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길 위에서 너를 예감하다(1)

사랑하는 당신에게

by 이 범

초여름의 길 위에서 너를 예감하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은 유난히,
당신과 걸었던 초여름의 그 길이 생각났습니다.



햇빛이 아직 앳된 빛깔을 품고
나뭇잎 사이를 지나던 날,
우리의 그림자가 나무 아래 겹쳐지며
작은 약속처럼 흔들리던 그 순간이요.
그날 우리는
도시 끝자락의 작은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여행이라고 부르기엔 소박했고,
산책이라고 하기엔 조금 먼 거리였지만,
나는 묘하게 숨이 가벼웠고
당신은 유난히 웃음이 많았습니다.
초여름의 공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젖히는 힘이 있는 걸까요.
당신은 걸음을 멈추고
들풀 사이에서 망설이는 나비를 바라보며 말했죠.
"저렇게 작은 생명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걸까?"
나는 그때 당신의 옆모습을 보며


문득,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당신의 눈동자에 비친 나비보다
당신의 눈빛이 더 흔들렸거든요.
그리고 그 흔들림이
이상하게도 나를 오래 붙잡아두었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그렇게 걸어 내려오며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작은 예감을 했습니다.
아, 내가 이 사람과 걸어갈 계절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구나.
그 예감은 바람처럼 가벼웠지만
심장 속에서는 무겁게 울렸어요.
어떤 고백보다 확실하게.
길가의 작은 카페에 들러
얼음이 녹아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당신과 나란히 앉아 있던 시간도 기억나요.





그때 당신이 말했죠.
"여름이 오면 어쩐지…
미래가 조금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 숨겨 두었던 문장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나에게 미래는… 점점 너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어."
하지만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죠.
그 말이 너무 뜨겁게 들릴까,
당신을 부담스럽게 할까,
그 마음을 잃을까 두려워서.
사람 마음은 참 이상하죠.
사랑을 주고 싶어 하면서도,
사랑이 너무 커 보이면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함께 생기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불쑥,
유리 너머로 흔들리던 햇빛을 바라보며 말했죠.




"앞으로도… 우리, 종종 이렇게 걸을 수 있을까?"
그 순간,
내 마음속 초여름의 모든 바람이
한꺼번에 당신 쪽으로 불어갔습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했어요.
"걸을 수 있을 거야.
너만 괜찮다면,
나는 계절이 바뀌는 속도보다
천천히, 그리고 오래 걸어갈 준비가 돼 있어."
당신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마 반 정도만 이해했겠죠.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어요.
내 마음은 언젠가
완전히 당신에게 들리게 될 테니.
초여름의 잎들은
아직 성숙하지 않아 반짝였고,
우리의 마음도 그 잎처럼 어려서 투명했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그때의 바람 냄새가 나는 듯해요.




마치 초여름이,
그리고 당신이
내 곁을 다시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사랑하는 당신.
다음 계절로 넘어가도,
또 그다음 계절이 와도,
나는 여전히 당신과 걷고 싶습니다.
아무 말 없이도
나란히 걸을 수 있는 길,
숨결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거리,
마음이 미래를 향해 조용히 기울어지는 계절—
그 모든 곳에서
나는 당신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이 편지를 닫는 지금도,
내 호흡의 끝에는
당신의 이름이 아주 가볍게 흔들리고 있어요.
늘,
그리고 더 오래,
당신에게 예감처럼 기울어가는
—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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