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빨대가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2025년 7월 첫째 날 겪었던 일

by 안형섭

신도림역으로 향하는 2호선 지선 열차는 오전 8시 7분에 신정네거리역에 도착한다. 지하철 역으로 내려가자마자 가장 첫 번째 개찰구를 통과해 계단을 내려가면, 좌우로 1990년대에 지어졌겠다 싶은 낡은 타일들로 승강장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열 다섯 걸음 정도 걸어 마주하는 첫 번째 둥근 기둥 바로 앞의 열차 출입문으로 탑승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신도림역에서 2호선 순환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환승 통로로 빠르게 내릴 수 있다. 그러면 8시 33분이면 신촌역에 내릴 수 있다.


그렇지만 2호선을 타고 오늘은 평소보다 멀리 간다. 이것부터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신촌역에서 내리지 않는 경우는 전날 밤잠을 이루지 못해 졸았거나, 간만에 흥미를 끄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놓치는 정도였다. 면접에 필요한 서류를 담은 아빠의 낡은 쥐색 서류 가방 손잡이가 금세 축축해지고 매끈해진다. 스무 다섯 해를 넘게 살아도 아직 두려운 것이 많구나, 하고 나는 생각한다. 문득 이제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함께 가족여행이 생각난다.


그날도 매우 더웠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아빠가 문을 열더니 바닷가에 폭죽을 쏘러 가자고 했다. 나는 한 과학 만화책이 생각났다. 사고뭉치 남자 주인공에게 보호자 역할의 로봇은 말했다. '폭죽의 원리는 로켓과 비슷해.' 싸구려 종이 막대로 화약이 담긴 로켓을 발사한다는 게 어린 나에게는 얼마나 위험하게 들렸는지. 그 위험을 나의 양육자가 요청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 그래서 나는 내 양육자의 양육자 품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뭐, 결국 할머니 손에 이끌려서 바닷가에 나서긴 했지만.


발 빠짐을 주의하면서 비틀거리며 지하철에서 내린 뒤, 나는 이 낯선 승강장의 모습을 부자연스레 살피게 된다. 다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 바쁘고 분주한 아침. 눈으로 목적지를 살피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과정인 3번 출구 표시가 나에게는 반드시 확인할 이정표가 된다. 왼쪽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학원 광고를 지나쳐서 출구로 나섰더니 7월의 더위는 금세 목덜미를 잡아뜯는다. 언제나처럼 면접은 순식간에 끝났다. 돌아오는 지하철에 흐물거리며 앉아, 온 몸에서 힘을 빼 본다. 몸이 흘러내린 만큼 비워진 그 틈에서 눈물이 났다. 커피에 너무 오래 담긴 종이빨대처럼 나는 약해졌고, 터져 버렸다.


종이빨대. 나는 다시 그 폭죽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폭죽을 쏘기엔 그 종이 막대는 전혀 든든하지 않았다. 폭발이라는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방향으로 발산하는 에너지를 담아내기엔 너무 약해보였다. 내일도 이 보잘것없고 소시민적인 '취업에 대한 걱정' 하나가 충족되지 못한 나의 불안을 나는 담아낼 자신이 없었다. 굳이 인공지능이나 핵전쟁이나 이념 투쟁이 아니더라도, 내 앞의 정해지지 않은 미래들이 오늘 본 면접처럼 내 손 사이사이로 빠져나가 버릴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종이 빨대였고, 화약을 담은 종이 막대였다.


"그냥 들고 있어봐." 할머니는 오늘처럼 울고 있는 나를 품에 끼고 데려가시면서 말했다. "들고만 있어. 불꽃은 알아서 지 갈길 간다." 그렇게 모래가 서걱거리는 해변가에서 나는 폭죽을 들었고, 그 말대로 들고만 있었다. 불이 붙자, 폭죽은 종이 막대의 방향을 따라 날아갔다. 쉬익, 펑, 펑, 펑. 나는 어느 정도 그 흐름에 적응하게 되었다. 펑 펑, 다시, 펑, 펑, 그리고 정적. 파도 소리만 남은 정적은 어딘가 평화롭고 따듯했다. "내 아 강아지, 잘했네"라는 할머니의 말과 품처럼.


다시 신도림역에 도착한 나는 똑같지만 달랐다. 겉으로는 바뀐 것이 그다지 없었다. 막 운 것 같이 눈이 살짝 부었긴 했을 것이다. 오로지 하나의 변화가 있었는데, 잠시 그 해변을 다시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막막한 안개 너머로 폭죽을 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무언가 대단한 행위가 아닌, 그냥 폭죽을 들고 있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어색한 정장차림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의 앞을 가려주는 사람이 되기를 조심스레 바라게 되었다. 미지의 세계를 헤메는 걸음만큼 더 경험많은 안내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되뇌이면서 나는 오늘의 개찰구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