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날 뭐 하지?

Day 33, 코펜하겐, 덴마크

by 여행에 와 락


오늘은 35일간의 대장정이 끝나는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여행 자체는 33일이지만 비행기 왕복 여행 이틀을 더하면 도합 35일이다. 이쯤 되니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나도 슬슬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지 이미 며칠 되었다. 이 여행이 내 생애에서 가장 긴 유럽여행이었다.


처음에 스티븐의 지인들을 만날 걱정에, 특히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스트레스보다는 둘만 또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끼리만 여행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조금은 떫떠름하게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바로 그 사람들의 따뜻하고 배려 넘치는 인간적인 모습에 흠뻑 반해서 이 여행은 나의 최고의 여행이 되었다. 이심전심인지, 은근히 남편에게 이런 느낌을 피력했는데, 남편도 이번 여행이 자신의 최고 여행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매력적인 문화유산도 가슴 떨리는 설렘을 주지만 사람들이 주는 감동은 훨씬 깊은 울림이 있다.


올레와 도르테가 우리에게 집을 통째로 물려주고 여행을 떠난 관계로 그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청소도 철저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나는 이런 경우에 머리카락 하나도 남기지 않고 철저히 정리해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어제 제대로 못 본 코펜하겐에 다시 가기로 했던 일정도 취소하고 청소에 몰두했다. 대신 덴마크에 온 이후로 하루도 느지막이 일어나 천천히 시작한 날이 하루도 없어서 오늘은 뭐든 쉬엄쉬엄 천천히 하기로 했다. 오늘 밤을 꼴딱 새우고 새벽 3시에 공항에 도착하기로 했으니 시간은 아주 많다. 아직 14시간이나 남았으니 말이다.


올레와 함께한 마지막 사진


브런치를 천천히 먹고 있는데 어제 만났던 앤 마리에게서 연락이 온다. 코펜하겐 시내에 왔으면 함께 걸을까 묻는다. 스티븐이 오늘은 집에서 청소하고 짐 싸기로 했다고 대답한다. 이따가 저녁때 바비큐할 테니 집으로 오란다. 짐 싸고 설거지, 빨래, 청소를 마치고 뒷마당으로 나가 마지막으로 정원을 다시 감상하기로 했다. 연신 감탄을 해가며 푸르고 무성한 여름날의 호숫가로 커피 한잔을 들고나갔다. 마당에서 호수로 가는 길 중앙에 버치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를 끼고 살짝 내려가면 또 다른 테이블과 의자들이 호수 바로 앞에 놓여있다. 이 돌로 된 테이블은 터키석처럼 보이는 초록색 돌로 모자이크가 되어 있다. 며칠 전 올레와 도르테와 함께 와인 한잔 마시러 나왔을 때 올레가 물었다.

이 테이블이 어느 나라 제품 같아?

터키, 그리스, 이집트를 거쳐 간신히 모로코 정답을 맞혔다. 작은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이다. 나는 작고 세심한 일은 자주 무시하는 편인데 이제는 작고 사소한 관심이 살갑고 정답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이 되어 안드레와 앤 마리집으로 향했다. 기차는 코펜하겐 교외로 연결되어 있는 교통수단으로 아주 편리하다. 20분마다 한 번씩 오는데 아주 조용하고 대중교통으로서 자리매김을 잘한 것 같다. 무거운 존재감의 기차가 아니라 전철이 옥외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특이한 것은 자전거를 싣고 내리기 편리하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자전거를 가지고 타면 무료로 이용하게 한 이후로 자전거 고객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개표 기계가 따로 없고, 표 검사하는 사람도 없다. 기차 타는 곳에 세워져 있는 말뚝 같은 곳에 교통카드를 대고 나서 타면 되는데 가만히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교통카드를 이곳에 대지도 않고 무료로 이용하고 있다.


안드레와 앤 마리의 집은 기차역에 거의 붙어 있다. 기차가 조용해서 전혀 불편하거나 시끄럽지 않고 가끔 보이는 기차가 오히려 정겨워 보인다. 마당에서 와인을 한잔 마시고 안드레가 바비큐로 케이전 햄버거를 구웠다. 여러 가지 허브와 스파이스가 들어간 이 케이전 프렌치 햄버거는 기가 막히게 맛이 좋았다. 햄버거의 신세계를 맛본 느낌이다. 레시피를 물어봤더니 이 프렌치 햄버거는 미국 요리 책에서 배웠다고 한다. 케이안 페퍼, 쿠민, 마늘, 양파 등으로 아주 특이한 맛을 낸다. 이번 여행으로 여러 가지 레시피를 배운 것은 나에게는 아주 큰 보너스이다. 요새 음식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다. 독일 전통 아침 식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프랑스 전통 아침식사, 벨기에 홍합요리, 훈제 연어 샐러드, 등등 배운 게 많아 든든하다. 올레와 도르테의 아들, 라스무스에게서 스파게티 앤 밋볼에 페페론치노와 칠리 오일 넣는 것도 배웠다. 그 외에도 일세에게서 배운 술을 넣어 만드는 수제 잼, 미케의 초간단 애플파이, 도르테의 디저트, 라스무스 여자 친구의 전채 샐러드 등도 있다.



햄버거와 와인도 맛있었지만 안드레와 앤 마리와 최근에 3일이나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낸 일이 더 좋았다. 올레와 도르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그들과 더 친해진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사람을 얻었다.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만나면 유쾌하고 즐겁지만 아픔도 함께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진실한 사람들이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주는 인간관계를 그들에게서 배웠다. 따뜻함이다. 이번 여행의 주제와 클라이맥스는 사람이고 따뜻함이다. 나도 사람냄새 풀풀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