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6] 어디로 가야 할까

직면에 대하여

by 조약돌

안녕, 당신.

라디오에서 소개된 동화책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 떠다닙니다.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어요.

오소리는 매일 친구들이 던진 색색의 공을 주워다 주는 역할을 자처합니다. 그것이 친구들이 자신과 어울려노는 방식이라고 믿으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공을 줍던 오소리는 그대로 쓰러집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뜻밖의 치료 방법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그중 하나가 알록달록한 공을 유심히 살펴볼 것이었습니다.

오소리는 의사 선생님 처방을 잘 실천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처방인 공 관찰을 시작합니다.

그 순간, 오소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립니다.

친구들이 던졌던 알록달록한 공은 사실 돌멩이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소리가 쓰러진 이유였습니다. 믿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외면했기 때문이지요.

사실은 친구들이 자신과 어울려 놀았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소리는 부정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도서 정보/ 나는 하고 싶지 않아 , 유수민 , 담푸스)

라디오 방송이 이야기에서 주목한 키워드는 바로 ‘직면’입니다.


직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대게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많은 것들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니까요.

공황이라는 병이 힘든 것은, 결코 직면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 스스로 그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소리 이야기에 빗대어 보자면, 우리가 직면해야 할 것은 공황자체가 아니라 훨씬 이면의 것일 테지요.

공황은 사실 ‘내면에서 계속 외면해 온 어떤 것들’ 때문에 쓰러진 나의 모습이니까요.


나는 공황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직면하기 위해 다양한 도움을 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길을 다 가보기로 마음먹었지요.

그 과정에서 추린 것은 대학병원, 개인병원, 한의원, 심리상담입니다.


대학병원의 장점이자 단점은 내원의 횟수가 적다는 것입니다.

약은 충분히 길게 처방받을 수 있지만,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제한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개인병원은 그 반대입니다.

처방받을 수 있는 복약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 내원 주기도 짧습니다. 대신 의사 선생님과 충분한 레포가 있다면

상담시간이 길어서 이야기를 나누며 치료하기에 편안한 공간이었습니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한의원은 몸을 중심으로 진료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동양의학에 따라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의 체질적 특성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몸상태를 진단합니다.

약해진 부분에 집중하여 치료 방향을 정합니다. 몸이 결국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요.

저는 단 한번 진료를 보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지요.

심리상담은 상담을 통해 내면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부분보다는 온전히 정신적인 측면에 집중하고 내면을 살피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심리상담은 과거의 어떤 지점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나의 과거와 그 속에서 상처로 남았던 것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면서, 나는 어떤 방법이 가장 좋았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위치에서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할 뿐이지요.

(*모든 병원에서 실제로도 약과 인지치료, 신체 활동이 병행되어야 공황장애 치료에 가장 효과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그 치료의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은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치료해 주길 바라지만 , 가장 효과적인 회복의 열쇠는 나에게 있습니다.

그저 주어진 약을 잘 먹고, 병원에 꼬박꼬박 가는 것만으로는 치료가 더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어느 정도까지 의학적인 도움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도움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존재해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직면’이 아닐까 합니다.

어떤 곳을 선택해서 진료를 받던지 간에 상관없이 직면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조금 더 빠른 길이 찾으려는 요행은 통하지 않았지요.

내가 공황을 겪을 때 가장 쉬웠던 회피전략은 회피였습니다.

‘공황은 과거의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그러니까 과거의 일에 피해자일 뿐이야.‘ 같은 연민에 머물거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들어져. 나는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하는 자기부정,

‘공황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하면 공황이 올 거야.’ 스스로에 대한 낙인.

회피의 순간에 마음이 놓이는 이유는, 나를 밀어붙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간일 뿐, 회피한 것들은 몇 배로 돌아와 우울감을 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직면 (直面) : 어떠한 일이나 사물을 직접 당하거나 접함.’

반면 직면의 순간은 나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것만 같아 무척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직면은 용기입니다. 직면은 태도입니다. 하지만 직면은 반드시 가치 판단과는 별개여야만 합니다.

내가 진짜 괴로웠던 이유는 직면한 것을 포장하거나, 옳고 그름, 잘잘못을 판단하려는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부디 당신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공이 돌멩이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는 무척이나 아프겠지만,

새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일처럼, 하늘을 날기 위해 가장 두려운 첫 날개짓을 해야하는 일처럼

다음 단계로의 성장에는 두려움과 어느정도의 고통이 따른다는 걸 우리는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고요하게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 안에 있는 , 당신이 외면해 왔던 것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당신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언제나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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