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5, 렘스, 프랑스
“샴페인에 왔으니 샴페인 샤토를 방문해야지.
샤토마다 동굴 투어가 있다던데?”
“어디 어디를 갈까? 난 뵈브 클리코에 가고 싶은데”.
“일단 멈부터 갑시다.”
그 많은 샴페인 샤토 중에 Mumm을 택한 이유는, 첫째 우리가 자주 마시고 몇 병 가지고 있으며, 둘째 예약이 가능했고, 셋째 투어 가격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인터넷과 바쁜 일정 탓에 준비가 잘 안 된 점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샴페인 샤토 투어를 미리 예약하지 못했던 점이다. 디디에는 떼땅제 ( Taittinger)와 뵈브 클리코 ( Veuve Cliquot)를 추천했으나 뵈브 클리코는 이미 예약이 꽉 차서 투어가 불가능했다. 우리는 멈과 떼땅제만 가기로 했다.
렘즈와 에페르네에 집약되어 있는 세계 유수의 샴페인 샤토들은 모두 지하에 동굴을 파고 샴페인을 보관하고 숙성시킨다고 한다. Mumm의 경우에는 지하에 25킬로 미터나 되는 땅굴을 파고 그뿐 아니라 그곳에서 퍼져나가는 수많은 곁가지 동굴을 파서 샴페인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이 지대의 땅 속은 모두 쵸크로 되어있다고 한다. 우리가 분필로 알고 있는 그 부서지는 가루 같은 것이다. 렘스는 물론 거기서 4-50분 떨어져 있는 에페르네의 샴페인 동굴도 모두 쵸크로 되어 있다는 거다. 나는 궁금해서 동굴벽을 손톱으로 살짝 긁어 보았는데 정말 가루가 밀려 나왔다. Mumm 샴페인의 동굴 투어는 샴페인에 관한 지식을 많이 알려주어 아주 유용한 투어였다.
샴페인은 3가지 포도 품종으로 만든다.
샤도네이 (Chardonnay)
피노 누아 (Pinot Noir)
피노 뮈니에 ( Pinot Meunier)
샤도네이와 피노 누아, 이 두 가지는 우리가 잘 아는 품종이다. 그런데 마지막 품종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피노 뮈니에 ( Pinot Meunier)이다. 이렇게 3가지 품종을 섞어서 샴페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Blanc de Blance, Blance de Noir라는 이름의 샴페인도 선을 보인다. Blanc de Blance 은 하양에서 하양을, 다시 말해서 화이트 와인인 샤도네이로만 만든 샴페인이다. 말만 들어서는 왠지 달콤한 샴페인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꽤나 드라이하다. Blance de Noir는 적포도인 피노 누아와 피노 뮈니에만으로 만든 샴페인으로 황금색 빛깔의 샴페인이다.
샴페인을 고를 때 당도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Brut, Sec, Demi-Sec이다. 아마도 Brut는 많이 보았을 것이다. 웬만한 샴페인에는 모두 Brut이라고 쓰여 있다. 당도가 아주 없는 샴페인이다. 중간 당도의 샴페인을 원한다면 Sec이라고 쓰인 샴페인을 사면 된다. Sec 원래 드라이라는 뜻이나 샴페인에서는 반대의 의미인 달달한 맛으로 쓰인다. 아주 달달한 샴페인을 원한다면 Demi-Sec이라고 쓰인 샴페인을 고르면 된다. 그런데 이 샴페인은 당도가 33%가 되는 매우 단 맛이 난다. 나는 Brut 나 Sec 샴페인이 마실만 한 것 같다.
Brut: 드라이한 맛, 당도가 없다
Sec: 적당히 달달한 당도
Demi-Sec: 매우 단맛.
떼땅제 동굴은 아주 아름다웠다. 꼭 가보고 싶었던 뵈브 클리코도 동굴이 아주 아름답다고 한다. 떼땅제 샤토는 원래 수도원이었다. 지상의 건물은 완전히 리모델을 해서 멋있는 현대식 건물이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둥글둥글한 동굴이 정말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처럼 잘 만들어져 있다. 게다가 한 층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지하 3층까지 연결이 되게끔 지어져서 샴페인을 보관하는 온도도 층마다 달랐다. 중간중간에 지상으로 연결되는 문들이 보이자 가이드가 이 문은 주방으로 통하는 문, 저 철창 문은 또 외부로 통하는 문이라며 설명을 해 주었다. 떼땅제 샴페인은 다른 샴페인에 비해 아주 드라이한 게 특징이다. 그래서 스티븐이나 나는 그리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동굴 투어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디디에의 권유에 따라 뒷동산에 올랐다. 위에 올라가면 자그마한 채플이 있는데 전망이 좋다고 가보라고 한 곳이다. 이 작은 마을, 빌레 도망쥬는 뒷동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두 길밖에 없을 정도로 작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리 집 앞길이다. 약 10분을 올라가면 확 트인 포도밭이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다른 마을들도 보인다. 너무나 아름답다. 나는 여기서 피크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내일 일정을 바꿔서 점심때 여기서 피크닉을 해야겠다. 세버린에게 담요와 등나무 바구니를 빌려서 간식과 샴페인을 담아 올라와서 점심때 피크닉을 해야지.
선물처럼 예쁜 포도밭 마을 풍경을 보며 동산 꼭대기로 올라갔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나는 여기까지... 이 포도밭 전경으로 정말 만족해.
채플은 가지 말고 내려 가요. 금방 어둑어둑 해질 텐데..”
스티븐은 꼭 가야겠다면서 굽이를 돌아 숲 속으로 들어간다. 약간 으스스하기도 하고 날도 어둑해지려 해서 자꾸 돌아가자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가는 스티븐. 할 수없이 그의 옷 끄트머리를 잡고 따라가는데 갑자기 툭하고 무덤들이 나온다. 서양의 무덤들은 그래도 무섭지 않은 편이라 자주 봐도 그리 놀라지 않는데 여기는 불현듯 그것도 어둑한 날의 차가운 공기 속에 툭하고 튀어나오는 바람에 나는 싸한 느낌이 들어 싫었다. 궁시렁거리며 빨리 내려가자고 보채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덤의 비석들을 하나하나 읽어 보는 스티븐이 너무나 야속해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돌아가자”
장난처럼 보채다가 화로 바뀌는 시점이 있다. 내 머리에 김이 오르는 걸 감지했는지 스티븐이 사태를 눈치 빠르게 파악하고는 냉큼 내게로 온다. 그런데, 2초 늦었다.
“내일 피크닉은 취소야!”
스티븐의 팔을 부여잡고 씩씩거리며 집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