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진단을 받은 엄마와 간병하는 막내딸 이야기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사실 할 일이 있는것은 아니였다.
그저 초침이 흘러가는것이 분주했고 마음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
마치 폭포의 물이 아래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인지 벨소리 뒤에 묻힌 진동인지 헷갈릴만큼
한없이 무거운 진동이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덜덜거리는 핸드폰 화면을 쓸어 넘겼다.
"어.. 엄마 일단 MRI 찍어봤는데 머리에 뭐가 있대.
그게 너무 커서 뇌신경을 눌러서 운동신경까지 영향을 받는것 같다고
영상 CD랑 소견서 챙겨서 큰 병원 가보라는데
너 아는 친구들 중에 서울쪽 병원 간호사나 누구 있어? 한번 알아봐봐.
일단 엄마 데리고 집으로 가는길이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어어 운전 조심해 엄마 혹시 모르니까 부축 좀 해줘. 고마워"
흘러가던 초침도 폭포같이 쏟아졌던 마음도
무서우리만큼 고요하게 멈춰버렸다.
엄마의 머리 속에 뭔가가 있다.
그것도 크게.
하루종일 1년 365일 그것만 판독하는
전문가의 판단으로도 크게.
쏟아내면 구멍이 나버려 메꾸지못할까봐
아득바득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그 자리에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쏟아내며 30분 가까이 오열했다.
잠시 뒤 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일단 잘 들어.
엄마 앞에서나 아빠 앞에서 울지마.
이제 너랑 내가 엄마 아빠 보호자야 알겠지?
운다고 해결되는거 없고 병은 고치면 되는거야.
큰 수술이여도 하면 되는거니까 울지말고 병원부터 찾자
내가 검색해보니까 서울00병원, 0000병원에 교수님 유명하다고 하거든?
그 쪽에 아는 분 있는지 혹시 찾아봐. 그만 울고.
울다 지치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그만 울어 이제."
겨우 나랑 15개월 차이 나면서
언니는 어느새 부모의 그늘 만큼이나 내게 어른이 되었다.
언니의 말이 맞았다.
서울 병원을 찾는것이 급선무였다.
전공의 파업으로 인해
전국 대형병원의 진료가 축소되고
특히 서울 메이저 병원의 초진을 받으려면
반년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돌았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는 뇌종양을 가진 엄마를 간호하는것은
병원을 찾는것 부터가 시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