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이 한창인 레바논의 어느 곳.
포로수용소 같은 장소에서 머리를 깎이고 있는 남자아이의 눈빛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남녀 쌍둥이 잔느와 시몬은 어머니 나왈의 사망 후 유언장의 내용을 듣게 됩니다. 유산은 쌍둥이에게 정확하게 오대 오로 나눌 것이며, 잔느에게는 그녀의 부친에게 보내는 편지가, 시몬에게는 그의 형에게 보내는 편지가 남겨집니다.
본인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기에 편지가 다 전달될 때 까지는 관도, 비석도, 수의도 없이 세상을 등지도록 엎드려 매장해달라는 유언과 함께 말이죠.
부친이 살아있다는 것도, 장남이 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던 남매는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래도 유언을 지키고자 나왈의 과거를 탐색하는 여행을 떠납니다.
늘 어딘지 이상한 엄마였던 나왈.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소녀 시절 무슬림인 남자 친구의 아이를 가졌으나, 미혼모로 출산을 하게 되고, “언제나 사랑할 것이라는 것”을 약속하며, 언젠가 자립하여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아이를 떠나게 됩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왈. 기독교인과 무슬림 간의 갈등이 격해지던 때, 아이를 두고 떠나온 남부는 무슬림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나왈은 아이를 찾으러 남부로 향하지만, 남자아이들을 맡았던 보육시설이 습격을 당했으며, 아이들은 테러단체가 데려갔다는 말을 듣습니다.
아이를 찾아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나왈은 기독교민 민족주의자들의 습격을 당하게 되고,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어린아이마저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해집니다.
민족주의자들 때문에 남자 친구와 아들을 모두 잃었다는 분노에 나왈은 극렬한 이슬람 테러 단체에 가입하여 민족주의 지도자를 암살합니다. 그리고 결과로 15년 형을 받게 되죠.
감옥 속에서 어떤 고초를 겪어도 늘 똑바로 서 있었으며, 어떤 공포 앞에서도 늘 노래를 불렀던 나왈은 어느새 72번 방의 노래하는 여인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무너뜨리기 위해 아부 타렉이라는 이름의 유명한 고문 기술자가 투입되고, 그의 반복된 성폭행으로 인해 나왈은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아이의 출산으로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나왈.
정확하게는 아이들이죠.
그 아이들이 바로 잔느와 시몬이었으니까요.
비로소 잔느와 시몬은 자신들의 부친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이제 장남만 찾으면 편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나왈의 폭풍 같고 비극적인 과거를 탐험하며, 그녀를 점점 이해하게 된 쌍둥이는 자신들의 오빠이자 형이 자라던 보육원을 폭파시킨 이슬람 테러단체의 수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듣게 되는 나왈의 아들은...
니하드라는 이름의 그는 무슬림을 위한 테러리스트로 키워지다가, 기독교 테러 진압 단체에 생포되어 그들을 위한 고문기술자가 되었습니다. 아부 타렉이라는 이름의 고문 기술자로요.
아부 타렉은 무슬림 편에서도, 기독교 민족주의자들의 편에서도 대단히 유능한 전쟁광이었습니다. 그를 움직인 것은 종교적 신념이 아닌, 오로지 어머니를 찾고 싶다는 소망이었고요. 어느 편이든 유명해지거나 순교자가 되면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소망 말이죠.
1+1이 1이 되어버린 비극을 이해한 쌍둥이는 니하드를 찾아내 두통의 편지를 모두 전해줍니다.
하나의 편지에는 자신을 72번 방의 죄수라며 묘사하며, 진실은 침묵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아무리 과거를 감추고 침묵하려 해도 저 사랑스러운 아이들(쌍둥이)의 존재가 과거의 진실을 증명한다는 내용...
다른 하나의 편지에는 어머니로서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항상 그를 사랑했고, 찾아왔었다는 것을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요.
마지막 편지는 쌍둥이에게 전달됩니다. 그들의 출생, 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은... 비극이나 공포가 아니라 사랑이었고, 나왈은 모두를 사랑했으며, 함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머리를 깎던 니하드가 나왈의 묘지 앞에 서 있는 장면을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오이디푸스 신화의 현실 버전인 듯한 이 영화는 충격의 반전으로 유명한 데가, 그 반전이 담고 있는 가슴 아픈 내용 때문에 더 유명한 영화죠.
영화 초반부에 나왈은 쌍둥이에게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편지를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녀가 한 약속은 두 가지로. 하나는 자신의 아들은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랑하겠다는 약속. 또 하나는 분노의 끈을 끊겠다는 약속.
위의 리뷰에는 써놓지 않았지만, 나왈은 출소 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수영장에서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첫 번째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거죠. “어떤 일이 있어도” 아들을 사랑하겠다는 약속을요. 나왈은 언제나 니하드를 사랑했지만, 자신에게 고통을 주던 아부 타렉을 사랑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아부 타렉과 나왈은 언제나 분노의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봤을 것입니다. 캐나다로 건너와 일상을 살아가던 최근까지도요...
나왈이 무슬림 남자 친구와의 아이를 가졌을 때, 이스라엘이고 시리아고 뭐고.. 그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분노의 끈을 끊어버리겠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던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왈을, 니하드를 그렇게나 극렬하고 적대적인 감정으로 몰아붙인 것은 분노였죠. 상대 진영을 향한 분노는 서로를 향한 분노가 되었고... 이렇게 분노의 끈은 계속 이어져왔습니다.
수영장에서 아들은 보았을 때, 그가 니하드임을 알아차린 동시에 그가 아부 타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자신에게 잔혹한 짓을 행했던 아부 타렉에 대한 분노를 니하드에 대한 사랑으로 덧입힐 수 있었으니까요. 이 수영장 씬에서 나왈의 표정은...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집니다.
나왈은 망설였을 것입니다. 무엇이 니하드를 위한 것일까...
처음 수영장에서, 그녀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죠.
영화 속 쌍둥이는 그녀의 갈라진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냥 내버려 두자는 시몬과, 그래도 진실을 찾아내고자 하는 잔느의 마음.
후반부 니하드를 찾아간 쌍둥이의 평화로운 표정.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결국 그 모든 고통의 근원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찾아온 진정한 평화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저에겐 잔느 역을 맡은 배우의 표정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니하드에게 편지를 전달할 때의 표정이요.
뒤에 니하드가 나왈의 편지를 읽을 때가 영화의 진짜 클라이맥스일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그때 거리에서 잔느의 표정이 영화의 결론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분노의 시간은 끝이 났고, 위로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