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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May 10. 2024

네잎클로버를 찾아서

작은 세계가 보여 준 큰 세계

도서관을 올러가는 길에 싱그럽게 얼굴을 내민 클로버


  요즘은 루틴을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 실천해보는 중입니다.

  그중 하나는 오전이면 근처 도서관에 걸어가서 두어시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다시 걸어서 집으로 가는 일정인데, 2주 정도 되었고 비가 오는 날은 쉬었으나 지금까지는 퍽 마음에 드는 일정입니다. 날씨가 좋을 때면 공원을 통과해 걸어가는데, 부서지는 햇살이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가 온몸에 스며들어 힘을 주는 듯 합니다.

  얼마전부터는 공원에서 클로버가 눈에 보일 때마다 쪼그려 앉아 풀잎을 가만히 들여다보곤했는데, 맞아요. 네잎클로버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뙈약볕에도 몇시간이고 앉아서 끝끝내 네잎클로버를 찾아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네잎클로버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네잎클로버를 찾으면 갑자기 막혔던 아이디어가 샘솟을 것 같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쇄도 할 것 같기도하고, 공모전마다 당선 연락이 올 것 같은 기대감에 부푸는 것이었습니다.

  욕심에 눈이 먼 인간의 손길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클로버들이 온 힘을 다해 제 동료를 숨겨주었기 때문인지 좀처럼 네잎클로버는 요며칠째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불어넣은 기대감에 공연히 불안해진 탓으로, 본격적으로 오늘은 네잎클로버를 찾기 전까지는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데,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며칠 전 아가가 던진 장난감에 고무 나뭇잎이 부러진 걸 보고 무척 속이 상했던 것이 기억 난 까닭입니다. 꽃과 나무를 꺾지 말고 눈으로만 예뻐하자고 가르치면서, 복슬복슬 민들레홑씨는 아무렇지 않게 꺾어 입술 앞에 대어주고, 막연한 기대를 충족하기위해 네잎클로버를 찾아 꺾어가겠다는 모습이 참 이중적이지요.

  그러고보니 삶의 이중성은 이곳저곳에 있습니다. 동물권을 위해 노력해야한다고 가르치면서 새로 사려는 가방이 어떤 가죽인지를 따지고,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며 장바구니를 쓰면서도, 지퍼백이나 물티슈는 쉽게 낭비합니다.  이럴때는 가르치고자하는데로 사는 삶이란 무척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압니다. 자신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휴대전화 조금, 친절과 배려, 자연보호 등-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종종 어기곤 한다는 것을요. 게다가 어른 세대가 흥청망청 자원은 자원대로, 환경은 환경대로 사용한 뒤에 이제는 미래 세대에게 지구를 부탁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지도요. 말뿐인 교육이 허울이라는 것은 그래서인가봅니다.

   부모로, 교사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이중성을 좁혀나가는 삶이자, 성찰이자,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부모라서, 교사라서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매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네잎클로버에서 시작 된 작은 성찰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아이에 대한 감사로 끝을 맺네요. 주절주절 글을 쓰는 까닭은 오늘도 마땅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이지만, 오늘은 아이디어보다 더 좋은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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