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이거 봤어? (인생을 다룬 영화 추천 편지 #1) 2025.08
친구야, 무더운 여름도 벌써 끝을 보이는구나. 너는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요즘 몇몇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재밌게 살고 있어.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대학도 졸업하고 이제 취업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들이 자주 있어. 너도 공감하지?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도전하고 싶어. 또 한편으로는 묘한 반항심이 들었기도 해. [취준생으로서의 나]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모습은 [2025년의 나]이기도 하거든. 일련의 취업 과정에서 나를 잃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아.
이렇게 멋있는 척 이야기해도, 나도 때때로 (어쩌면 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한다? 가끔씩 버스 타고 도서관을 가다가도, 별생각 없이 엘리베이터의 광고를 읽다가도,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면서 치킨을 뜯다가도 갑자기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거야.
“나, 지금 잘못 살고 있나?”
“나, 잘못된 길로 가고 있으면 어떡하지?”
“나 지금 이렇게 사는 거 나중에 후회하려나?”
같은 생각 말이야. 내가 지금 내리는 결정이 미래의 삶을 결정짓는다. 학창 시절부터 질리도록 들었던 이 말이 현재의 나에게 건네주는 책임감이 참 무거워. 너도 그런 때가 있겠지. 과거의 결정은 후회스럽고 미래의 결과는 두려운 때 말이야.
있지, 나는 그럴 때마다 영화 하나를 생각하게 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스, 2022)라는 영화야. 삶의 의미를 강조하는 수많은 영화들 중에 굳이 이 영화를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야. 가장 현재 시대에 알맞은 위로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야. 그리고 만약 너도 나처럼 삶 사이사이에 찾아오는 불안들이 느껴진다면, 그런 날 밤 이 영화를 보는 걸 추천해.
“늘 뭔가 이룰 기회를 놓쳤을까 전전긍긍하지. 그 모든 거절과 그 모든 실망이 당신을 여기로 이끌었어. 이 순간으로.”
'에블린은 그 어느 때보다 삶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 사랑에 빠진 남자와 함께 부모님을 떠나 결혼했고 미국에 정착했다. 남편 에드워드와 세탁소를 차리고 생계를 유지하던 그녀는 그러나 중년이 된 현재 삶이 어렵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녀의 하나뿐인 딸 조이는 무려 동성애자고, 미국으로 함께 도피한 남편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가장이기는커녕 매일 실없이 인형 눈으로 장난만 치고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것도, 탈세 혐의를 받아 세무조사를 대처해야 하는 것도,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아버지를 중국에서 모셔와 챙기는 것도, 동성애자 딸의 여자친구를 어렵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정확히는 적당히 무시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몫이다. 가족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던 시기는 잊은 지 오래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이렇게 별 볼 일 없게 끝나는 것은 아닐까?
그러던 어느 날, 만화책에서만 볼 수 있을 일이 일어난다. 멀티.. 뭐? 멀티버스? 다중우주이론? 갑자기 남편이 자신이 전혀 다른 우주에서 온 에드워드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부 투파키인지 주부 추바카인지 웬 악당 하나가 있는데, 온 우주의 에블린을 죽이고 있단다. 오직 그녀만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무슨 수로? 아니 잠깐, 조부 투파키라는 게 내 딸 조이였어? 나는 오늘 세무조사를 끝낼 생각뿐이었는데.'
나는 네가 이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이 영화의 감독은 다니엘 콴과 다니엘 사이너트라는 감독이야. 이름이 똑같이 다니엘이어서 둘을 합쳐 다니엘스(Daniels)라고 부르기도 해. 다니엘스는 이전에 <스위스 아미 맨>이라는 영화에서도 흔히 말하는 b급 코드의 유머를 선보였거든? 그래서 만약에 <킹스맨>이나 <남자 사용 설명서> 같은 영화의 유머코드를 좋아했다면, 이 영화도 꽤나 재밌게 볼 수 있을 거야.
중요한 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스토리를 믿고 따라가 보는 거야. 사실 초반에서 중반부까지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 ‘왜 이렇게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거 같지? 이건 그냥 웃기려고 넣는 장면인가?’ 하고 말야. 그렇지만 내가 장담할게. 이 영화의 여러 장점 중 하나가 바로 ‘떡밥 회수 능력’이거든. 그러니까 마음 놓고 웃으면서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이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와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야.
나는 네가 영화를 보면서 ‘삶의 의미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좋겠어.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가장 흥행한 키워드 중 하나는 ‘환생’, ‘다중 우주’ 일 거야. 나는 그 원인을 (물론 하나로 단언하는 건 위험하겠지만) ‘삶에 대한 후회와 불안’이라고 생각해. ‘과거로 돌아가 내 선택을 바꿀 수 있다면. 미래를 알고 대처할 수 있다면. 그럼 지금의 나는 편리하고 확실하게 행복할 수 있을 텐데.’라는 사람들의 마음에 이 영화가 어떤 위로와 메시지를 전하는지 천천히 감상하면 좋을 것 같아.
당신이 또 내게 상처를 준 대도, 이 말은 하고 싶어. 다른 생에선 당신과 함께 세탁소도 하고 세금도 내면서 살고 싶어.
불안이라는 이름의 오늘이지만, 이 영화가 오늘 이 한 줌의 시간을 소중하게 만들어주길 바라. 남들은 멍청한(stupid) 일이고, 의미없는 일이라고 말하더라도, 삶의 아름다움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너와 내가 되기를, 끈적거려도 사진으로 찍으면 너무 아름다운 여름처럼 2025년 8월 말이 행복한 사진으로 너에게 남기를. 이만 줄일게. 다음 편지에서 더 얘기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