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진단을 받은 엄마와 간병하는 막내딸 이야기
일단 서울에 유명한 메이저 병원들의 홈페이지를 다 열어보았다.
생각보다 뇌쪽 시술이나 수술의 종류가 다양한지
교수님도 진료 하는 병들이 다르게 쓰여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는건 그저 우리 엄마의 머리 속에 커다란 무언가가 있다는거 뿐인데
아직 어떤건지도 모르는데 어느 병원 어느 교수님을 만나야 하는건지
도저히 알 수 없어서.
내가 어릴 적 엄마도 누군가의 보호자가 처음이였듯이
나도 보호자는 처음이였기에
바닥부터 시작하는 비장한 마음 마저 들었다.
바닥을 쳤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다 는 누군가의 명언은
사실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도움은 그저 이 병을 먼저 겪은 분들의 경험과 나눔뿐이었다.
네이ㅂ에 검색하니 관련 환우들과 보호자들의 카페가 있었다.
그 중 엄마와 비슷한 케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그 분들이 공유한 MRI사진들 덕분에 정보를 찾기가 한결 수월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밥 먹는것도 건너 뛰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엄마를 큰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 병에 대해 알아야 했고, 결정해야 했고, 단단해져야 했다.
수분을 빼앗긴 부스럭한 식빵 쪼가리처럼
내 눈과 입에서 열이 뿜어져 나와 말라 비틀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정보를 얻으면 곧장 언니와 연락을 하고 나누었다.
떨어져 살아서 엄마가 눈 앞에 보이지 않는 나보다
근육도 빠지고 균형 감각에 문제가 생겨 비틀거리는 엄마를
두 눈에 오롯이 담으며 한 집에 살고 있는 언니는
나 라는 엄마의 보호자를 지켜내는 더 큰 보호자가 되었다.
언니와 나는 여러 밤동안 깜지를 써내려가듯 정보들로 빼곡히 채웠고,
드디어 마음을 정하고 0000병원에 예약을 했다.
하나님은 일평생 당신을 사랑해온 우리 엄마를 버리지 않으셨다.
전공의 파업 이후 확연하게 축소되어버린 의료 시스템 속에
감사하게도 다음 달에 곧바로 처음 교수님을 만나는 날짜가 정해졌다.
지방의 대학병원도 두 달 혹은 세 달이 걸린다며 난리가 난 이 때에
한 달만에 서울 메이저 병원 첫 진료라니
주변에서도 하나님 믿는 사람은 다른가봐 할 정도로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주변의 말들을 듣고 우리 가족의 기도 제목이 바뀌었다.
"엄마가 낫게 해주세요." 가 아니라
"엄마의 나음을 향한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걸 보여주는 간증이 되게 해주세요."
병원 예약은 끝났다.
이제 엄마가 회사를 그만둬야 할 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