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을 받들어 나라를 세우다
하늘의 아들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다
광활한 북부여의 땅,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 부인의 만남은 이미 범상치 않은 운명을 예고했다. 유화 부인이 동부여 금와왕의 궁궐에 머물던 어느 날, 그녀의 몸에 햇살이 비추자 신비로운 기운 속에 커다란 알 하나가 태어났다. 금와왕은 불길하다 여겨 알을 버렸으나, 짐승들은 알을 보호하고 새들은 하늘에서 깃털을 내려 덮어주었다. 인간의 힘으로 깨뜨릴 수 없었던 그 알 속에서, 마침내 한 사내아이가 나와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 아이는 일곱 살에 이미 활과 화살을 스스로 만들어 쏘아 백발백중이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활 잘 쏘는 이'라는 뜻의 주몽(朱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주몽의 재능은 하늘이 내린 빛과 같았으나, 그 빛은 동시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금와왕의 아들 대소를 비롯한 왕자들은 주몽의 비범함에 질투와 시기를 키웠다. 그들은 사냥터에서 홀로 수많은 짐승을 잡는 주몽을 보며 위협을 느꼈고, 결국 그의 제거를 왕에게 청하기에 이르렀다.
주몽의 운명은 이미 고향 북부여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부여를 벗어나 대업을 향해 달리다
금와왕은 아들들의 청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주몽을 하급 마구간의 말 관리인으로 보내 그의 기상을 꺾으려 했다. 그러나 어머니 유화 부인은 아들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주었다. "너를 해하려는 자들이 많으니, 지혜를 모아 다른 곳에 큰 뜻을 펼치라."
어머니의 도움으로 주몽은 왕실의 말들 중 가장 좋은 준마를 골라 일부러 굶겨 보잘것없이 보이게 한 뒤, 그 말을 타고 탈출을 감행했다.
오이, 마리, 협보 등 평생을 함께할 세 명의 벗과 함께 주몽은 어둠을 뚫고 남쪽으로 달렸다. 그들의 뒤에는 부여 왕자들의 추격대가 맹렬히 뒤쫓아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의 앞을 엄리대수(淹利大水), 즉 거대한 강물이 막아섰다. 배도 없이 추격에 몰린 주몽은 하늘의 자손으로서 절규했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이 난관을 어찌 극복하란 말인가!"
이별연교의 기적, 고구려를 세우다
주몽의 외침에 강물은 응답했다. 강에 살던 수많은 물고기(魚)와 자라(鱉)들이 물 위로 떠올라 몸을 이어 붙여 신령스러운 다리(어별연교)를 만들었다.
주몽 일행은 이 기적의 다리를 밟고 무사히 강을 건넜고, 그들이 강을 건담과 동시에 다리는 흩어져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추격대는 강 앞에서 발만 구르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주몽은 이로써 하늘과 물의 신이 자신에게 천명을 내렸음을 확신했다.
주몽은 남쪽으로 내려가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러 그 지세의 웅장함과 비옥함을 확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터전으로 정했다(기원전 37년).
그는 이곳의 토착 세력 중 가장 강성했던 연타발의 딸, 소서노(召西奴)와 혼인했다. 소서노는 이미 두 아들 비류와 온조를 두고 있었으나, 자신의 지혜와 재산을 바쳐 주몽의 건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주몽은 국호를 고구려(高句麗), 성씨를 **고씨(高氏)**라 칭하며 마침내 동명성왕으로 등극했다. 고구려는 그의 지도력과 소서노의 헌신적인 공헌 아래, 주변의 말갈과 행인국 등을 정복하며 빠르게 강성해졌다.
왕위의 계승, 두 나라의 시조가 되다
고구려가 안정을 찾아가던 중, 동부여에 남아있던 주몽의 정실부인 예 씨와 그의 친아들 유리(類利)가 주몽이 남긴 증표를 들고 고구려로 찾아왔다. 주몽은 유리를 친아들로 인정하고 크게 기뻐했으며, 곧바로 유리를 태자로 책봉했다(기원전 19년).
유리의 등장과 태자 책봉은 고구려 건국에 절대적인 공헌을 했던 소서노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자신의 아들들인 비류와 온조가 왕위를 이을 수 없음을 깨달은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를 비롯한 세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떠나 남쪽으로 대규모 이주를 감행했다.
주몽은 태자 유리를 책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40세의 나이로 승하하며 천명(天命)을 다했다.
그의 뒤를 이어 유리가 2대 왕이 되었고, 남하했던 소서노의 아들 온조는 한강 유역에 백제(百濟)를 건국하며 고구려와 함께 부여의 유민이 세운 형제 국가의 역사를 열었다. 이로써 동명성왕 주몽은 단순한 한 나라의 시조가 아닌, 고구려와 백제라는 두 고대 국가의 뿌리가 되는 위대한 영웅이자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