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모수의 서
“하늘의 장남으로서 제 소개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독자님께,
저는 북두칠성의 기운을 품고 내려온 해모수(解慕漱) 입니다. 세상은 저를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하고, 어떤 기록에서는 천제(天帝)의 사자라 여깁니다. 역사서에선 그저 ‘신화적 존재’ 정도로 한 줄 적혀 있지만, 오늘 이 편지에서만큼은 제가 걸어온 길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늘에서는 저에게 하늘과 땅 사이의 다리를 놓으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 임무는 곧 혼란스러운 땅 위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에는 남지 않은 또 다른 임무가 있었으니, 바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들의 마음을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땅으로 내려오던 날, 제 운명도 내려왔습니다.”
제가 금빛 수레를 끌고 부여 땅에 내려왔을 때, 인간들은 하늘의 자손이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염려한 건 예경이 아니라 그들의 눈빛 속 두려움이었습니다.
하늘의 명령은 분명했습니다.
— 그들을 강하게 하되,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하라.
저는 강가에서 그들을 모아 활쏘기와 말 다루기, 농경의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저는 또 한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법.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술이었죠.
“유화(柳花)와의 만남, 기록되지 않은 진실.”
기록에는 유화를 ‘하백의 딸’, ‘신비로운 여인’이라 적지만,
실은 그녀는 강의 영혼을 읽는 자, 물결의 흐름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이였습니다.
제가 처음 그녀를 본 날, 강의 수면이 흔들리며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 여인은 너의 길을 완성시킬 자이다.”
저는 그녀에게 제 하늘의 수레를 보여주었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부럽지 않아요.
하지만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건 저희에게 더 큰 용기랍니다.”
그녀의 말은 제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훗날 나라를 세우는 주몽이 되었으니,
그 사실은 누구보다 그녀의 강인함이 이룬 일이었습니다.
“하늘의 소환과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
그러나 행복은 오래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하늘은 제게 임무 완수를 보고하라며 돌아오라 명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하늘의 아들이었지만,
땅에서 사랑을 배웠고,
사람들의 미래를 보았고,
그들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역사서는 단지 ‘해모수가 하늘로 돌아갔다’고만 기록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저는 마지막 밤에 유화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떠나지만, 너와 우리 아이의 길은 하늘보다 더 큰 세상을 열 것이오.”
유화는 제 손을 잡고 말했죠.
“당신이 남긴 건 힘이 아니라 길이에요. 그 길은 우리가 이어갈게요.”
그날 밤 저는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르는 벽을 넘어야 했습니다.
후회는 없었습니다.
제가 남긴 길 위로 주몽이, 그리고 고구려의 조상들이 걸어갈 것이었으니까요.
“제가 이 땅에 남긴 커버 레터의 마지막 문장.”
이 편지를 읽는 당신께 말씀드립니다.
저의 이야기는 한 나라의 신화를 넘어 사람이 스스로 길을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역사는 저를 한 줄로 남겼지만,
당신이 제 이야기를 읽어주신다면 그 한 줄의 빈칸이 조금은 채워지겠지요.
제가 남긴 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하늘’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존경을 담아,
해모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