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중유락(苦中有樂)의 삶을 살아내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갑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 없이 흘러가고 있으며,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으며, 그렇게 소중한 인연들도 세월의 강물에 떠내려가기 마련입니다.
한때 좋았던 시절, 놓치고 싶지 않던 찬란한 순간들, 그리고 따스했던 관계들도 흐르는 시간 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만나는 시간과 인연은 내 삶에 기쁨과 희망을 선사하는 값진 순간이자 더없이 소중한 기억이 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언제나 배려심 깊은 대장부셨던 나의 자랑스러운 어머니, 조병영 여사님은 제게 영원한 쉼터이자 고중유락(苦中有樂)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여든일곱의 연세에 자식들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쉬운 이별을 고한 후,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저희는 아직도 가끔 당신을 그리워하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苦中有樂: 인생은 즐거운 것
"고중유락(苦中有樂)"이라는 말처럼, 인생은 본디 즐거운 것이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제 삶의 깊은 뿌리가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고, 감사함을 잃지 않는 법을 어머니는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계획과 수련이 필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계(生計), 신계(身計), 가계(家計), 노계(老計), 그리고 사계(死計), 이 다섯 가지 인생 계획이었습니다.
1. 생계(生計): 나만의 인생을 설계하다
어머니는 항상 "내 일생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셨습니다. 단순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길을 개척하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내려 노력하셨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제게 살아있는 인생 교과서였습니다. 당신의 억척스러운 삶은 척박한 땅에 꽃을 피우듯, 고단함 속에서도 기어이 즐거움을 찾아내는 강인함을 보여주셨습니다.
2. 신계(身계):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다
"이 몸을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라는 신계(身計)는 어머니께서 윤리관과 바른 가치관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타인에게 부끄럽지 않은 언행을 실천하셨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며,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태도는 제가 본받아야 할 가장 큰 덕목이었습니다.
당신의 몸을 도구 삼아 가족을 위해 헌신하시면서도,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제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제 삶의 나침반이 됩니다.
3. 가계(家計): 사랑과 배려로 가정을 꾸리다
어머니는 "나의 가족관계와 집안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가계(家計)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가족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며,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희 자녀들을 우선으로 생각하셨고, 따뜻한 보살핌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가정을 지키셨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이 있을 때는 현명하게 중재하시고, 늘 포용력 있는 자세로 모든 가족 구성원을 아우르셨습니다.
어머니의 배려심 깊은 마음과 대장부다운 면모는 저희 가정을 든든히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진정한 사랑과 유대감을 배웠고, '엄마라는 이름의 쉼터'가 얼마나 견고한지 깨달았습니다.
4. 노계(老計): 아름다운 노년을 준비하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인가?"에 대한 노계(老計)를 염두에 두셨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물질적인 준비를 넘어,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의미 있는 노년을 꿈꾸셨습니다. 꾸준히 배우고 익히시며 세상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으셨고, 나이가 들어서도 활기찬 삶을 영위하셨습니다.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베풀고 나누는 삶을 통해 당신의 노년은 더욱 빛났습니다. 어머니의 노년은 나이 듦이 결코 쇠락이 아니라, 삶의 지혜와 경험이 응축된 아름다운 과정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계셨던 모습은 저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5. 사계(死계): 존엄한 마무리를 설계하다
마지막으로 "어떤 모양으로 죽을 것인가?"에 대한 사계(死計)는 어머니의 굳건한 인생관을 보여주는 결정체였습니다. 당신은 여든일곱의 연세에 저희 자식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마치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처럼 편안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아쉬운 이별이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려는 자세를 보이셨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오히려 따뜻한 미소와 격려를 건네셨던 어머니의 모습은 제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죽음조차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는 어머니의 태도에서 저는 진정한 존엄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조병영 여사님. 당신께서는 이 다섯 가지 계획을 바탕으로 윤리관, 자녀관,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제 삶의 영원한 자랑이자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세월이 흐르고 사람이 가고,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흘러가지만, 당신과의 소중한 인연과 추억은 제 마음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입니다. 당신이 떠나신 지 한참이 지났지만, 저희 자식들은 아직도 가끔 모여 당신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당신의 강인함과 따스함, 그리고 고중유락(苦中有樂)의 지혜가 담긴 삶은 저희에게 영원한 지표이자, '엄마라는 이름의 쉼터'에서 얻는 변치 않는 위안이 되어 줄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은 삶의 모든 고난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는 법을 가르쳐주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