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요. 그리고 고마워요, 이 편지를 발견해 주어서.
오늘 이곳은 짙은 안개가 꼈어요. 그곳은 어떤가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 적이 있어요. 그 기분에 이유가 없었다는 것도 나를 무겁게 가라앉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얼 해도 즐겁지 않은, 심지어 어떤 음식을 먹어도 감흥이 없는.
이렇게 산다면 더 이상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희뿌연 안개 너머로 흐릿하지만 앞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시 어떤 이유였는지 모릅니다.
(나에게 지독한 안개를 탈출 할 방법을 기대했다면 미안합니다. 이 편지는 당신에게 배움이나 교훈 따위를 주려는게 아니니까요.)
다만, 나는 다음 안개가 찾아왔을 때 조금은 덜 두렵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안개는 걷히고 가야 할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앞에 펼쳐질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겠지요. 혹 지금 당신이 그 짙은 안개 속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그러고보면 꽃길이 언제나 정답은 아닌가 봅니다.
폭우가 내리는 꽃길을 걷는 날과, 진창길을 걷고 있어도 눈부시게 맑은 날이 있으니 말입니다.
당신과 내가 어떤 길 위에, 어떤 궂은 날씨에 있든 작은 꽃 한 송이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할게요.
이 편지가 당신의 하루에 작은 미소 한 줌으로 스쳐갈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일 겁니다. 부디 또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