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일단 Go
'미안.. 오늘 중동 연습 있어서..'
* 중동: 중앙동아리
학과 밴드 동아리를 벗어나, 이 캠퍼스 전체에서 밴드에 관심 좀 있다는 녀석들이 모인 이 중앙동아리에서의 활동. 여기에서의 삶이란 마치 비밀요원이라도 된 듯한 특별한 느낌을 준다. 못 믿겠지만 당시 저녁 약속도 위 같은 멘트로 여럿 사양했었다. 지금 보니 좀 꿀밤 마려울 정도로 재수가 없다.
중앙동아리답게 온 학과에서 다 온다. 스페인어학과, 산업디자인학과,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아 물론 우주과학과였던 나도 부원들에게 똑같이 보였겠지? 아무튼, 우리 학과, 우리 단과대 안에서만 생활했다면 절대 일면식도 갖지 못했을 좋은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렇게 룸메와 함께 긴장되는 오디션을 거친 지도 어언 한 달. 그해 봄은 5월이라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5월에 뭐가 있길래? 바로 축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밴드'동아리는 축제의 중심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꽃봉오리들처럼 나도 만개할 준비를 해야 했다.
여기는 록을 위주로 하되 특이한 점이 있었다. 인원이 많은 만큼 그 다양성도 주체할 수 없는 게 당연하기에, 본 무대에 오를 록밴드 팀 외에도 축제 기간 동안 캠퍼스 곳곳에서 거리공연을 뛸 버스킹 팀도 따로 꾸리더라. 다양성 존중.. 이게 음악 동아리지. 장범준으로 기타를 시작한 내 성향은 확고했기에 망설임 없이 버스킹 팀으로 뛰어들었다.
나와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이 총 10명 정도 있었고, 악기를 잘 나눠서 2개 팀으로 활동하기로 했다. 동시간에 버스킹을 하되, 장소는 다르게 정해서 캠퍼스를 누비기로 했다. 같은 시간 속에서 동아리 홍보는 2배로 뛰겠다는 전략. 2학기 때 신입부원이 더 늘어날 거란 생각에 동아리 회장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버스킹 팀 내에서 선곡 회의가 진행될 때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학과 동아리에서의 편한 느낌보다는 확실히 음악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눈빛도 사뭇 진지해서 예전처럼 노래방 선곡하듯이 툭툭 던지질 못하겠더라. 게다가 극내향인이라 낯선 사람들 앞에선 한 없이 작아지는 나였기에 단톡방에 추천곡이 올라오면 조용히 들어보고 대답만 했었다.
이래저래 추천이 오가는 와중에 당시 꽤 화력을 보이던 장범준의 노래도 물망에 오르자 나는 국뽕이 차오르듯 어떤 알 수 없는 자부심에 변태같이 웃기도 했고, 제한된 연습 기간인 만큼 제발 그나마 칠 수 있는 노래들로 정해지길 기도했다. 다들 '와 그거 좋죠~' 하는데 '저.. 그거 못 칠 거 같은데..' 하며 찬물 끼얹을 순 없지 않은가. 제발..!
학과별로 주점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을 밤 시간대에 버스킹을 계획했기에 그에 맞는 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관객들은 아마 초저녁부터 이어진 축제 본 무대를 즐기느라 이미 목청도 나가리됐을 것.
방방 뛰느라 지친 몸임에도 좀비처럼 학과 주점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학우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며, 우리는 소리 지르고 신나는 곡보다는 그 지친 영혼들을 위로하는 힐링송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곡으로 골라 지나가던 누구라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우리를 보며 흥얼거리다 씨익 웃으면서 또 갈길 갈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감성적인 곡으로 가기로 했고, 그렇게 셋리스트의 윤곽을 스케치했다.
장범준 - <사랑에 빠졌죠>
크러쉬 - <잊어버리지마(feat. 태연)>
이적 - <걱정말아요 그대>
낮에 한껏 소리 지르다 이젠 알딸딸하게 취한 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선율을 느끼다 갈 수 있는 곡들로 잘 뽑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신입생이던 보컬이 버스킹 당일에 갑자기 추노를 한 것.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팀 단톡방에 '저 못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스르르 증발해 버렸다. 튀어봤자 캠퍼스 안이라 찾아가려면 찾아갈 수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아마 자기 생각보다 판이 좀 커져서 부담감을 느꼈겠지. 그렇게 21살은 20살을 두둔하곤 했다.
그래도 참.. 팍 식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어쿠스틱한 매력을 한껏 보여줄 수 있는 곡들로 준비했기에 동아리 부원을 떠나 한 명의 어쿠스틱인(人)으로서 꽤 사명감을 갖고 준비했었는데 쩝.. 일말의 논의도 없이 너무 순식간에 파토가 나서 헛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뭐 어쩌겠나? 다른 팀 공연 보러 가야지.
길 가다가 들려오는 잼베나 카혼 소리, 그리고 그 위에 덧입힌 통기타 소리는 가히 치트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 조합을 너무 좋아한다. 그렇게 다른 버스킹 팀 공연을 먼발치서 지켜보며 가슴이 뛰다가도 한편이 먹먹해져 온다. 나도 오늘 저런 걸 할 수 있었는데.. 나의 첫 버스킹은 도대체 언제일까? 입맛을 다시며 우리 과 주점으로 향했다.
학과 주점.
뭔가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술집이다. 주황빛을 띠는 포장마차는 낯설지 않지만, 그 안의 손님들과 종업원들(?)이 모두 우리 학과 사람들이다. 평소에 어디 숨어 계신지 당최 알 수가 없는 고학년 선배님들, 조교님들, 심지어 교수님도 껄껄 웃으며 학생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이곳. 약간의 인지부조화가 동반되지만 훈훈하게 즐거운 학과 주점이다.
작년의 우리도 그랬듯, 센터 자리는 신입생들 몫이다. 가운데에 앉혀 놓고 주변의 온 선배들이 들락날락하면서 애들을 회전초밥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이제 2학년이니까 센터에서는 조금 벗어난 모퉁이에서 동기들과 잔을 기울였다. 지들도 입학한 지 이제 1년 됐으면서 '이야~ 옛날 생각난다~' 이런 실없는 소리를 안주 삼아서.
올해는 중앙동아리에서 밴드를 하느라 우리 과 밴드 동아리 활동은 하지 않게 되어 굳이 여기에서까지 오늘 버스킹 파토 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뭔가 스스로 '저는 이단자입니다' 하고 광고하는 것 같지 않나.
술기운도 좀 올랐겠다, 속상한 마음을 어디 털어놓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 이내 외로워졌다. 그렇게 콘치즈에다 과일소주 좀 적당히 들이키다 대충 자연스럽게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비틀비틀 걷는 와중에 어디서 통기타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창문 열어 놓고 기타를 치나? 싶었는데 분명 밖에서 들리는 소리다. 근데 앰프나 마이크 소리 없이 완전 생(生) 사운드여서 좀 이상했다.
소리를 쫓아가보니 공원 벤치에 남학생 3명이 앉아가지고 한 명은 기타를 치고, 나머지 둘은 번갈아 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관객은 아무도 없었지만 노래하고 연주하는 본인들이 너무 즐거워 보여서 단독 관객이 되기엔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마치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인공위성처럼 스윽 그들 옆으로 지나가던 길을 갔다.
기숙사 앞에 도착했는데 3층 우리 방 불이 아직 켜져 있네? 그 순간 뭐가 확 올라왔다. 마음속의 불가마 같은 것이 머리끝까지 확 뻗쳐 오르는 느낌. 뭔가 저질러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느껴졌고, 성큼성큼 방으로 뛰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캔맥주를 까며 게임을 하고 있는 나의 룸메. 나의 인기척에 헤드셋 한쪽을 벗고는 '어? 주점 간다더니 일찍 왔네?'라며 인사를 하지만 나는 지금 귀가한 게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버스킹 하러 나가자고.
뭔 개소리인가 싶은 듯 찌푸려진 미간이지만 입가는 스윽 올라간다. 우리는 서로 어이없다는 듯이 계속 웃었다. 룸메는 껄껄거리며 버스킹? 어디서? 장비는? 그러면서 게임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어차피 할 거 없는 걸 알고 물어본 거라 당연히 따라 나올 줄 알았다. 이런 날을 위해 평소부터 기타를 친다면 버스킹을 해야 한다고 가스라이팅을 잘 시켜놨기 때문이다.
룸메는 천천히 전원을 끄고 옷장 위의 기타 가방을 꺼내서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기어 나왔다. 목적지는 우리도 모른다. 일단 나왔는데 이거 어디로 가야 되냐?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알딸딸하게 취해가지곤 기타 가방 하나씩 메고 어슬렁거리는 게 상당히 볼만했다. 그때 시각은 밤 11시였다.
일단 고성방가로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 기숙사 지역과 도서관 주변은 좀 피하고, 최대한 탁 트인 곳으로 물색했다. 동아리의 앰프도 야밤이다 보니 몰래 쓰려면 쓸 수 있었지만 혹시나 기물파손이나 절도(?) 문제에 휘말릴 수 있으니 그냥 쌩기타에 쌩목으로 가자. 21살은 패기롭지만 쫄기도 잘 쪼는 나이다.
빙글빙글 떠돌다 우리가 둥지를 튼 곳은 교내 광장. 한편에 우뚝 솟아오른 탑이 있는데 그 주변의 돌계단에 자리를 잡고 목도 풀면서 통기타 튜닝을 했다. 그러고 보니 바깥에서 통기타를 꺼내본 적이 있었던가? 맨날 치는 기타였지만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늦은 밤이라 인적도 드물 테니 오늘 밤, 어디 한번 마음껏 무턱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이크도, 앰프도, 조명도 없이 시작된 나의 첫 거리공연. 룸메가 혹시 함께 공연을 한다면 오프닝곡은 이걸로 하자고 했던 곡이 있다. 데파페페(Depapepe)의 <Start>라는 연주곡인데, 내가 장범준 노래를 허구한 날 계속 영업하자 언젠가 본인이 추천하는 것도 하나 같이 해달라며 알려줬던 곡이다.
나는 코드를, 룸메는 솔로를 맡아 방구석에서 수도 없이 함께 쳤던 <Start>. 지금 이 고요한 밤, 달빛 아래 아무도 없는 광장에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곡의 이름도, 분위기도 처음을 기념하기에 최적이었다. 그 후로는 <정류장>을 비롯해 늘 치던 걸로 공연을 이어갔다.
야외에서 듣는 선율 또한 색달랐다. 방이든, 합주실이든 어느 공간에서 치면 소리가 좀 울리기 마련인데, 여기는 밖이라 그런 울림 없이 좀 더 기타 본연의 소리를 느낄 수 있지 않나. 안 그래도 운명이라 생각했던 이 악기, 나는 더욱 빠져들었다.
나의 첫 버스킹, 길 가는 어느 누구 하나의 발길도 붙잡지 못했지만 내 생애 최고로 뿌듯한 공연으로 남아 있다. 내가 그 맛을 못 잊어서 그 후로 계속 나름의 레퍼토리도 만들고, 버스킹을 할 만한 장소를 탐색했다.
근데 앰프나 마이크는 계속 없이 다녔다. 돈 없는 대학생이 그런 걸 살 돈이 어디 있겠나. 그냥 기타 들고 적당한 곳에 걸터앉으면 오늘만큼은 나도 장범준이 된다고 여겼다. 그렇게 버스킹과 고성방가, 그 사이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생활이 시작됐다.
통기타는 나를 반달공원으로 데려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