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270)

을미사변

by 이 범

1895년, 을미사변과 유서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의 참극
기영이 팔십 되던 해,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새벽.
경복궁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지방의 기영은 그것을 즉시 알 수 없었다.
닷새 후, 소식이 전해졌다.
"큰일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제자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냐?"
"국모께서... 국모께서..."
제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침착하게 말해 보거라."
"국모 명성황후께서... 일본 놈들에게... 시해당하셨답니다..."
순간, 방안이 얼어붙었다.
기영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자를 바라보았다.
"... 무슨 소리냐?"
"한양에서 온 사람이 전해주었습니다. 지난 8일 새벽, 일본 낭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국모를 시해했다고..."
기영의 손이 떨렸다.
"... 국모를... 궁궐에서..."
"예... 그리고..."
제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 시신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기영은 침상 옆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 이놈들이..."
1895년 10월 13일, 마을의 통곡
소식이 퍼지자 마을 전체가 통곡에 휩싸였다.
"국모를... 국모를 어찌..."
"하늘도 무심하시지..."
"일본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남자들은 분노했고, 여자들은 울었다.
기영의 집 사랑채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훈장, 이를 어찌해야 하오!"
"일본 놈들을 응징해야 하오!"
"의병을 일으켜야 하지 않겠소!"
기영은 침상에서 일어나려 했다.
"스승님, 안 됩니다!"
제자들이 말렸다.
"비켜라... 나는 일어나야 한다..."
기영은 떨리는 몸을 일으켜 마루로 나왔다.
모인 사람들이 기영을 보았다.
"이 훈장..."
기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시여... 어찌 이런 일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나도 분노합니다. 나도 일본을 응징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러나..."
기영은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감정에 휩싸여 무모하게 행동하면, 우리만 죽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럼 어찌하란 말이오!"
"힘을 길러야 합니다. 제대로 된 힘을."
기영은 기침을 했다.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날이 올 것입니다..."
1895년 10월 14일, 아내와의 대화
그날 밤, 기영은 아내 연화와 단둘이 앉아 있었다.
"부인..."
"예, 서방님."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소."
연화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기영의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서방님..."
"팔십 년을 살았소. 순조 시대부터 지금까지..."
기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조선이 서서히 무너지는 것을 보았소. 세도정치, 삼정의 문란, 민란, 외세의 침입..."
"..."
"그러나 오늘... 오늘만큼 절망적인 날은 없었소."
기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국모를 시해하다니... 궁궐에서... 우리 땅에서..."
"서방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몸이..."
"몸? 몸이 무슨 소용이오. 나라가 이 지경인데..."
기영은 연화를 바라보았다.
"부인, 나는 실패했소."
"무슨 말씀을..."
"나는 평생 나라를 위해 일했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결국 나라는 이 지경이 되었소."
연화는 남편을 안았다.
"아닙니다, 서방님. 서방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인..."
"서방님께서 가르친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전국 곳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방님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족할까요..."
"족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나라를 바로 세울 것입니다."
1895년 10월 15일, 둘째 동생 기채와의 만남
둘째 동생 기채가 형을 찾아왔다.
기채는 일흔여덟이었다. 이미 군을 은퇴한 지 오래였다.
"형님."
"기채야... 왔구나."
두 형제는 마주 앉았다.
한참을 말이 없었다.
"형님... 나는... 부끄럽습니다."
"무엇이 부끄럽다는 말이냐."
"저는 평생 무인으로 살았습니다. 나라를 지킨다고..."
기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국모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기채야..."
"제가 아직 젊었다면... 제가 아직 현역이었다면... 경복궁에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웠을 것입니다..."
기채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저는 이미 늙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영은 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기채야, 네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이미 늙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는 것뿐이다."
"다음 세대라..."
"그렇다. 우리 자식들, 손주들. 그들이 우리가 하지 못한 일을 할 것이다."
1895년 10월 16일, 막내 동생 채연의 방문
막내 동생 채연도 찾아왔다.
채연은 일흔둘로, 여전히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다.
"오라버님..."
"채연아, 왔느냐."
채연은 오빠의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오라버님, 저는... 저는 국모를 위해 노래를 불러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채연아..."
"제 노래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나라를 지킬 수도 없는데..."
기영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채연아, 네 노래는 소용이 있다."
"... 어떻게요?"
"네 노래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슬플 때 위로하고, 절망할 때 희망을 준다."
기영은 동생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 모르겠어요."
"희망이다. 버틸 수 있는 힘이다. 네 노래가 그것을 준다."
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계속 노래하겠습니다. 국모를 위해... 조선을 위해..."
1895년 10월 20일, 장남 충헌과의 대화
장남 충헌이 찾아왔다.
충헌은 예순하나로, 자신의 서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님."
"충헌아."
"아버님, 제자들이 의병에 합류하고 싶다고 합니다."
"... 그렇구나."
"말려야 할까요, 허락해야 할까요?"
기영은 한참을 생각했다.
"충헌아,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모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젊습니다. 죽기에는..."
"그렇다."
기영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충헌아, 이것은 각자가 선택할 문제다. 네가 강요할 수도, 말릴 수도 없다."
"... 예?"
"다만 이것은 말해 주어라. 의병이 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나라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충헌아."
"예."
"의병이 되지 않는 자들을 비난하지 마라. 그들도 자신의 방식으로 나라를 위할 것이다."
1895년 10월 25일, 유서를 쓰기 시작하다
기영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되었다.
몸이 급격히 쇠약해졌다.
"서방님, 약을 드세요."
연화가 약을 가져왔다.
"고맙소, 부인."
약을 먹은 후, 기영은 말했다.
"부인, 붓과 종이를 가져다주시오."
"서방님, 몸이 좋지 않으신데..."
"괜찮소. 써야 할 것이 있소."
연화는 붓과 종이를 가져왔다.
기영은 떨리는 손으로 붓을 잡았다.
"무엇을 쓰시렵니까?"
"... 유서를."
"서방님!"
"부인, 나는 안다. 나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기영은 종이를 펼쳤다.
"나는 제자들에게 남길 말이 있소."
기영은 천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첫 줄을 쓰고, 기영은 잠시 붓을 멈췄다.
무엇을 써야 할까.
팔십 년의 삶.
수백 명의 제자.
무너지는 나라.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희망.
기영은 다시 붓을 들었다.
1895년 10월 26일, 유서의 내용
기영은 며칠에 걸쳐 유서를 썼다.
손이 떨려 글씨가 흐트러졌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다.
팔십 평생을 살며, 나는 조선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순조 15년(1815년)에 태어나, 지금 고종 32년(1895년)까지.
80년의 세월 동안,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안으로는 부패하고, 밖으로는 외세가 노렸다.
세도정치를 보았고, 민란을 보았고, 외세의 침입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국모의 시해까지 보았다.
나는 절망했다. 여러 번.
이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자문했다.
그러나 너희를 보며 다시 희망을 가졌다.
나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했다. 가르치는 것.
양반과 상민을 가리지 않고 가르쳤다.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양반들이 항의했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믿었기 때문이다.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배운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나아질 것이라고.
기영은 잠시 쉬었다.
연화가 물을 가져왔다.
"서방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괜찮소. 조금만 더 쓰겠소."
기영은 다시 붓을 들었다.
신분제가 폐지된 지금, 내가 했던 일이 헛되지 않았음을 안다.
내가 가르쳤던 상민의 자식들이 이제는 관리가 되고, 교사가 되고, 의사가 되었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세상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신분제는 폐지되었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신분이 남아있다.
나라는 독립국이라 하나, 외세의 간섭이 심하다.
백성은 여전히 가난하고, 관리는 여전히 부패하다.
너희는 이것을 바꿔야 한다.
1895년 10월 27일, 유서의 마무리
기영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나 유서를 끝내야 한다는 집념으로 버텼다.
너희에게 부탁한다.
첫째, 나라가 비록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마라.
가장 어두운 밤이 지나면 동이 튼다.
지금 이 어둠도 지나갈 것이다.
둘째, 백성을 사랑하라.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
백성이 잘 살아야 나라가 강하다.
관리가 되거든 청렴하라.
교사가 되거든 헌신하라.
상인이 되거든 정직하라.
무엇이 되든, 백성을 위하라.
셋째, 의를 지켜라.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너희만은 의로워라.
권력에 굴하지 마라.
돈에 눈멀지 마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라.
넷째, 배움을 멈추지 마라.
세상은 변한다.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다.
한문만으로는 부족하다.
수학, 과학, 외국어를 배워라.
세계를 알아라.
그래야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
다섯째, 단결하라.
너희는 형제다.
양반 출신도, 상민 출신도, 모두 나의 제자다.
서로 돕고, 서로 이해하고, 함께 나아가라.
분열하면 약하고, 단결하면 강하다.
書中有路 - 책 속에 길이 있다.
이것이 내가 평생 믿었던 것이다.
그 길을 따라가거라.
험난할 것이다.
때로는 절망할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라.
길의 끝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다.
나는 먼저 간다.
저승에서 조상님들을 뵙거든, 이렇게 말하겠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족했으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국모 명성황후 마마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이 나라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고종 32년(1895년) 10월 27일
이기영
유서를 다 쓴 기영은 붓을 내려놓았다.
"다... 썼소..."
연화가 달려왔다.
"서방님!"
기영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부인... 이것을... 제자들에게..."
"예, 전하겠습니다."
"고맙소... 평생..."
기영은 눈을 감았다.
1895년 10월 28일, 제자들에게 유서를 전하다
다음 날, 연화는 제자들을 불렀다.
"스승님께서 너희에게 남긴 글이 있다."
제자들이 모였다.
연화는 유서를 펼쳐 읽었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연화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끝까지 읽었다.
유서를 다 듣자, 제자들은 통곡했다.
"스승님..."
"스승님...!"
한 제자가 말했다.
"사모님, 스승님께서는... 지금..."
"아직 살아 계신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
제자들은 스승의 침실로 향했다.
기영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스승님..."
제자들의 목소리에 기영은 힘겹게 눈을 떴다.
"... 너희가... 왔구나..."
"예, 스승님."
"유서를... 읽었느냐..."
"예, 읽었습니다."
기영은 가늘게 미소 지었다.
"잘... 기억해 두어라..."
"예, 스승님.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영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국모의... 원수를... 반드시... 갚아라..."
"예!"
"그러나... 무모하게... 죽지는... 마라..."
"..."
"살아남아야... 한다... 나라를... 되찾으려면..."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1895년 10월 30일, 을미의병의 소식
이틀 후,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유인석 대감이 의병을 일으켰다오!"
"민용호 장군도!"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있다지!"
제자들이 흥분하여 보고했다.
기영은 그 소식을 들었다.
"... 그렇구나..."
"스승님, 우리도 합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영은 고개를 저었다.
"... 너희 중... 원하는 자는... 가라..."
"스승님..."
"그러나... 모두 갈 필요는... 없다..."
기영은 힘주어 말했다.
"일부는... 남아서... 가르쳐야... 한다..."
"..."
"의병도... 필요하고... 교육도... 필요하다..."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열 명 중 셋이 의병에 합류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서당에 남기로 했다.
1895년 11월 1일, 국장(國葬)의 소식
조정은 뒤늦게 명성황후의 국장을 치렀다.
그러나 이미 시신은 없었다.
빈 관을 묻었다.
"국장을 치렀다더군..."
"그러나 시신도 없이..."
"이게 무슨 장례냐..."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다.
기영도 그 소식을 들었다.
"빈 관을... 묻었다니..."
기영은 눈물을 흘렸다.
"국모께서... 얼마나... 억울하시겠는가..."
연화가 남편을 위로했다.
"서방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부인... 나는... 부끄럽소..."
"무엇이 부끄러우신가요?"
"나는... 평생... 나라를 위한다고... 했소..."
기영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국모도... 지키지 못했소..."
"서방님, 그것은 서방님 잘못이 아닙니다."
"알고 있소... 그러나... 마음이... 괴롭소..."
1895년 11월 5일, 단발령의 소식
설상가상으로 단발령이 내려졌다.
친일 내각이 서양식 개혁의 일환으로 상투를 자르라고 명령한 것이다.
"머리를 자르라니!"
"이게 무슨 조화냐!"
"신체발부 수지부모인데!"
마을은 또다시 술렁거렸다.
기영의 제자들이 찾아왔다.
"스승님, 어찌해야 합니까?"
기영은 힘없이 대답했다.
"... 머리를... 자르거라..."
"예? 스승님, 그것은..."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중요하다..."
"..."
"머리는... 다시 자란다... 그러나... 의로운 마음은... 잃으면... 안 된다..."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이해했다.
"형식에... 얽매이지... 마라... 본질을... 지켜라..."
1895년 11월 10일, 마지막 대화
기영의 상태가 위독해졌다.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아내 연화, 아들 충헌, 충기, 충재, 딸 수임.
동생 기채와 채연도 왔다.
손주들도 모였다.
"아버님..."
"할아버지..."
기영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 모두... 왔구나..."
"예, 아버님."
"고맙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
가족들은 숨을 죽였다.
"이 나라는... 지금... 어둠 속에 있다..."
"..."
"그러나... 반드시... 아침이... 온다..."
기영은 손주들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그 아침을... 볼 것이다..."
"할아버지..."
"포기하지... 마라... 희망을... 잃지... 마라..."
기영은 눈을 감았다.
"나는... 간다... 조상님들... 뵈러..."
에필로그: 유서의 운명
기영은 1896년 1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이 장면은 작가가 1895년 을미사변 직후로 설정을 바꾼 것이다.
역사적 흐름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기영이 남긴 유서는 제자들 사이에 전해졌다.
필사본으로 복사되어 전국으로 퍼졌다.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가들은 이 유서를 읽었다.
"나라가 비록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마라."
"의를 지켜라."
"배움을 멈추지 마라."
기영의 말은 그들에게 힘이 되었다.
1945년 광복 후, 유서는 공식적으로 출판되었다.
『이기영 선생 유고집』
그 첫 페이지에 유서가 실렸다.
"書中有路 -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월, 화,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