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祝賀): Bravo Your Life

기타와 공연으로 이런 것까지

by 재룬

2016년 9월 19일.


용솟음치던 내 창작의 샘.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 그 둑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논산으로 향했다. 군대에서의 1년 9개월을 보낸 뒤에도 과연 그 샘물은 윤기 있게 흐를 것인가. 솔직히 참 아득히 먼 시간이라 자신이 없었다. 손 때 묻은 나의 통기타, 잠시만 안녕이다.


훈련소 5주 동안 철두철미하게 보호한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열 손가락. 나는 꼭 기타를 다시 치고 싶어서 혹시나 훈련 중에 부상 또는 사고가 있더라도 손가락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다.


총기를 들고 훈련을 받다가 쉬는 시간에는 총열 덮개를 기타 지판 삼아 코드들을 짚어보는 시늉을 하며 그리움을 달래고, 안 그래도 툭 건들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 훈련병 감성으로 여러 이면지에다 가사들을 휘갈겨 기록해두기도 했다.


이 꼬질꼬질한 종이들은 아직도 본가 구석탱이에 보관되어 있는데, 색깔도 노랗게 바래 가지고 정말 짠내가 장난이 아니다. 종이 자체도 꼬깃하지만, 그 가사들은 진짜 딱 그 나이대, 그 공간에서만 나올 수 있는 불쌍한 문장들이었다. 그래도 그 기록들 덕분에 <젖고 있어><가물가물>이라는 자작곡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낮에는 안전수칙을 잘 따라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고, 밤에는 건강한 손가락들을 바탕으로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가사들을 계속 비축해 뒀다. 어느덧 낯선 곳에서의 5주를 마치고, 가슴팍에 작대기 하나 붙여 자대로 배치됐다.


막사에 도착해 행정보급관(행보관)님께서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시설들을 소개해줬는데, 내가 눈을 떼지 못한 곳이 있었다. 군사기밀들이 있는 지휘통제실? 커다란 군용 차량들이 즐비한 수송반? 아니다. 바로 비품창고였다.


'엥?' 싶을 수 있겠지만, 이유가 있다. 창고 안 잡동사니들 가운데 먼지 쌓인 기타 가방을 봤기 때문이다. 시간이 좀 오래된 것 같긴 한데, 어찌 됐든 부대 내에서 기타를 친 사람이 있다는 방증 아니겠나. 이거 나에게도 희망이 있구나 싶어 실실 웃음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지금 당장 눈 돌아서 저거 뭐냐고 여쭤보긴 좀 그렇고 일단 타이밍을 잘 살피기로 했다. 이후 다른 시설들도 보러 다녔지만, 머릿속은 온통 '저도 기타 가져와도 됩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부대 소개가 끝나고 다시 막사로 돌아가는 길에 오디오가 좀 비자 슬쩍 내 질문을 내밀 수 있었다. 하남자라 단도직입적이지 못했고, 대신 빙글빙글 드리블을 쳐서 자연스럽게 빌드업을 하기로 했다.


* 행: 행보관님

나: 혹시.. 질문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행: 응 뭔데?

나: 비품창고 안에 있는 건 다 부대 물건입니까?

행: 음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

나: 아.. 그럼 아까 기타 가방도 있던데 그거는..

행: 전역한 놈이 접었다면서 기증했지 아마?

나: .. 그럼 부대 내에 기타를 반입해도 됩니까?

행: 그치? 일과 끝나고 개인정비 때 치면 되지.

나: 아하.. 알겠습니다!


전역 전까지 휴가 때만 기타를 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쾌재였다. 당장이라도 택배로 받고 싶었지만 그 커다란 기타를 부모님께 포장해서 쏴달라고 하는 건 좀 금쪽이 짓인 것 같아 첫 휴가 때까지 참았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군인이 그러면 쓰나. 직접 가서 가져와야지. 큰일 났다. 시간이 멈추기 시작했다.



2017년 1월 3일.


입대하고 3달 정도 뒤에 가다 보니 '100일 휴가'라는 별칭이 붙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박 4일간의 '신병위로휴가'를 떠나게 됐다.


고향집에 내려가 따뜻한 집밥도 배부르게 먹고, 푹신한 침대에 누워 꿀잠도 자고. 평소 즐겨 가던 목욕탕에서 때도 밀고, 사우나에서 땀도 쫙 빼고. 너무 좋았다. 근데 진짜 3박 4일이 3.4초더라. 정신 차려보니 마지막 날이었다.


이등병의 눈물겨운 부대 복귀, 아쉬웠지만 내게 중요한 임무가 있다. 본가에서 약 6시간 걸리는 부대까지 이 통기타를 안전하게 데려가는 것. 휴가 출발하는 날에 미리 행보관님과 선임들께 기타 가져올 거라고 말씀드려 놨으니, 중간에 잃어버리거나 부숴먹지만 않으면 군대에서도 기타를 칠 수 있게 된다..!


군복을 입은 채로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어색한데, 커다란 기타 가방까지 들고 다니느라 시선이 좀 느껴져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거기다 KTX, 지하철, 버스를 타고 내릴 때가 가장 곤욕이다. 지 덩치만 한 기타를 챙기느라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하면서 낑낑.. 한 겨울인데도 땀이 많이 났다.

그날 밤, 어찌저찌 다다른 우리 부대. 기타를 들고 현관으로 들어가자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선임들이 다들 '이야~ 기타 뭐냐~'하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내일부터 호시탐탐 기타를 쳐보기로 했다.


기타는 가족도, 반려동물도 아니지만 그 물건 하나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타지에서 심리적으로 얼마나 안정이 되던지. 덕분에 더 이상 내일이란 건 두렵지 않았다.



근데 건물 안에서 시끄럽게 연주하면 분명 소리가 울릴 터라 이거 연습을 어디서 해야 하나 싶었지만, 부대 내에 적당한 장소가 있었다. 바로 노래방.


'노래방? 군대 진짜 미쳤네' 하실 수도 있지만, 엄청난 격오지가 아니라면 장병복지 차원에서 웬만한 부대 내에 노래방 하나씩은 거의 다 있다. 우리 부대는 막사에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컨테이너 박스에 반주 기계와 소파를 놓아 개조한 노래방이 있었다. 기타 연습실로 제격이다.


이용 방법은 이랬다. 선임들과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고, 선임들은 먼저 막사로 돌아가면 나는 남아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기타 연습을 했다. 다만 병사 한 명을 혼자 두는 건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으니, 당직사관님께서 틈틈이 순찰을 오셨다.


매일매일 바뀌는 당직사관인만큼, 오시는 분마다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바쁜 분께서는 잘 있나 스윽 보고 가시는가 하면, 기타에 관심 있는 간부님께서는 노래방에 들어오셔서 한참 동안 내 연주를 듣다가 가시는 분도 있었다. 초반엔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관객이다 생각하고 더 집중해서 연주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당직 순번이 한 바퀴 돌면서 부대 내 모든 간부님들께 내 기타 연주를 들려드리게 됐고, 어느새 나는 중대의 마스코트 비슷한 것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딱딱할 수도 있는 간부-병사 관계가 좀 부드러워져서 내향적이던 내가 그분들과 비교적 수월하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후술 할 일의 계기가 되는데..




중대장님: 너, 축하무대 좀 뛰어야겠다.


섭외(?)를 받았다.


갑자기 무대는 무슨 무대인지 보니 우리 정비반장님께서 곧 근속 30주년을 맞으시는데 대대 차원에서 기념행사를 기획하고 있고, 그 행사의 순서 중 축하무대에 설 사람을 물색하고 있다고 한다.


타 중대에서 노래를 좀 치기로 소문난 모 중위님은 일찌감치 발탁이 되었고, 원래 혼자 하시려고 했는데 누군가 그 노래의 반주는 재생되는 MR이 아니라 통기타로 연주되기를 희망하고 있단다. 누가? 대대장님께서.


당시 우리 대대장님은 근속 기념행사, 전역행사, 또는 전출행사 등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는 행사는 절대 놓치지 않고 개최하시고 그 준비과정도 직접 챙기시는 분이셨다. 또한 그 행사나 사람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직접 선곡해 주셨고, 기타에 진심이셔서 꼭 선율이 동반되기를 바라셨다.


이러한 연유로 당시 기타 사람을 찾다가 내가 기타 치는 걸 한 번씩은 본 우리 중대 간부님들의 강력한 추천으로 행사를 뛰게 됐다. 근데 그 행사가 언제였냐면.. 바로 3일 뒤였다. 뜻하지 않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 그러나 공연을 한다는 생각에 심장은 정말 오랜만에 뜨겁게 박동했다.


대대장님의 명령 같은 '신청'곡은 2개.


이주호 - <행복을 주는 사람>

봄여름가을겨울 - <Bravo My Life>


캬, 신청곡을 보자마자 장장 30년을 군에 몸 담은 우리 반장님께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연습을 시작하기 위해 저녁에 당장 사이버정보지식방(사지방)으로 달려가 두 곡의 코드를 받아 적어 왔다.


보컬을 해주실 타 중대 중위님께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으니 3일 동안 짧은 개인정비 시간을 이용해 빡세게 준비한 뒤 당일에 행사장에서 잠시 맞춰볼 수밖에 없었다. 제한된 여건이지만, 반드시 잘 해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우리 정비반장님을 축하하는 자리니까.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실전압축연습에 돌입했고, 체감상 하룻밤 눈 붙이고 나니 바로 행사 당일이 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 중대 1호차에 중대장님과 동동 실려 40분을 달려 대대본부에 도착했다. 정말 초대가수가 된 기분이었다.


현장은 바빴다. 미리 준비한 현수막이 설치되고 있었고, 구석에서는 다과를 준비하는 분들의 손이 분주했다. 나도 뭔가 도와야 하나 싶었으나 중대장님께서 너는 ○○이(보컬) 오면 리허설에 집중하라고 해주셨다.


곧이어 정말 산골짜기에서 이곳 본부까지 내려오신 보컬께서 도착했고, 서로 전화 통화 1번 해서 목소리만 아는 사이였는데 오늘에야 얼굴 보고 통성명을 했다. 공연 당일에 말이다. 우리도 앰프 설치하고, 마이크 테스트하고, 기타 톤을 조절한 뒤 본격 리허설에 돌입했다.


중위님은 소문대로 노래를 좀 치는 분이셨다. 무대 경험도 많으신지 원곡에 없는 떼창 파트를 만들자며 그 구간을 팜뮤트(Palm Mute)로 쳐주면 객석으로 가 떼창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이후 카포(Capo)로 반키 올려서 쳐주면 분위기를 더 띄워 보겠단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이런 사람이 왜 군대에 있지?' 싶었고, 그런 끼쟁이와 공연을 할 생각에 싱글벙글했다.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오늘의 주인공인 반장님과 가족들께서 도착하셨고, 대대장님도 자리하시고, 각 중대에서 많은 장병들이 이 자리를 빛내주러 왔다. 장내가 웅성웅성해지자 판이 생각보다 큰 것 같아 긴장됐다. 어, 시작한다.


행사는 딱딱하지 않았고, 다채로웠다. 기념영상이 준비되어 있었고, 사진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30년 전 반장님이 갓 입대했을 무렵의 앳된 모습을 볼 때는 다들 웃기도 하고, 반장님 몰래 촬영한 부모님과 자제분들의 영상편지를 볼 때는 모두의 콧잔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감동적인 영상과 반장님의 허심탄회하고 유쾌한 소감에 잠시 정신이 팔렸지만, 다음 순서가 바로 축하무대이므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곧이어 대대장님께서 직접 소개 멘트를 해주셨고, 나는 기타를 집어 들고 무대에 올랐다.


해 저문 어느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엔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날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

- 봄여름가을겨울 <Bravo My Life> 中


후렴구가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지만 나는 무대를 준비하면서 도입부인 이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당시 22살이었던 나는 아직 그 가사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반장님의 지나온 삶이라고 생각하면 참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져 오더라.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군대에서 보내는 동안 어찌 좋은 일만 있었겠나.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도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온 그 시절의 반장님이 참 존경스러웠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게 된 걸 생각하면 또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그야말로 Bravo! Bravo Your Life! 고, 이 노래를 오늘 같은 날 반장님 앞에서 들려드릴 수 있어 참 기뻤다.


공연이라는 건 한 사람의 역사적인 이정표가 세워지는 자리를 기념해 줄 수 있더라. 음악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게 단순히 '취미'라고 불리기엔 너무 의미 있는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있고, 처음 기타를 품에 안았을 때는 전혀 상상도 못 한 순간들이다. 공연.. 또, 또, 또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공연들을 갈구하기 시작했고,

통기타는 나를 음향사로 데려다줬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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