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낚아채면 노래가 된다
초여름밤의 반달공원, 구름광장.
아무 데나 걸터앉아 관객이 있든 없든, 혹시 있더라도 그게 어르신이든, 내 또래든. 내 앞을 스쳐가는 이가 누구든지 꿋꿋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는 게 딱히 부끄럽지 않던 무렵, 나는 생각에 잠겼다.
셋리스트에 장범준 노래가 너무 많다..!
사실 '너무 많다' 수준이 아니라 그냥 다 장범준 노래였다. 그를 보고 이걸 시작했으니 내 음악의 역사를 작은 인생으로 본다면 그는 최소 내 부모님, 조금만 오버하자면 창조주와도 다름없는 존재라서 그렇다. 은연중에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그러나 버스킹을 한다는 건 어디 작은 코인 노래방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공연인데, 그 공연에서 마이크 앞에 섰다면 그 순간부터는 한 명의 아티스트가 된다는 건데, 이래서야 되겠나 이거. 내가 장범준 본인도 아니고, 무슨 홍보대사도 아니고. 뭐냐 이게?
그렇다고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섞는 것도 좀 그렇다. 내 목소리와 창법, 내 기타와 주법을 고려하면 단순히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하자고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 사람들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단언컨대 나는 확실히 이쪽 스타일이어야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노래를 만들기로.
그렇게 줄기차게 버스킹을 하다가 문득 자작곡의 필요성을 느끼고, 생전 해본 적도 없는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다.
작곡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걸까..
가사라는 건 어떻게 쓰는 걸까..
영감이란 건 어디서 얻는 걸까..
참고로 이 친구는 우주과학과입니다.
급식 먹던 시절, 음악이란 과목과는 아예 척 지고 살았어서 계이름도 모르고 악보도 볼 줄 모르던 내가, 지금 노래를 만들어보겠다며 낑낑대고 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어서 처음엔 그 사실 자체만으로 껄껄 웃음이 났다.
일단 롤모델이 장범준이니, 그의 가사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어떻게 하면 그런 가사들을 써낼 수 있을까? 그동안 곡 자체와 멜로디에 속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그 구조를 파헤치기 위해, 음악을 듣지 않고 가사를 프린트해서 글자들만 마주해 보기로 했다. 뭔가 힌트가 있지 않을까?
나름 분석을 좀 해보니, 몇 가지 특징이 도드라졌다. 일단 첫 번째는 생각보다 단어들이 어렵지 않다는 것. 일상적인 단어이면서도 그 발음 또한 쉬운 것들 위주로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이건 읽는 글이 아니라 부르고 듣는 글이지. 평소에 딱히 의식하지 않았던 건데 출력해 보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송폼(Song Form)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 <벚꽃 엔딩>을 비롯해 대다수는 자연스럽게 Verse부터 시작하지만, <네온사인>처럼 Chorus부터 나오기도 한다. 또한 <잘할 걸>과 같이 Pre-Chorus가 확실한 곡도 있고, <봄비> 등 그렇지 않은 곡도 있더라.
어떤 기준으로 그런 구조들을 넣고 빼고 순서를 조정하는 걸까? 단순하게 감으로? 전지전능하신 그분이라면 그냥 그게 어울린다고 느껴지니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이유라면 그게 이유겠지. 그래, 그건 내 맘대로 하면 되는구나.
좋다. 구조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그럼 작곡을 함에 있어서 멜로디가 먼저일까, 가사가 먼저일까?
멜로디에 딱 맞는 가사가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가사에 딱 맞는 멜로디가 존재하는 걸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가사라는 걸 써보려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펴니, 문득 즐겨 듣던 노래가 하나 떠올랐다.
별빛 골목길 이런 것들을 적었어
담담히 조용히 종이 위에 썼어
다듬고 나열하고 백지 위 펼쳤어
맘에 들지 않아 몇 번을 지웠어
나는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어느덧 푸르스름한 새벽 동은 트고
가슴속 덩어리들을 조금씩 깎아내
외로움은 연필을 쥔 왼손, 그 손바닥 안에
- Mad Clown <외로움은 손바닥 안에> 中
가사라는 걸 써본 사람들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곡이다. 나도 이것저것 무질서하게 끄적이고, 찍찍 긋고, 답답해서 새 페이지에다 다시 단어들을 늘어뜨려 보고..
물론 위의 가사처럼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그런 적은 없지만 그렇게 골머리를 앓다 보면 어느새 깊은 밤이 되어 있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구겨진 꼬깃해진 노트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그럴 땐 사람이 참 외로워진다.
내가 글을 잘 못 쓰나? 하긴, 어렸을 때도 독후감 같은 걸로 상을 탄 적은 있어도 운문(시)은 영 꽝이었다. 태생부터가 투머치토커라 산문에 능했지, 고봉밥마냥 꾹꾹 눌러 담고 줄이고 줄여서 운율을 살리고 이런 건 좀 어려웠다. 그렇게 운문을 피해 온 스노우볼이 지금 내 자작곡의 탄생을 방해할 줄이야..
그럼 멜로디는 잘 뽑아내느냐? 그렇지도 않았다. 가사가 워낙 형편없으니 곡이라도 먼저 만들어서 그 흥얼거림에 어울리는 가사를 한 번 건져보려고 했다. 흔히 상업적으로 굉장히 자주 쓰인다는 머니 코드(Money Chord)로 진행을 이어봐도 멜로디나 가사가 당최 떠오르질 않았다.
창작에 만약 샘이란 게 있다면, 나의 그 작은 옹달샘은 분명 메말라 비틀어져 있을 것이다. 샘물이 꾸덕하게 묵어 탁한 빛을 띠고, 햇빛도 들지 않아 이끼가 가득 둘러져 있을 것 같은. 머릿속에 뭘 집어넣을 순 있어도, 역으로 뭘 뽑아낸다는 게 이리도 고된 일인가?
진전이 없어도 너무 없자 나는 옹달샘을 등지고 울창한 숲을 빠져나왔다. 늘 하던 거나 해야지. 청승맞게 뭔 작곡이야 작곡은. 팔자에 맞게 살자.
한 줌 잔상으로 남은 나의 유치한 가사와 재미없는 멜로디를 곱씹어 보면 내 수준이 이 정도인가 싶어 참 씁쓸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한동안 창작인지 뭔지하는 건 잊고 지냈다.
긴팔이 슬슬 덥게 느껴지던 어느 초여름밤,
본가에 내려갔다 다시 학교로 올라오던 길.
계단을 터벅터벅 걸어올라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먼 여행길에 지친 것도 있지만, 내일까지 해야 하는 과제에, 슬슬 다가오는 기말고사에, 심지어 이번 학기가 끝나면 군대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그럼 휴학신청은 언제..
분명 집에서 잘 쉬고 왔음에도 막상 일상으로 돌아가자니 온갖 잡생각에 머릿속이 온통 뭉게구름이었다. 20살과 21살은 많이 다르다는 걸 실감하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다'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터벅터벅.. 초록불이 하나 둘.. 횡단보도를 하나 둘.. 분명 내 발로 걷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타의인 발자국들이 이어지고, 슬슬 누가 봐도 우리 학교 학생들인 것 같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그러다 아무 생각 없이 흥얼거렸다.
아무 생각 없는~
순간 '어' 하면서 눈이 크게 떠졌다.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멜로디였기 때문이다.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아무 생각 없는.. 아무 생각 없는 노래..' 하면서 단어들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가슴속 어딘가가 갑자기 간질간질하면서 오늘 뭔가 쏟아져 나올 것 같다는 직감이 확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 빨리 이 새어 나오는 단어들을 기록하고 싶은데 기숙사까지는 아직 좀 거리가 남아서 곤란했다. 나는 급한 대로 휴대폰의 '음성 녹음' 어플을 켜서 지금 생각나는 걸 주저 없이, 또 두서 없이 줄줄 읊으며 걸었다.
잰걸음으로 얼른 카드키를 찍고 들어가 손발도 안 씻고 얼른 노트를 펼치고, 녹음한 파일을 들으면서 단어들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렇게 단어들의 급물살이 좀 진정되자, 이제 이것들을 좀 질서 있게 엮어보고자 했다. 보아하니 노래 하나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군침이 싸악 돌았다.
우선 제목은 <아무 생각 없는 노래>. 줄여서 <아생노>라 칭하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기숙사까지 가는 길에 만든 노래고,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는 노래다. 아무 생각 안 하려고 아무 생각 안 했던 건 아닌데,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김에 기타를 잡고 보니 이게 <아무 생각 없는 노래>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진짜 뭔 개소리야' 싶을 수 있지만, 심플하다. 말 그대로 아무 생각이 없는 노래다. '아무 생각 없는~' 이라고 한 마디 흥얼거렸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콸콸 쏟아져 나왔다. 코드까지 붙이고 나름의 기타 리프까지 짜서 약 3분 정도 되는 나의 첫 자작곡이 완성됐다.
이 일련의 과정에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각 구절마다 '여긴 이런 음이어야 해', '이런 멜로디여야 해', '이 단어여야 해'라는 생각이 너무 선명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뭘 보고 쓰듯이, 원래 그렇게 정해져 있듯이 단숨에 노트 위에 휘갈겨 버렸다. 신묘한 경험이었다.
평소 장범준을 비롯한 숱한 가수들의 자작곡 비하인드들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로웠는데, 나도 내 자작곡을 만든 지금 이 순간을 잘 기록해두려고 했다. 언젠가는, 정말 혹시 언젠가는 이 노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기고, 그 비하인드를 들으며 재밌다며 웃어줄 사람이 생길지 모르니까. 김칫국인가?
아무튼,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가사를 아래에 첨부해 드립니다.
아무 생각 없는 노래(아생노)[2016]
아무 생각 없는 노래야
가사도 멜로디도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이건 생각 없는 노래야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에 오다 만든 노래
아무 생각 없는 하루
또 무기력하게 아무 생각이 없게
오늘은 어제랑 똑같고
내일은 오늘이랑 똑같아
아무 생각 안 하려고
아무 생각 안 했던 건 아닌데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김에
멜로디 붙이고 기타를 잡고 보니 이건
아무 생각 없는 노래야
가사도 멜로디도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이건 생각 없는 노래야
지하철에서 내려서 집에 오다 만든 노래
기타를 시작하고 약 1년 6개월 만에 만든 나의 첫 자작곡. 고맙게도 초여름밤 혜성처럼 갑자기 내 앞에 떨어진 <아생노>. 많이 아끼는 노래고, 그만큼 많이 부른 노래다. 이 곡이 탄생하지 않았다면, 그 뒤에 만든 노래들은 방법을 몰라서 아마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찰나가 있다.
그건 노려본다고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내 안의 작은 옹달샘이 확 급류를 일으키는 때가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그때 쏟아지는 물줄기를 낚아채보면 분명 가사든 멜로디든 불현듯 뭔가 스쳐갈 때가 있다.
딱 한 구절이라도 캐치해 낸다면, 나머지는 거기다 살을 붙여서 하나의 노래로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무(無)에서 0.001이라도 건진다면 성공이다. 집에 가서 천천히, 차분하게 100으로 만들면 되니까.
그 급류가 쏟아지려 한다? 바로 메모장이나 녹음기부터 켜야 한다. 영감이란 건 꿈과도 같아서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증발하니까. 어디 도망가지 못하게 꾹꾹 눌러 담아 둬야 한다. 주머니에서 휴대폰만 꺼내면 되니,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이런 순간적인 방법 외에 인위적으로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아 노래 좀 만들어야겠다~' 하고 노래를 뚝딱뚝딱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까. 프로들은 그런가? 그렇다면 정말 신기할 것 같다. 천재가 아니라면 이렇게 찰나를 스쳐가는 영감들을 계속 저장해 뒀다가 하나씩 살을 붙여 노래로 탄생시켜 주는 것. 그게 정도(正道) 아닐까.
언젠가 장범준이 한 말이 있다. '곡을 쓴다는 건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그 말의 뜻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우리 마음을 스쳐가는 그 '무언가'들은 다 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때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꾸준히 기록하다 보면 그중에 어떤 문장은 가사로서 재탄생할 수 있다. 단순한 흥얼거림도 마찬가지. 잘 녹음해두다 보면 언젠가 일기 속의 어떤 문장에 딱 들어맞아 멜로디로서 재탄생할 수 있다.
그렇게 첫 자작곡 <아무 생각 없는 노래>에 이어 나만의 작곡법에 눈을 좀 뜨자 이래저래 많이 만들었지만 너무 별로라 폐기한 것도 많아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총 5곡 정도인 듯하다. 들려드릴 방법이 딱히 없네요. 뭐,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거리에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국 2학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군대에 가게 됐다. 아쉬웠다. 지금 이렇게나 나의 창작의 샘이 용솟음 치고 있는데.. 아무래도 군대 가면 지금 보다는 일상에서의 행동에 제약을 많이 받게 되니 그 샘물이 말라버릴 것 같아 걱정됐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록하고, 연주하고, 노래했다. 근데 본디 노래라는 건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건데, 지금은 작곡이 재밌어서 도토리마냥 자작곡들을 쌓아두기만 하는 게 좀 스스로가 의아했다. 곧 입대하는 만큼, 효도 비슷한 거 하나 하기 위해 작당을 꾸몄다.
입대 전 마지막 주말이었다. 밤공기 선선한 저녁에 엄마를 데리고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갔다. 산책도 산책이지만, 늘 그렇듯이 앰프 없는 버스킹을 보여드리려고. 아들놈이 대학 가서 기타 치고 밴드 한다는 얘기는 들으셨는데, 직접 보신 적은 없어서 자리 한 번 마련해 드렸다.
옛날보다 능숙해진 기타 실력 이런 것 보다 아들이 이런 음악을 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아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는 걸 들려드리고 싶어서 그랬다. 그 노래들 안에는 엄마가 보지 못한 아들의 천방지축 대학생활이 녹아 있으니까.
한 곡씩 끝날 때마다 물개 박수와 함께 흐뭇한 표정으로 웃어주셨다. 그동안 숱하게 들어온 '요즘 어떻게 지내니?'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이 됐으려나. 경상도 아들은 이런 식으로 밖에 대답을 못 한다. 그래도 오늘은 초가을의 버스킹이다. 꽤 세련된 방식이지 않나?
기타를 시작하고 나서 내 삶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요즘 그걸 특히 실감한다. 겁도 없이 길거리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하질 않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내 자작곡을 만들질 않나, 그걸로 엄마를 손뼉 치고 웃게 만들질 않나.
너무 보람찼다. 멈추기 싫었다.
설령 군대에 가더라도 말이다.
의지만 있으면 거기서도 창작의 샘을 마르지 않게 할 수 있겠지? 그리고 기타를 가져갈 수 없다면 뭐, 2년 동안 가사만 주구장창 쓰면 되는 거고. 근데 다행히 훈련소를 수료하고 나니, 기타를 칠 방법이 있었다. 천운이라고 여겼다.
나는 군대에도 통기타를 데리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