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의 테두리 -1-

by Dried Cognac

그녀와 처음 마주한 건, 96년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얼마 후였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을 기다리던 시기,

만화를 따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사물 스케치에도 제법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신문 한 귀퉁이의 ‘시각 디자이너 전도유망’ 이라는 기사를 보고 이것이 내 길이라 판단했다.


적당한 기업에 들어가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재능 있다 보는 분야를 토대로 직업을 가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라는 단순한 발상 때문이었다.


‘노래하는 딴따라 따위는 집에 필요 없다’며 내 취미용 기타를 모조리 박살냈던 편부에게 어렵사리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려와는 다르게 부친은 그런 얌전한 선택이라면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다는 듯, 조용히 월 학원비가 얼마인지만을 물었다.


그에게 매달 요청하여 받는, 버스 회수권 구입비를 수령하는 과정과 다름없었다.

나의 ‘진로’는 그렇게 순식간에 결정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곧바로 미술부에 입부하였다.

학교에서는 진학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두 개의 미술 학원을 추천해 주었다.

위치를 들으니 남고인 내 주변에는 없고, 모두 멀리 떨어진 여고 인근에 자리한 곳들이었다.


걷기엔 먼 곳인데,

투덜거리다 이 미래가 남학생들의 주된 선택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크게 중요하진 않은 문제였다.


두 학원과 면담을 마친 뒤 최종적으로 한 곳을 선택했고, 간단한 신입 소개 과정을 거쳐 바로 다음날부터 학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여자 아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표수인’.


내가 사는 해안 도시는, 마음먹으면 발로 경계를 볼 수 있는 좁은 곳이었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며칠이면 바닷바람처럼 순식간에 번화가를 타고 퍼지는, 그런 동네.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는 폭력, 술, 담배, 성 등 고교생과 연관 짓기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했다.


도시의 조직폭력배와 깊이 얽혀 있다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는, 그녀를 유난히 조심스러워하는 일부 선배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면 마냥 터무니없는 일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전학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내게도 닿아 있는 풍문이었기에, 가슴팍에 새겨진 명찰을 본 순간, 그녀가 그 ‘주인공’임을 직감하였다.


그녀는 한기가 서린 듯 오똑한 코와 깊게 패인 쌍꺼풀이 또렷한, 서구형의 얼굴이었다.

팔과 다리는 길었고, 피부는 유난히 희었다.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어, 늘 같은 온도의 도도함을 두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예쁨을 말하기 전, 그 차가움이 먼저 다가오는 부류의 아름다움이었다.


사람은 겉모습만 봐선 알 수 있는 게 없다 - 내가 느낀 첫인상은 그러했다.


학원은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10분 남짓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곳은 유독 여학생 비율이 높은 장소였고, 쉬는 시간이 되면 그 특유의 소란스러움으로 강의실이 들썩였다.

남중, 남고만 연달아 거쳐온 내게는 꽤나 독특한 풍경이었다.


대개 같은 동년배들이 끼리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간식을 먹었는데 1학년 무리들 몇은 항상 고정멤버를 이루어 그녀 주변에 모이는 편이었다.

그녀는 주로 듣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가끔씩은 깔깔 소리를 내며 크게 웃기도 하였다.

어쩌다 들려오는 말투는 새침한 인상 그대로, 다소 신경질적인 악센트를 품고 있었다.


간간히 그녀의 목소리가 흘려 나올 때마다, 나는 ‘조화’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사전적 의미와는 별개로 그 목소리와 얼굴은 분명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울렸다.


한편 호의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외모와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그 이질적인 결합은, 타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들, 그리고 멋대로 덧붙인 상상력은 그녀를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로 규정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호기심은 꽤 많았지만, 학원의 날 서린 분위기는 더 이상 그녀를 ‘관찰’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대학’으로만 말하는 이곳에서 매일 태어나고 버려지는 그림들은, 내가 막연히 기대하였던 '미래’와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세상이었다.

초반의 몇 주간 나는, 이 생경한 ‘풍경’의 하나가 되기 위하여 무던히 노력해야만 했다.


삐걱 대었지만 그런대로 시간은 잘 흘러갔다.

나는 그리고 지우고 칠하며 정신없는 봄을 보내었다.

몇 개의 대학 미술 대회에 출전하였고, 빠른 시일 내에 입상도 기대할 수 있겠다는 강사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희망적이었다.


봄의 따사로움이 절정이라 생각했을 때쯤,

몇몇 학교 선배들이 한적한 뒷골목으로 나를 불러 ‘서울대’출신 원장이 새로 차린다는 C학원으로의 이적 이야기를 꺼냈다.


그들이 입 밖에 낸 표현은 ‘권유’였으나 그들의 태도를 미루어 볼 때 내 겐 선택지가 없어 보였다.

나 또한 현재의 학원에 특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남아 있는 '긴' 학교 생활을 고려하여 그 제안에 동의하였다.


선배들이 강한 체벌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여파에 휘말렸을 뿐임을 알게 된 건, 아주 먼 나중의 일이었다.


그렇게 장소를 옮겨, 또 한 번 적응의 시간이 시작됐다.

시간이 흘러 해안 도시 특유의 후덥지근함과 끈적임이 거리를 잠식하기 시작하였을 무렵.


뜻밖에도, 처음 만날 때 겨울 교복을 입고 있던 그녀를 내가 옮긴 미술 학원의 원장실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