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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핀 Nov 04. 2023

어느 저녁. 예고도 없이.


구타당하는 개처럼 비명이 울렸다. 지나던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곳을 둘러쌌다. 한 여자는 계속해서 몸을 구부리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라면을 먹다가 젓가락을 놓고 휴대폰을 식탁에 둔 채, 의자에 걸어둔 외투도 입지 않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여자는 전화기를 들고 계속 비명을 질렀다. 


세 살쯤 된 남자아이는 헝겊인형처럼 늘어져 아빠의 품에서 구겨져 있었다. 아빠는 입 안에 손가락을 넣기도 하고, 등을 두드리기도 하였다. 하임리히를 몇 번 해도 아이가 숨을 쉬지 않자, 등을 거칠게 두드렸다. 아이는 입을 다물고 손가락을 말아 쥐고 있었다. 두 눈은 깊이 잠든 듯 가늘었다.


절망과 공포의 시간이 다가옴을 자각한 비명이었다. 엄마는 응급대원에게 빨리오라는 통화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의 덧없는 시도와 노력이 무상하게, 1초가 지날 때마다 엄마의 상상력은 그 자신에게 자상보다 심한 고통을 주는 것이다.


나는 모인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우리의 상상은 엄마의 상상과 다르지 않다. 또래의 엄마들은 이미 울고 있었다. 미혼으로 보이는 남녀 사우들은 저 고통이 무엇인지 가늠도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이 부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 있던 군중 중 나 못지않게 무기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내 가슴의 먹자국은 온몸으로 퍼졌다. 식탁으로 돌아와 두 젓가락 휘휘 저었던 라면과 김밥을 모두 퇴식구에 집어넣었다. 내 옆 식탁에 앉은 사람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동영상을 보며 라면면발을 빨아대고 있었다. 그가 부러웠다. 


인생 최악의 순간을 보내던 부부와 아이는 자리에 없었다. 나는 매점으로 가는 길목에서 구조대원들과 눈물범벅으로 우는 아이를 찾았다. 엄마는 백발이 된 듯 탈진했고, 아빠의 안경은 김이 서려있었다. 인공호흡을 했기 때문에 며칠간 가슴 통증이 심할 거라는 구조대의 말이 차창밖 전봇대처럼 멀어졌다. 매점에서 900원을 내고 콜라 한 캔을 사서 마셨다. 


내 사무실 컴퓨터는 화면보호기가 채 작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여느 날 같았지만, 맥락도 없이, 경고도 없이, 도둑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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