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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Sep 15. 2023

폴라 베어를 만날 수 있을까

여행기: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롱이어비엔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중심도시 롱이어비엔. 사람이 사는 최북단 마을이다. 북위 78도가 넘는다. 북위 66도 정도부터 북극권에 속한다. 서울이 북위 37도다. 노르웨이 오슬로를 거쳐 롱이어비엔에 도착했다. 주민보다 북극곰이 많은 곳, 여름은 해가 지지 않는 백야고,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극야(흑야)인 곳이다.

모스크바나 북유럽도 여름에 백야 현상이 있지만 해가 진다. 하지만 이곳은 해가 지지 않는다. 밤이 실종된 이곳은 어떨까.     


롱이어비엔 공항 대합실에 들어서니 큰 북극곰 모형이 기다린다. 먼 길 왔다는 안도감과 북극이라는 설렘이 교차했다. 8월의 북극,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선박에 타기까지 2시간의 여유가 있어 마을 중심가를 갔다. 마을 뒷산에는 빙하가 있다.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았다. 이곳에서 크루즈 여행이 시작된다. 일주일간 북극해의 북위 82도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프로그램이다. 선실 룸메이트는 사진을 잘 찍는 화가였다. 내 휴대폰 바탕화면은 지금도 그녀가 그린 그림이다. 이렇게 사람을 만난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을 강의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대학 가지 못한 학생들에게 미술 봉사도 했다. 크루즈 생활 동안 배려해 줘서 편안했다. 좋은 사람 만나는 것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첫날은 크루즈에서 랜딩 할 때 필요한 장화와 방한 점퍼를 받았다. 장화는 배에서 나갈 때, 귀선 할 때마다 소독했다. 인원 파악을 위해 승하선 시에는 카드를 단말기에 찍어야 했다. 구명조끼, 조디악 타는 법 등 안전 규칙 교육은 지루할 만큼 철저했다. 둘째 날부터 오전 오후에 한 번씩 랜딩 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있다. 저녁에는 영상으로 북극 지역에 사는 동물 새 식물 등에 대한 교육이 있다.


처음으로 조디악으로 갈아타고 빙하 탐방을 했다. 얼음 절벽이 만리장성 같은 빙하다. 빙하가 갈라지면 천둥소리가 나고 무너져 내린다. 바다에 떨어지면 다다다 소리가 난다. 눈이 몇 천 년 전부터 쌓이고 쌓여 압착될 때 기포가 생기는데 그 기포 터지는 소리다. 탄산음료 열면 나는 소리 비슷하다. 빙하의 푸른빛은 얼음의 밀도가 높을수록 푸른색을 내는데 질소가 갇혀있어서 그렇단다. 블루 아이스다. 숫자로 가늠하기 어려운 먼 옛날에 만들어진 얼음이 빛을 받아 빛나는 블루다. 물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블루다.


툰드라 지역은 이끼가 자라고 폭신폭신했다. 식물도 있는데 갈색이다. 환경에 맞게 자라는 생명이 경외롭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순록이 재빠르게 지나간다.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사라진 땅에는 자갈뿐이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없어진다는 뉴스를 보다가 실제 보니 그 무게가 절실히 다가왔다. 일상생활에서 종이컵이라도 사용하지 않는 조그만 일이라도 실천해야겠다.

저녁에는 북극곰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과연 이번 여행서 북극곰을 볼 수 있을까. 못 보고 그냥 가는 관광객들도 있다고 한다. 롱이어비엔에는 주민보다 곰이 많다지만 잠깐 왔다가는 관광객은 못 볼 수도 있다. 이 마을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총을 소지해야 한다. 쉽게 곰이나 야생 동물과 마주한다는 말이다. 마을에는 총기 판매점도 있다.     


배는 계속 북쪽으로 올라갔다. 유빙이 많아지며 급기야는 바다가 하얗다. 바다가 얼음과 눈으로 뒤덮였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북극곰이 보인다는 선내 방송이 나왔다. 배 앞쪽에 있는 조정실로 뛰어 들어갔다. 배가 멈췄다. 바다가 언 해빙 위 먼 곳에서 곰이 점같이 보이더니 점점 배 쪽으로 왔다. 모든 승객이 갑판으로 나왔다. 배에서 나는 음식 냄새를 맡고 온다고 한다. 하얀 해빙 위를 하얀 북극곰 한 마리가 배로 다가오는 모습은 영화 같았다. 물웅덩이는 헤엄치고, 해빙이 갈라진 곳은 건너뛰며 배까지 왔다. 앞발을 선박에 대고 두 발로 선 채 올려다본다. 마음 같아서는 음식물이라도 던져주고 싶었지만, 이런 행위야말로 철저히 금지하고 있다. 한동안 우리를 바라보던 곰은 해빙 위에 누워 등을 비비며 재롱을 부렸다. 북극곰 목욕이다. 북극곰은 그렇게 우리를 위해 재롱을 부리다 등 돌려 멀어져 갔다.      


지구 온난화로 그들의 거처인 해빙이 없어지면 살 거처가 없어지는 거다. 지구 온난화 문제는 도시보다 자연에서 그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빙하가 사라진 모습, 내려온 모습, 무너지는 모습을 직관하니 안타까웠다.

북극 과학연구소 다산기지에 가기 위해 랜딩 했다. 8개 나라의 북극 연구소가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라 가장 북쪽에 있다는 우체통이 눈에 들어왔다.  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연구소를 안내해 줬다. 이곳에서 빙하와 환경, 생태계를 연구한단다. 가족과 떨어져 열악한 이곳에서 연구하는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배에서 일주일 생활을 끝내고 롱이어비엔으로 돌아왔다. 이곳에는 지구에서 자취를 감출지 모르는 곡식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종자를 보관하는 국제 종자 보관소가 있다. 얼음 산을 뚫어 만든 곳이다. 땅이 녹지 않는 영구동토층이라 안전하다고 생각하여 지어진 곳이다. 우리나라 종자도 보관 중이다. 아무쪼록 이곳의 씨앗이 사용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롱이어비엔에서 마지막 밤이다. 잠깐 잠들었다가 깼다. 암막 커튼을 살짝 여니 날카로운 빛이 들어온다. 방에서 나왔다. 오전 두 시. 숙소가 바닷가 옆 단독 주택이다. 거실에 햇빛이 길게 들어온다. 찻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왔다. 바다에, 찻잔에 햇빛이 가득 넘실댄다. 태양은 이 마을의 낮과 밤을 똑같은 두께로 사랑한다. 너무나 엄숙하여 기도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엄마가 생각났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엄마는 튼튼한 기둥이고 엄마에게서 나는 늘 애처로운 자식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거하며  잘 지내고 있어도 날 바라보는 눈빛은 늘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빙하는 간데없고 자갈만

선박까지 온 북극곰

                                       

                                  조디악

국제종자 보관소

                             바다코끼리

북극지연구소

                      매일 프로그램 게시


♧2014년 7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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