에서 오프닝은 이걸로 한다. 자신 있는 곡이기도 하고, * 스캥크 주법으로 때리는 도입부의 리프가 신나면서도 신비로움을 주고, 곡 내내 스트로크를 빡세게 하다 보니 사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다.

* 스캥크(Skank): 연주하고자 하는 현 외의 다른 현들을 전부 뮤트 한 채 연주하는 스트로크 주법


유쾌한 반전을 줄 때면 늘 통쾌하다. 보통 통기타로 버스킹을 한다라고 하면 아르페지오 위주의 포크송을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스캥크, 퍼커시브, 커팅을 주로 쓰는 곡이 많은 내 셋리스트에는 통기타임에도 신나고, 템포가 빠르면서도 슬픔이 있는 곡이 많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그게 재밌을 것 같아서 그랬. 장범준의 영향이다.


버스킹을 하다 보면 코 앞에 있는 관객들과 필연적으로 소통하게 된다. '더 크게 불러주세요~' 하면 다음 곡 들어갈 때 마스터 볼륨을 좀 더 높여드리고, 자작곡을 불렀는데 노래 제목을 물어보는 분이 있으면 말도 안 되게 뿌듯하다. 그럴 때면 곡의 비하인드를 겸한 스몰토크를 주고받기도 한다.


오늘 나를 처음 보셨음에도 호응이 되게 적극적인 분들을 만나면 공연이 굉장히 즐겁다. 언젠가 <정말로 사랑한다면>을 부르던 때였는데, 어머님 네 분이 이거 아는 노래라며 몰려오시더니 신나게 손뼉 치고 떼창을 하다 끝나고 손 흔들며 떠나신 적도 있다.


이게 그렇게 신나는 곡은 아닌데 ㅋㅋ..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고, 지나고 보니 나도 분위기를 타 굉장히 빠르게 불렀더라. 이렇듯 풋내기 버스커는 관객이 주는 에너지에 박자가 휘둘리기도 한다. 즐거워 보여도 그에게는 돌발 상황이었으리라.


또 좋을 때만 있는 건 아니다. 노래 도중 여행객 3명이 쪼르르 앞에 앉았다가 그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그냥 떠날 때면 '아.. 다음 곡은 더 자신 있는데..' 하며 눈에 밟히고 아쉽다. 그래서 나는 길 가다 우연히 버스커를 만나면 노래를 듣다가 곡이 끝나면 자리를 뜬다. 나만의 소리 없는 응원이다.


웃픈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한 곡이 끝나갈 때쯤 손님(?)이 생기면 원래 계획된 다음 곡보다 이미 불렀던 곡이라도 자신 있는 걸 슬쩍 다시 부르기도 했다. 어차피 거의 무관중이라 '엥 아까 했던 거잖아'라고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심하면 어떤 날은 같은 걸 3번, 4번씩 부르기도 했다. 뭐 어떤가? 그분에게는 처음 들려드리는 건데.


그렇게 판 깔린 제대로 된 버스킹의 참맛을 알아가다 어느덧 다가온 마지막곡 차례. 나는 마무리로 항상 <처음엔 사랑이란게>를 불렀다. 왜냐하면 장범준도 앵콜곡으로 부른다는 점 외에도, 개인적으로 너무 치고 싶은 곡인데 혼자 튜닝이 달라서 그렇다.


다드가드(DADGAD)라 불리는 변칙튜닝으로 이걸 연주할 때면 교회의 찬양가를 연상케 할 만큼 성스러워지는 느낌이 나는 너무 좋다. 그리고 마지막 고음만 원곡과 다르게 가성으로 처리하면 마치 가을밤에 낙엽 하나가 바람에 실려 두둥실 떠오르는 그런 장면이 떠올라서, 이 일련의 공연을 마무리하기에 이 곡 만한 게 없다.


그렇게 버스킹이 끝나면 바쁘다. 최대한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왜냐고? 시작할 때만큼이나 끝날 때도 뻘쭘하니까.. 장비를 치우고 있는데 간혹 지금 시작하는 건 줄 알고 기다리는 분들이 종종 있다. '아잇 끝난 거네~' 하며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죄송하다.


그러니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빠르게 총총총 사라져야 한다.



이후 유명가수가 바쁘게 행사를 뛰듯이 정말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다.


한 공원에서는 농구를 하던 초등학생 4명이 잠시 멈추고 코트에 쪼르르 앉아 내 노래를 듣기도 했고, 어느 날 밤엔 한 초등학교 벤치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물끄러미 서서 노래를 듣다가 '잘생겼나?' 하면서 가까이 오더니 곧장 '아니네~' 하고 엄마 품으로 달려갔다.


세상 작고 귀여운 인신공격에 노래를 하다 처음으로 피식 웃으며 방송사고를 내기도 했다. <봄비>라는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웃으면서 울었다.


그리고 버스킹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또 있지. 팁 박스(Tip Box)도 깔아 봤느냐? 염치없지만, 해봤다.


그날은 어떤 사거리 신호등 근처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예전에 홍대에서 어떤 아저씨가 준 만원이(4화 참조) 생각나기도 했고, 한 번쯤은 누가 팁을 주고 가진 않을까 싶어 장비를 담는 캐리어를 수줍게 앞에 열어놨었다. 양심은 있어서 거기다 [TIP BOX] 이런 걸 써놓진 않았다.


아마 <소나기(주르르루)>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였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초록불을 기다리던 모녀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쭈그려 앉아 아이에게 소곤소곤하시더니 아이 손에 만원 한 장을 쥐어주셨다. 그러자 아이는 뒤뚱뒤뚱 내 쪽으로 오더니 내 캐리어 안에 만원을 넣었고, 앞니 빠진 발음으로 꾸벅하며 '잘 들었습니다~'하고 인사해 줬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도 웃으며 내쪽으로 오며 덕분에 신호 기다리는 게 하나도 안 심심했다며 '수고하세요~'하고 인사하며 아이 손을 잡고 떠나셨다. 그 뒷모습은 참으로 감사하고 다정한 투샷이었다.


그렇게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모든 레퍼토리를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뚜벅이 버스커라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장면을 곱씹어 보니 단지 만원을 벌었다는 점보다 그 아이에게 버스킹이란 걸 알려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8년이 지난 지금, 초등학교 고학년이거나 중학생일 텐데, 혹시 지금도 버스킹이나 어쿠스틱을 듣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계기가 혹시 나일수도 있나? 발칙하고도 즐거운 상상이다.


그렇게 버스 구석에 낑겨 탄 나. 목은 쉬고, 기타와 장비들은 무겁고, 몸은 잔뜩 짜부가 됐음에도 웃음은 멈추질 않았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모자를 고쳐 쓰고 시선은 창 밖으로. 내일은 어디서 노래할까?


그해 여름, 내 미친 유랑. 목적지는 없었다.

통기타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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