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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강 Jan 08. 2024

창덕궁

     

지금 저의 집은 부천입니다만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까지 종로구 와룡동(臥龍洞)에서 살았습니다. 와룡은 동양에서 봉황과 함께 용으로 상징되는 임금이 기거하던 창덕궁이 있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와룡동은 법적 동명이고 행정 동은 종로 1234가 동입니다. 15년 정도 살았네요. 귀가 팔랑귀 여서 사고를 잘 치는 바람에 형제들과 공동명의이긴 하지만 제 몫의 집입니다. 위치상으로 창덕궁 정문에서 50m터 앞입니다. 집 옆이 종묘이고 집 뒤가 창덕궁과 창경궁이고 원서공원이고 그렇습니다.    

 

한옥이라 저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집 지키고 살기 힘든 집입니다. 은행융자도 있고 해서 팔고 작은 원룸이라도 하나 얻으려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만류해서 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네서만 근 15년을 살아 가족처럼 지내는 분들이지요.     


창덕궁 정문 앞을 지나는 길이 창경궁로인데 오른쪽이 종묘 왼쪽이 창덕궁과 창경궁이지요. 2차선인 이 길이 지하로 들어가고 종묘와 창덕궁이 하나로 이어졌지요. 처음에는 종묘와 창경궁이 하나로 이어져 있었는데 일본인들이 조선의 정기를 끊는다고 길을 내고 창경궁 안에 동물원을 만들고 그랬답니다. 그리고 종로 쪽에서 보면 옛,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 사이의 길이 제2 인사로입니다. 여기에 두 번째의 인사동을 만들 계획이랍니다. 그 덕분에 그 동네 집값이 조금씩 올랐습니다.    

  

종로에 산다고 하면 공기도 나쁘고 시끄러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반문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퇴근 시간 이후는 너무나 조용한 동네가 되고 근처에 종묘. 창경궁. 창덕궁. 원서공원, 덕성여대 등, 나무가 많은 곳이라 공기도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아침 새 소리에 잠이 깨고 가을에는 잠자리도 날고 그렇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터를 지키고 살던 원주민들이 살아 낯선 외지인이 거의 없습니다. 길 건너 현대뜨레비앙이 있는 동네와는 전혀 다른 시골스러운 동네입니다.    

   

제가 종로 집을 떠나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마당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마당에서 삼겹살도 구워 먹었고, 가을이면 이웃과 김장도 하였습니다. 장독대 지붕 위에 작은 텃밭을 만들어 온갖 푸성귀도 길러 먹었고요. 오이도 길러 먹었습니다. 가을에는 배추도 심었고.   

   

또 하나 아쉬운 건 궁궐을 못 보는 것입니다. 창덕궁이나 창경궁은 저녁이면 문을 닫지만 저는 24시간 출입이 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침 이르게는 창덕궁 관리인에게 이야기하면 낙선재 마당 정도는 들어가게 해줍니다. 동네 주민이라서. 그렇게 되기까지 음료수 많이 사 드렸습니다. 사람이 없는 궁궐은 참 좋습니다.  

    

제가 대학원 다닌 때는 걸어 다녔습니다. 집을 나와 종묘 담장을 끼고 돌아 종묘 정문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장애인이라 입장료가 무료입니다. 종묘 입구 연못에서 왼쪽 길로 갑니다. 그 길이 더 좋습니다. 악공천 앞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창경궁으로 가는 구름다리가 나옵니다. 당연히 지금은 공사 중으로 없어졌지만 말입니다. 구름다리를 건너 바로 보이는 곳은 창덕궁 낙선재의 일부입니다. 창경궁 명정전 앞이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이지요. 홍화문 앞 건널목을 건너면 바로 서울대병원 정문이 나오지요. 사람들은 그곳이 후문이고 혜화동 쪽이 정문인 줄 알지만, 창경궁 맞은편 그 문이 정문이고 혜화동 쪽이 후문인 서울대병원 동문입니다.  

    

서울대병원 정문으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빨간 옛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이 경성의학교 부속병원인 대한의원 건물입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대한의원을 지나 서울대병원 본관으로 가지 않고 어린이병원으로 내려오면 동문 입구에 보건대학원 건물이 있지요. 이 길을 2년 동안 걸어 다녔습니다. 지금은 보건대학원도 신림동으로 이사를 하고 없더군요. 종묘로 들어가기 싫은 날은 그냥 창경궁 담장을 끼고 걸어도 좋습니다. 가을밤은 정말이지 환상입니다.      


창경궁의 으뜸은 춘당지와 대 온실입니다. 대 온실의 관리인은 저를 너무너무 싫어했습니다. 민원도 많이 올렸고 들이대 놓고 싸우기도 많이 했거든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친절하지 않다는 것, 물음에 고분고분 대답해 주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많이 죄송스럽네요. 돈 많이 벌면 그런 유리온실 하나 짓고 싶습니다.      


창덕궁의 정문이 돈화문입니다. 사람들은 창덕궁을 비원이라 많이 부릅니다. 하지만 비원은 창덕궁 후원의 일부입니다. 그러니 창덕궁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예전에는 관람이 까다로웠지만, 지금은 자유 관람도 허용합니다. 옥류천 부용정도 관람이 되고요. 서울에 궁궐이 많지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궁궐은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과 종묘뿐입니다. 그리고 창덕궁 인정전에서는 조선의 왕 중 열 분이 즉위식을 거행한 곳이기도 합니다. 짐작하시든 '인정'은 '어진 정치'를 말하는 것이고.  

   

저는 서울을 사랑하고 종로를 사랑하며 궁궐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창경궁과 창덕궁 그리고 아름다운 종묘.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정독도서관과 삼청동. 운현궁과 덕성여대. 대학로 카페 골목과 광장시장. 낙원동 뒷골목과 교보문고.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길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건강이 조금 더 회복되고 자금이 준비되면 종로 집을 새로 지어 그곳에서 늙고 싶습니다. 십 년 이상 알고 지낸 동네 주민들과 함께. 궁궐을 벗 삼아 그렇게 늙고 싶습니다. 지금도 서울 가면 종로 집에 먼저 가게 됩니다. 절친한 이웃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종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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