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1] 나의 끔찍한 친구

by 조약돌

안녕, 당신!

오늘은 나의 끔찍한 친구를 소개합니다.

한글 이름은 줄여서 공황이고, 영어 이름은 줄여서 패닉이라고 불리지요.

공황이랑 함께한 지 햇수로 만 10년이 되었습니다. 같은 일을 10년 하면 전문가도 된다는데, 이만하면 가장 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니 이 편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공황장애의 모습으로, 의학적이거나 전문적인 지식은 아니랍니다.


공황장애 [ panic disorder 恐慌障碍]

‘연예인이나 걸리는 병 아니야?’

내 삶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기던 나이에 찾아왔으니 어쩌면 이 병은 지독한 자기 사랑의 대가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처음 만난 이후로부터 공황장애는 나의 일부분이 되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나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이 친구의 존재를 꼭 밝힙니다.

나를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혹여 공황이 찾아온 나를 보며 당신이 놀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보통 나의 친구소개는,

“서로 알아가기 앞서서 각자 가진 질병을 하나씩 이야기해 볼까요?”라는 농담으로 시작해서

‘어쩌다 너처럼 밝고 명랑한 애가? 왜?’ 같은 질문 아닌 질문들로 끝나곤 합니다.

그럴 때면 나의 마음에는 고마움과 민망함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고마움은 나를 좋게 봐준 당신에 대한 마음일 테고,

민망함은 ‘어디서나 나는 힘든 내색 없이 웃는 가면을 쓰고 살았구나’ 하는 마음에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나 역시 당신의 물음에 대한 알맞은 답을 마땅히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인을 알면 이 끔찍한 친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은,

원치않는 방문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보단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라 강요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떤 기억일까, 차마 안아주지 못한채 떠나보낸 나의 강아지일까, 세상에 첫 발을 디딘 두려움일까.

공황은 집착하는 나에게 더 자주, 더 오래, 더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나는 두 해 전,

그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공황의 방문에는 마땅한 정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허무한 결론이 공황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독립 시켜주었습니다.

설사 원인을 안다고해도

이미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없는 것 처럼 만들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건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과거를 모두 부정해야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혹여 초대하지 않은 이 친구가 당신에게 찾아왔을 때,

그 이유를 찾아 강제로 쫓아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공황이 짓누르는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진 것을 적어도 나는 경험해보았습니다.

아! 나는 어떤 용기로 나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시시콜콜 늘어놓게 된 건지요.

당신으로부터 전해진 이 온기가 무척 따듯하네요.

고마워요.

이 나의 작은 온기 역시 당신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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