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필름 카메라
친구가 가방에서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꺼냈다. 여행가서 필름카메라를 찍으려고 샀다고했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 않는 세상에서 살면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는건 내 기준에서는 아주 세련된 선택이었다. 내가 필름카메라에 관심을 가지자 친구는 남는 카메라가 있다며, 나에게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선물했다.
첫번째로 사용한 일회용 필름카메라는 코닥 펀세이버였다. 플래시만 터트리면 어디서든 사진이 잘 나왔으며, 직접 필름을 뺄 필요 없이 사진관에 전달하기만 하면 사진이 그럴싸하게 나왔다. 내가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다른 친구는 플라스틱 렌즈로 된 토이 카메라를 선물로 주었다.
두번째로 사용한 필름 카메라는 코닥m35로 코닥브랜드의 노란색을 그대로 옮긴 노란색 카메라였다. 나에게 그 카메라는 코닥 그 자체였다. 세련됨을 넘어, 브랜드 컬러까지 그대로 옮겨놓은 카메라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을까. 두번째 카메라는 여러번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카메라였으며, 성인이 되고 가지게 된 사실상 첫번째 다회용 카메라였으므로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사실 의미라는건 만들면 그만이었으며 마음만 먹으면 이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지금 당장 지어서 붙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튼 카메라와 나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는 기분만 남아있다.
두번째 카메라는 36방을 찍을 수 있는 필름을 넣었다. 코닥 컬러플러스 필름이었다. 이 카메라는 내 신혼여행도 따라가고, 지금은 살고있지 않은 나의 첫번째 신혼집의 사진도 담고있다. 그곳에서 즐겁게 놀던 친구들의 사진과 최근에 마음에들어 자주 방문하는 카페의 사진도 담았다. 내가 카페 사장일때부터 디자인 대학원생이 될때까지의 몇년의 시간을 담은 카메라였다. 휴대폰으로는 하루에 수십장 찍는건 일도 아닌데,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니까 36방을 다 찍기까지 아주 신중했고, 오래걸렸다. 휴대폰으로 찍는 사진은 단순 저장이고, 필름카메라를 이용한 사진은 '기록'처럼 느껴졌다. 오랜시간 조금씩 기록해서 36방을 모두 찍고, 이제 필름을 꺼내서 현상하는 일만 남았다.
카메라에서 필름을 빼는 방법을 유튜브로 검색해서 공부했다. 반복해서보고 시키는대로 했다. 아날로그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없이는 안됐다. 유투브에서 시키는대로 필름이 더이상 감기지 않을 때 까지 감았다. 그리고 필름 뚜껑을 열었더니 필름이 감기다 만 채로 걸려있었다. 대체 왜. 10초정도 상황판단 후 뚜껑을 닫았다. 나는 이런 경우에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있다. 25년쯤 전에 오빠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망쳤을때도 방금처럼 내가 카메라를 열었다가 닫았었다.
열었다 닫으니까 필름이 더 잘 감겼다. 다 감고 나서 뚜껑을 다시 열어보니 이번에는 필름을 너무 지나치게 감아서 필름의 시작점까지 모두 다 필름안으로 감겨들어갔다. 보통 손가락 두마디정도의 필름은 남아있는게 일반적이긴 한데.
아무튼 나는 36방의 아날로그를 만들어냈으며,
내가 원하는대로 직접 필름을 감았고,
직접 사진관에 들고가서 현상을 맡기면 되는 일이다.
가까운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관에 현상 스캔을 맡겼더니 만오천원이라고 해서 맡기기를 포기했다. 검색해보니 을지로에 가면 오천원이면 된다고하기에 을지로에 가기로 했다. 정액권 교통카드를 쓰고 있어서 차비는 들지 않는다. 왕복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을지로에 가서 사진을 맡기고 돌아왔다.
하루 종일 기대가 됐다. 빛이 들어간 필름은 어떻게 됐을까? 오빠의 졸업식 사진처럼 노란색으로 변했을까? 어쩌면 몇장만 망쳤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의외로 새로운 효과로 잘 나왔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사진이 도착했다.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은 사진은 거의 검정색에 가까웠다. 뚜껑을 열었던 부분은 햐앟게 되거나 빨갛게 변했다. 마지막 사진은 사각형이 사진 위에 그려져있었는데 이건 대체 뭔지 감도 안왔다. 사진을 확대해보거나 자세히 보면 대략적으로 어디서 누구를 찍었는지를 눈치채거나 상상해볼 수 있었다. 사진기를 다루는 능력에 비해서 기억력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사진을 보는 내내 어쩌면 거의 성공이었던것 같다고 회상했다. 뚜껑을 열지 않았거나 열자마자 빠르게 닫았다면. 아니면 건전지를 넣고 플래시를 터트렸다면. 거의 성공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