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커버 레터(1)

처음의 떨림

by 이 범

처음의 떨림
사랑하는 너에게.
너와 처음 마주한 그날, 나는 생이 내게 다시 시작점을 건네주는 느낌을 받았어.
너의 미소가 내 마음에 조용히 파고들었고, 그날부터 내 모든 길은 너에게 닿고 있었어.


멈춰버린 시계바늘의 고백

​(발신인: 준우)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나의 떨림이 조금은 진정되어 있을까요. 아니, 어쩌면 당신을 떠올리는 이 순간조차 심장은 제멋대로 속도를 높이고 있으니, 영영 진정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세상은 온통 무채색이었습니다. 창밖을 두드리는 빗소리마저 건조하게 느껴지던, 나른하고 지루한 오후의 서점이었죠. 나는 습관처럼 책장에 기대어 의미 없는 활자들을 눈으로 쫓고 있었습니다. 나의 시간은 고장 난 시계추처럼 제자리에서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딸랑, 하는 맑은 종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싶었을 때, 젖은 우산을 접으며 당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서점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눅눅하던 종이 냄새 대신 싱그러운 숲의 향기가 훅 끼쳐왔습니다.

​당신은 빗물에 약간 젖은 어깨를 털어내며 살며시 미소 지었죠. 그 미소가 번지는 순간, 나의 무채색 세상에 물감이 터지듯 찬란한 색채가 입혀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의 결, 당신이 입은 트렌치코트의 베이지색 자락, 그리고 무엇보다 별을 빻아 넣은 듯 반짝이던 당신의 눈동자.

​나는 숨을 쉬는 방법조차 잊은 채 당신에게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마치 내 생의 모든 중력이 당신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이동해버린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서가 사이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의 시선도, 나의 영혼도 자석에 이끌린 철가루처럼 당신을 향해 속절없이 끌려갔습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오직 당신만이 고해상도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고, 나머지 배경은 뿌옇게 흐려져 버렸습니다. '첫눈에 반하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이토록 폭력적일 만큼 강렬한 감각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 내 존재의 기반을 뒤흔드는 기분 좋은 재난이었습니다.

​당신이 우연히 내 옆의 책을 집어 들며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확신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은, 바로 이 순간 당신을 만나기 위한 긴 기다림의 과정이었다고. 나의 계절은 당신을 만난 그 오후 2시에 비로소 봄이 되었습니다.

​나의 낯선 봄, 당신에게 이 설렘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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