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떠나는 태자
바다로 떠나는 태자
동틀 무렵, 동해 끝자락 강동현의 바닷가는 아직 차가웠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지만, 그 푸름 속에선 겨울의 끝자락이 아직 숨을 죽이고 있었다. 부루는 흰 두루마기를 입고 바위 위에 섰다. 스물두 해를 살았지만, 오늘만큼은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떨렸다.
백성 수백이 검은 바위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태자가 떠나는 모습을 눈에 새기고 있었다. 바람이 부루의 긴 머리칼을 흩날렸다. 그 바람은 따스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저 ‘가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부루는 천천히 몸을 돌려 단군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키가 컸다. 백발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젊었다. 부루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다시 열었다.
“돌아오겠습니까?”
목소리가 갈라졌다. 스물두 해 동안 한 번도 아버지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눈가가 먼저 시렸다.
단군은 말없이 다가와 부루의 두 어깨를 힘껏 잡았다.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 뜨거워서 부루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부루야.”
단군의 목소리는 바다보다 깊었다.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너는 이미 이 땅의 모든 것을 가졌다.
왕의 자리, 백성의 사랑, 나의 피.
그러나 아직 너 자신은 가지지 못했다.”
부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물이 턱 끝을 타고 떨어졌다.
“바다는 거칠다.
때론 너를 삼키려 들고,
때론 너를 버려두려 들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너는 너를 만날 것이다.
그것이 네가 태자로서 해야 할 마지막 의무다.”
부루는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단군은 아들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며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바다는 나를 기다리게 했고,
이제 너를 기다린다.”
배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용골이 단단한 소나무로 만든 외따붓배 한 척. 돛은 아직 펴지 않았고, 노 젓는 이들은 모두 침묵 속에 서 있었다. 부루는 천천히 걸어갔다. 발걸음마다 모래가 발바닥을 파고들었다.
마지막 계단. 부루는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단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백성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부루는 두 손을 모아 깊이 절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배에 올랐다.
노 젓는 이들이 노를 들어 올렸다. 물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배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육지를 떠났다. 부루는 고물에 서서 점점 멀어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단군은 손을 들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다.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펄럭였다.
배가 파도를 하나씩 넘어갈수록 육지는 흐려졌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선이 점점 선명해졌다. 부루는 갑자기 가슴이 터질 듯한 자유를 느꼈다. 동시에 끝없는 두려움도.
바다는 정말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도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하늘에 떠 있던 해가 어느새 바다 한가운데로 내려앉았다. 붉은 빛이 수평선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부루는 돛대에 손을 얹고 속삭였다.
“이제 시작이다.”
바람이 그의 말을 받아 날렸다. 배는 더 깊고, 더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육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바다와 하늘, 그리고 부루 자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