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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핀 Apr 13. 2021

사진찍기를 그만 두다.

오랜 취미는 사진찍기였다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할 만큼 나만의 마스터피스 한 장 없지만, 사진찍기는 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꽤 오래된 취미이자 습관이었다. 


사진은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미대에선 과제를 위해서도 사진을 찍고, 하릴없이 돌아다녀도 시각적인 감을 키운다는 미명으로 사진찍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었다. 학부시절에는 광고 사진처럼 멋진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의 재능이 너무 부러웠다. 숫기 없던 나는 피사체인 친구도 파인더를 통해서라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내 사진들은 어딘가 솔직하지 못했고, 대면적이기보다 관음의 결과처럼 보였다. 친구들을 관찰하며 아름다운 느낌이 드는 그 순간을 촬영하기로 했다. 그 관음이 관조로 변하는 순간 나는 내가 원하는 사진의 화법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표정, 과제에 몰두하는 모습, 하다 못해 창밖에 무심히 앉은 참새 따위를 찍는 일은 질리지 않았다. 내 사진이 남의 주목을 끌었던 적은 없다. 사실 사진의 주제를 보여주는 방식이나, 주제를 드러내는 법등, 좋은 사진들의 접근법들은 내 알바가 아니었다. 당면한 상황에서 내 머릿속의 이미지와 눈 앞에 펼쳐진 그림이 마음에 들 때, 그것을 박제 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사진찍기였다.


아버지의 보물 펜탁스 카메라를 도둑맞은 후, 한동안 경제고에 사진을 찍지 못했다. 쥐꼬리만한 아르바이트 돈을 모아 열망하던 캐논 EOS 7을 샀다. 하지만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다시 팔았다. 대학원 시절, 월급을 모아 맥북 17인치, 내친김에 EOS 30D도 샀다.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신이 준 선물이었다. 사용 빈도가 낮은 연구실 기품 렌즈들은 내가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장만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정말 좋은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같은 캐논 카메라를 소유한 룸메이트 형님과 함께 쏘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매일 카메라를 손에 들고 다녔고, 내 주변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피사체가 되었다. 


동료들은 왜 그 비싸고 가성비도 떨어지는 17인치 노트북을 왜 샀는지 궁금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맥을 좋아한다고 했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디자인 학교와 회사를 다니면서 사춘기처럼 뚜렷하게 내 자아를 형성해 버렸다는 점이다. 프로페셔널한 시각 작업을 능숙하게 할 수 있고, 이제는 취미로 그것을 때때로 작업하지만, 마음먹으면 가진 장비를 이용해서 언제든 프로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복잡한 자아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의 괴리감을 조절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당시 나는 경험을 통해 사진찍기가 부유한 이들의 취미라는 것을 알았다. 고가의 좋은 카메라도 필요하지만, 디지털 카메라 환경에서는 그에 못지 않게, 밸런스잡힌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 데스크탑 환경도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프로의 사정이고, 그 환경을 동경하는 내가 당시의 형편에 빗대어 취미로써 흉내내는 타협점이 그 정도였다. 다시 말해, 프로가 가진 것은 다하고 싶었고, 형편은 안되니 이상한 투자가 된 셈이다. 또한 나는 사진은 잘 찍는다는 말은 듣고 싶었지만, 그들이 육체로 감당하는 일들을 순수하게 노력할 자신은 없었다. 그나마 쉬운 것은 먹는 걸 줄여 돈을 쓰는 것이었고, 그렇게 어정쩡한 상황을 연출한 심리적 괴리감으로부터 머리를 돌린 것이었다.


여행 사진은 일상 사진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다. 새로운 곳에서 사람이 살았던 흔적, 대중 지나는 자리, 누군가가 성취한 높은 건물은 좋은 대상이다. 미끈하게 이쁜 것 보다 때묻고 지저분한 것이 더 매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여행 덕이다. 앞에 앉은 사람, 하늘의 구름, 찻잔의 커피,나무 끝에 맺힌 이슬, 잠자는 거위의 꺾인 목도 찍었다. 뭐든 아름다워 보이기면 모조리 찍었다. 출장지로 이동하는데 차 안에서 쉴새 없는 셔터 소리에 지도교수님께서 짜증의 한숨을 쉬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수확물을 검토하면서 나는 좌절했다.구도는 어긋났고, 주제는 불분명했고, 빛도 이용할 줄 몰랐다. 그저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타나면, 셔터를 누르는 것이 내가 했던 일이다. 과녁에 많은 화살을 쏘아야 한두개는 맞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찍었지만, 지금 보면 과녁을 조준이나 했을까 싶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그때의 사진들을 다시 돌아보면 흥미롭다. 사진이 좋다기 보다, 그 순간 셔터를 누르도록 이끈 감정을 상기해 주기 때문이다. 전문가 수준에 오른 취미인들에 비하면 비루한 사진들이지만, 이따금씩 휴대폰에서 오랜 사진들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피사체(주변사람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할 무렵, 베트남의 한 골목에서 카메라를 소매치기 당했다. 값비싼 사진기만큼 미쳐 다 백업하지 못한 사진들이 아쉬웠다. 베트남 사진들은 아름답지만, 사건은 트라우마였다. 늘 끼고 다니던 걸 잃고 제정신이 아닌 걸 안 교수님께서 연구실에서 놀고 있는, 당시 화질의 삼성이라는 별명으로 신흥 강자가 되었던, 삼성 DSLR을 써보라고 주셨다.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보려 애썼다. 하지만 늘 불안했고 잘 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난, 사진을 찍는게 카메라의 유무에 따른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할 쯤 공간과 건물의 사진찍기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갔다. 연구실에서 Lumix 포서드를 장만하게 되어 그걸 빌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Lumix는 환상적인 카메라였다. 손바닥 만큼 작았지만, 색감과 퀄리티는 무시무시했다. 따뜻한 색감은 감탄을 일으켰다. 초점 잡는 속도가 더디고, 셔터 스피드도 느려 치명적이지만, 무거운 dslr도 늘 끼고 다녔던 나에게는 신나는 장난감이었다. 사색하면서도 촬영이 가능했다. 당시 사진들에서 나의 즐거움을 읽을 수 있다. 내가 연구실을 떠날 때, 연구실에는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 없는 듯 했다. 인스타그램의 시대였다. 


아이가 태어나자 나의 완벽한 피사체는 내 딸, 리온이었다. 나 만큼 끔찍하게 사진찍히기를 싫어하는 아내 덕에 인물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던 나에게, 이제 명분도, 이유도 완벽한 대상이 나타난 것이다. 오랫동안  눈여겨 봐둔 Fujifilm X-T1을 샀다. 원할때 수동/자동을 오가며 조절할 수 있는 물리 다이얼은 마음에 쏙들었다. 내게 X-T1은 명기였다. 단렌즈로 렌즈군을 꾸렸다. 결과물에 만족했다. 캐논으로 동일한 렌즈군을 구매한다면 거의 800만원 정도들지만 후지를 쓰게 되면 400만원 선에 바디와 라인업을 꾸릴 수 있었다.후지의 독특한 색감은 사진을 계속 바라보게 한다. 피부색이 다소 차갑게 나오는 경향이 있지만, 풍경에 있어 니콘 혹은 캐논에 비해 독특하고 다양한 계조의 녹색 색상이 매력적이다. 비현실적으로 깨끗하고 밝은 색상을 뽑아줬다. 아이는 정말 사랑스럽게 찍혔다. 


오늘 저녁 강남역 2번 출구에서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20대 후반의 사람에게, 마지막 후지 단렌즈를 팔았다. 이제껏 악세서리까지 약 500만원을 투자했고, 중고로 팔아 200만원을 건졌다. 후지 카메라를 구입한지 5년만의 일이다. 죽을 때까지 취미라고 생각한 일을 정리한 셈이다. 내가 어릴적부터 그렇게 갈망했던 아름다운 구도와 빛의 사진을 찍어보는 일도 없었으므로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의 정경을 찍기위해, 호수 한가운데 들어가 삼각대를 세우는 사진작가를 찍은 사진을 보았다. 그는 위아래로 방수 작업복을 입고, 트라이포드를 물 한가운데에 세우고, 방수장비를 카메라에 둘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제와 빛을 잡아내기 위해 그만큼 피사체에 다가가야 한다는 사진의 오랜 금언을 실천하는 순간이다. 나는 평생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태도를 가진 적이 없다. 나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내 몸을 들이 밀은 적이 없다. 길가의 돌멩이도 옮겨 본적이 없다. 좋은 사진을 위해서 꽃을 꺾거나 (찍어달라 요청받지 않는 한) 피사체가 될 사람에게 특별한 표정이나 자세를 요구한 적도 없다. 심지어 내 딸에게도 그런 적은 거의 없다. 내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전달할 주제가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에 대한 걸 고민하기 보다, 사진을 찍는 재미와 감정이 더 중요한 사람인 것이다. 그 덕분에 내 사진들은 현장기록 사진 같다. 그 현상이 일어남을 찍는 다는 것이 중요하지, 결과물인 사진이 남에게 얼마나 예술적으로 보이는지는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 관조라고 생각하고 찍은 사진들이 방조에 가까운 사진들이었다. 내 삶의 태도도 그런 것 같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사실이다. 


아이도 내가 카메라를 들이미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점은 피사체로 더 다가간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검은색 카메라가 자신을 찍는 것에 질린 내 딸은 이제 카메라를 보고 웃지 않는다. 최근 딸의 사진에는 누군가 시킨 것 처럼 틀에 박힌 억지로 만든 기괴한 미소 뿐이다. 나는 그간 내가 좋아서 하던 사진찍기가 아이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사진기들 들이밀었던 수 많은 친구들도 그랬다. 


앞으로 나는 DSLR을 구입하지 않을거다. 중고로도. 내 컴퓨터에 있는 4만장이 넘는 사진들은 한 동안 촬영을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품이다. 이들도 전기가 끊어지면 다른 이에게 노출될 일도 없을터이다. 카메라를 정리하고 남은 200만원으로 나는 Osmo Action(Go Pro같이 생긴 액션캠)과 Sony RX0II를 샀다. 손바닥의 반밖에 되지 않는 이 두 카메라는 여행의 풍경을 더 즐기고,  앞에 앉은 사람과의 이야기 하는 시간을 더 늘려줄 것이다. 나는 이제 사진을 찍기 위해 피사체 앞에서 표정을 일그리고 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는 시간을 들이지 않을 것이다. 해상도는 낮겠지만. 좋은 작가들의 사진에서 관찰되는 공통점은 주제의식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이다. 아이폰 사진 감성도 굳이 DSLR을 들고다녀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순발력과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힘이, 화소수 보다 강하다는 것이 4만장의 사진을 돌아보며 알게 된 진리다. 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때 그것을 담고자 애쓴다면, 굳이 DSLR이 필요한 시대는 지났고. 그리고 고화질이 아니더라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커다란 카메라에서는 인상을 쓰고 피하던 리온이가 작은 카메라에게는 재간을 부리며 웃기 때문이다.


액션캠으로 넘어가니, 동영상 편집이 큰...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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