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불학즉태의 위험성
다음 날 아침, 준혁은 박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교수님, 저에게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기회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떻게 그 기회를 활용하느냐죠."
"저는 지난 밤 깨달았습니다. 제가 창업에 실패한 이유는 배움 때문이 아니라, 배움과 사색의 불균형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저는 책에 나온 방법론을 그대로 따라했지만, 왜 그 방법론이 작동하는지, 제 상황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학이불사즉망이었죠."
박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후 저는 반대로 달려갔습니다. 배움을 멀리하고 제 생각만 믿었죠. 하지만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 사색은 제 좁은 경험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사이불학즉태의 위험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균형을 찾고 싶습니다.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교수님, 저를 가르쳐주시겠습니까?"
박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진정한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게 아니라, 그것을 체득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니까요."
그날부터 준혁의 진짜 공부가 시작되었다. 박 교수는 준혁에게 특별한 과제를 주었다. 매주 논어의 한 구절을 깊이 연구하되, 이번에는 다양한 학자들의 주석을 참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첫 주, 준혁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공부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는 주희, 정약용, 이황의 주석을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습(習)'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실천을 통한 체득을 의미한다는 것을.
준혁은 이를 자신의 경험에 적용해보았다. 창업 당시 그가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는 그 지식을 '학습'했지만 '습득'하지 못했다. 실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적용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두 번째 주에는 "학이불염 회인부권(學而不厭 誨人不倦)"을 연구했다.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사람을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여러 주석을 읽으며 준혁은 배움과 가르침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배운 것을 가르치면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가르치면서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여 다시 배우게 된다는 것을.
준혁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창업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실패의 진짜 의미를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세 달이 지났다. 준혁은 변화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교만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맹목적이지도 않았다. 배우되 생각하고, 생각하되 배웠다. 그의 질문은 여전히 날카로웠지만, 이제는 겸손함이 담겨 있었다.
어느 날 박 교수는 준혁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준혁 학생, 내년 봄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해보지 않겠습니까?"
"제가요? 하지만 저는 아직..."
"아직 부족하다고요? 맞습니다. 평생 배워도 부족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배우고 생각하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는 거죠."
준혁은 고민 끝에 수락했다. 주제는 "현대 사회에서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의 의미"였다.
준비 과정은 험난했다. 준혁은 수많은 자료를 읽었고, 그것들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배움과 사색에 대해 남긴 말들을 연구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왕양명의 지행합일 이론까지.
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제점도 분석했다. 정보과잉 시대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정보를 소비하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은 없다. 학이불사즉망의 함정에 빠진다. 반면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만을 절대화하며 새로운 배움을 거부한다. 사이불학즉태의 위험에 처한다.
준혁은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녹여냈다. 창업 실패를 통해 배운 교훈, 그리고 대학에서 박 교수를 만나 깨달은 진리. 배움과 사색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2027년 봄, 학술대회 당일.
준혁은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공자께서 2500년 전에 하신 말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 본성의 핵심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쉬운 길을 택하려 합니다. 배우기만 하거나, 생각하기만 하거나.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그 둘의 균형에서 나옵니다."
청중들이 집중하고 있었다.
"저는 실패를 통해 이를 배웠습니다. 책에서 배운 지식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다 실패했고, 이후에는 배움을 거부하고 제 생각만 믿다 오만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압니다. 배움은 사색의 재료를 제공하고, 사색은 배움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을요."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한 원로 교수가 손을 들었다.
"흥미로운 발표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대인에게 배움과 사색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시간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준혁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 시간은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균형이 중요합니다. 배우기만 하면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 생각하기만 하면 편협해집니다.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적게 배우더라도 깊이 생각하고, 짧게 생각하더라도 제대로 배우는 것. 그것이 현대적 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는 뒤편에서 미소를 지었다. 제자가 스승을 넘어서는 순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완성이었다.
학술대회가 끝나고 며칠 후, 준혁은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다시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배우려 했다. 동시에 배운 것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할 줄 알았다.
마지막 상담 시간에 박 교수가 물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준혁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평생 배우고 평생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지는 못하겠지만, 그 균형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요."
"좋은 답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 다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겸손,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 그것이 바로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의 정신입니다."
졸업식 날, 준혁은 박 교수에게 편지를 남겼다.
"교수님,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아마 평생 제 오만함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교수님은 제게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지혜의 함양. 단순한 사색이 아니라, 배움에 기반한 성찰.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세상으로 나가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릅니다. 배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배우겠습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겠습니다."
박 교수는 편지를 읽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30년 교직 생활 중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
에필로그
2년 후, 준혁의 스타트업은 성공 궤도에 올랐다. 그는 여전히 매주 박 교수를 찾아뵙고 있었다. 한 번은 비즈니스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 위해, 또 한 번은 논어의 구절을 함께 논하기 위해.
어느 날 박 교수가 물었다.
"요즘은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바쁘다 보면 배우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되고, 또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에 압도되어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노력합니다. 매일 아침 30분은 독서를, 매일 저녁 30분은 그날의 일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훌륭합니다. 그런데 혹시 후배들을 가르칠 생각은 없습니까?"
"가르침이라니요? 제가 아직 부족한데..."
"그래서 더 좋습니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좋은 스승이 됩니다. 학이불염 회인부권,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당신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준혁은 고민 끝에 모교에서 특강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실패와 성공, 그리고 배움의 여정을 학생들과 나눴다. 그리고 늘 강조했다.
"배우세요, 하지만 생각하지 않으면 헛될 것입니다. 생각하세요, 하지만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울 것입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이것이 제가 인생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배님, 질문이 있습니다..."
준혁은 미소를 지었다. 2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의 질문을 기다렸다. 배움과 가르침의 순환, 그것이 계속되는 한 지혜는 대를 이어 전해질 것이었다.
밤이 깊어가는 캠퍼스, 박 교수는 연구실 창문으로 강의동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서 준혁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학생들도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 것이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움과 사색의 균형. 그것은 2500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한 진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