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항 May 22. 2022

1984(조지 오웰)-스포 많음

줄거리 편

 - 내용이 길어져서 둘로 나누어 올리려고요. 본편은 줄거리 편입니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윈스턴. 39세의 평범한 신체 나약한 남성입니다.

  그는 오세아니아, 이전에는 영국이라고 불렸던 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50년 전후로 세계 대전이 발생하여 인류는 또다시 위기에 처하게 되고 세계 각국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3개국으로 나누어져 계속된 분쟁을 벌이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사실 이 국가들이 실제로 어떤 관계인지는 모릅니다만, 윈스턴이 살아가고 있는 오세아니아 정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정부의 감시와 통제, 가스라이팅으로 점철된 철저한 일당독재 전체주의 국가이기 때문이죠.

  일당독재 전체주의 국가라고 하면 대부분 떠올리실만한 이미지가 있으실 겁니다. 실제로 주위에 존재하는 국가들도 있고, 영화나 소설 등을 통해서도 많이 다루어진 소재이니까요.

  상상하시는 것에서 조금도 벗어남이 없을 만한 사회입니다. 윈스턴이 살아가는 이곳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독재국가의 모든 참담한 현실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새로울 것도 없죠.

  오세아니아를 통치하는 존재는 구국의 영웅 빅브라더입니다.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국민들은 그의 통치를 따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를 숭배해야 합니다. 이를 감시하기 위해 나라 곳곳에는 텔레스크린이 설치되어있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배급받는 식량조차 부족합니다만, 국가의 모든 통계 지표는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점점 향상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의 존속을 위해 결혼과 출산은 장려되지만, 그 외의 본능, 사랑이나 욕망 같은 것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부모를 감시하고 고발하는 사회이며, 그 누구도 서로를 믿지 못합니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건드리는 예술 작품 모두는 검열의 대상이 되는 데다가 우민화 정책으로 인해 언어조차 지극히 단순화시켜서 사고의 폭을 제한합니다. 역사와 현실 날조는 매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제까지 같이 근무했던 동료가 갑자기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사실 사상범으로 끌려간 것인데 말입니다. 물론 그 반대로 갑자기 사람을 탄생시키는 것도 가능하고요. 국가 공인 테러리스트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지만 국민들은 그를 마치 오랫동안 국가의 평화를 위협했던 인물이라고 인식하며 온갖 증오를 쏟아냅니다. 국가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기 때문이죠. 

  이런 나라를 존속시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주입되는 슬로건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이 정부가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노골적으로, 어찌 보면 조금 유치하기까지 한 슬로건이네요. 


  윈스턴은 과거 신문의 기록을 현 정부의 정책에, 아니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놓고 역사왜곡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는 이러한 국가 정책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술을 통한 감정을 느끼고 싶고, 타인과 사랑을 하고 싶으며, 진실을 외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을 노트 하나를 구해서 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물은 물론 표정이나 숨소리조차 검열되는 사회에서 일기를 쓴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방에 텔레스크린이 미치지 못하는 작은 사각지대가 있기 때문인데요. 건물이 지어질 무렵에 생긴 구조적인 실수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는 그 작은 공간에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써 내려갑니다. 

 그렇게 하로 하루를 견뎌가던 윈스턴에게 두 사람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데요. 한 사람은 검은 머리를 가진 여성입니다. 딱 봐도 국가에 충성을 바칠  같은 그녀를 보며 윈스턴은 묘한 긴장감을 느낍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녀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위협이 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윈스턴이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 억지로 생각해낸 변명이고 사실 그는 그저 그녀에게 반한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는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공식적으로 그는 유부남이거든요.), 또한 그녀에게 거절당함으로써 받아야 할 마상을 감당할 자신도 없는 것이죠.

  어쨌든 그녀는 그렇게 넘어가고, 그의 눈에 들어온 또 한 사람은 직장 동료 오브라이언. 거구의 남자입니다. 국가의 주적인 테러리스트에게 온갖 증오와 저주를 퍼붓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염증을 느낀 윈스턴은 어느 순간 오브라이언과 눈이 마주칩니다. 전부터 그에게 막연한 호감을 가지고 있던 윈스턴은 그 순간 확신하죠. 오브라이언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즉 동료라고 말입니다.  

  여기까지가 전반부 내용입니다.

  중반부는 윈스턴이 검은 머리 여성에게 고백의 쪽지를 하나 받으면서 시작합니다. 심장이 내려앉을 만큼 놀라죠. 자신이 흠모하고 있던 여성, 그러나 자신을 적대시하고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여성이 사랑한다는 쪽지를 전해줬으니 말이죠. 여기서 상대방의 마음을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작은 교훈 하나를 건질 수가 있겠네요.


  아무튼 그들은 목숨을 걸고 연애를 시작합니다. 숨소리, 표정 하나조차 감시받고 있는 사회지만, 용케도 텔레스크린이 없는 곳을 찾아내어 만남을 이어가죠.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 그녀 역시 국가와 당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금방 사랑에 빠지지만, 이것이 진짜 사랑의 감정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정부는 자유로운 감정과 욕망을 정조나 정결의 의무라는 미명 하에 통제합니다. 이 때문에 윈스턴과 줄리아는 정조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거의 증오와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죠. 이들은 사랑을 나누지만, 사실상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방침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떠한 제제도 받지 않는 동물적인 본능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동.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수단으로 본 것입니다. 

  하지만 만남이 지속될수록 윈스턴은 줄리아를 진심으로 애틋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사상경찰에게 붙잡혀 처형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혹은 자포자기 심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줄리아와 만나는 이 순간은 그의 인생의 절호조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행복합니다. 가끔은 줄리아와 탈출이나 반란을 꿈꾸기도 하지만, 실행할 용기가 없다는 것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죠.

  이런 소확행의 나날이 지속되던 중, 드디어 올 것이 옵니다. 앞서 언급했던 직장동료 오브라이언이 은밀하게 접촉을 해온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속내를 공유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 혁명을 위한 일을 꾸밀 것이라는 암시는 주고받았습니다. 

  이것이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윈스턴도 잘 알고 있으나, 두려움보다는 일종의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어떠한 고문을 당하더라도, 죽임을 당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성만은 가지고 가겠다. 윈스턴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에게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사랑입니다.

  그는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지금은 실종되어서 생사도 모르는 어머니,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상처 입은 어머니.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한 여성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날아드는 총탄 앞에서 자신의 몸으로 막아주는 존재. 그것이 아이들을 지킬 수 없을 만큼 나약한 몸짓이라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 기꺼이 그것을 해내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사랑이라고 하죠.

  바로 이 때문에 윈스턴은 사랑이야말로 최후의 저항이자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배웠으며, 줄리아에게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랑조차 인정하지 않는 정부가 어떤 탄압을 하더라도 줄리아에 대한 사랑을 지킬 수만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그가 할 수 혁명은 완성된다라고 생각한 거죠. 절대 줄리아만은 배신하지 않겠다... 이는 맹세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오브라이언의 집으로 초대를 받습니다. 그는 반정부 세력의 일원으로서 윈스턴과 줄리아의 정부에 대한 증오심과 각오를 테스트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동지가 되죠. 오브라이언에게서 사상서적을 받아 읽으며 혁명에 대한 의지는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그들은 사상경찰에 체포됩니다. 

  하아... 윈스턴 정말... 이래서 사람의 마음은 함부로 예단하면 안 된다니까요. 그는 왜 오브라이언이 예비 사상범들을 색출하기 위한 언더 커버라는 생각을 안 해봤던 것일까요. 줄리아의 마음조차 짐작하지 못했으면서 오브라이언에 대해서는 무얼 믿고 그리 확신했는지...


  감옥으로 끌려간 윈스턴은 공포로 인해 제정신이 아닙니다. 어머니? 줄리아? 그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철옹성 같은 줄 알았던 그의 신념은 간수의 곤봉 한방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랑에의 배신이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계속되는 고문 속에서 그는 저지르지도 않은 수많은 범죄들을 자백하죠.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나약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단 하나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자신은 줄리아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 독자 입장에서 보기엔 이미 줄리아고 뭐고 없는 상황 같습니다만, 아직 그녀를 배신하는 ‘행위’ 까지 이르지 않은 것은 사실이죠. 바로 이 점에 윈스턴은 자신의 존엄성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브라이언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더군요. 어차피 처형당할 윈스턴이지만, 보내기 전에 그의 정신마저 빼앗으려고 합니다. 최후의 고문. 그것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에 던져버림으로써 그의 마음을 완전히 개조시키는 것이죠. 윈스턴의 경우는 쥐입니다. 정확하게는 쥐에게 뜯어 먹히는 소름 끼치는 상황. 그들은 윈스턴에게 쥐가 바로 튀어나올 수 있는 마스크를 씌웁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쥐들은 곧바로 윈스턴의 얼굴로 달려들 태세죠. 그러한 최악의 상황에서 윈스턴은 소리칩니다.

  “제게 하지 말고 줄리아한테 하세요. 그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저는 안됩니다!”


  처음 이 소설을 봤을 때가 거의 30년 전이네요. 그때는 이 장면이 무척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매끄럽지 못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굳이 줄리아에게 하세요..라는 대사가 필요했을지... 이해가 안 가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 앞에 흐름을 매끄럽게 할 수 있는 몇 마디 대사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면 빅 브라더에게 충성하겠다. 줄리아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살려달라... 등등요. 하지만 어쨌든 완전히 무너진 윈스턴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확실한 장면입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윈스턴은 정부가 딱 원하는 인간이 되어 있죠. 다시 줄리아를 만납니다. 이미 잡혀온 초반에 윈스턴을 쉽게 배신해버린 줄리아. 하지만 어쩔 수 없었음을 둘 다 알고 있습니다. 이해도 하고 용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할 수는 없죠.

  배신감이나 미움, 분노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몸도 마음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사랑이나 본능조차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아있느냐고요? 물론 그렇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윈스턴의 머리에 총알이 박히는 그 순간 그는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빅브라더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일단 1984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사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라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습니다만, 최근 들어 다시 읽어보니 개인적으로 와닿는 점이 있어서 글을 올리게 됐습니다. 개인사에 대한 고백 비슷한 글이 될 것 같아서 며칠 더 다듬은 후에 리뷰 편을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살육에 이르는 병(아비코 다케마루)-스포 적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