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다이어리
변명의 예술
Q: 왜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라고 말할까요?
A: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입니다. 해법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어"라고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정직함이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날 밤, 재훈은 노트를 꺼냈다. 오래된 다이어리였다. 마지막 페이지는 3년 전에 쓴 글이었다.
"2022년 목표: 책 50권 읽기, 마라톤 완주, 부모님 자주 뵙기, 새로운 사람들 만나기, 기타 배우기."
재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룬 게 하나도 없었다.
그는 새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썼다.
"2025년 3월, 나는 깨달았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다음날부터 재훈의 일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 대신 책을 읽었다. 점심시간에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동료들과 진짜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수요일 저녁, 회사에서 긴급 미팅이 잡혔다.
"재훈 씨, 오늘 야근 가능하죠?"
재훈은 망설였다. 오늘은 운동하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미팅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헬스장은 가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재훈은 자책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하지만 다음날, 그는 다시 일어났다. 아침 6시,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트레이너가 물었다.
"어제 못 오셨죠? 괜찮아요?"
"어제는 정말 야근을 했어요. 하지만 오늘은 왔잖아요."
"멋지네요."
재훈은 깨달았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금요일, 재훈은 어머니께 전화했다.
"엄마."
"어, 재훈아. 무슨 일이야?"
"이번 주말에 집에 갈게요."
어머니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회사는 괜찮아?"
"네, 괜찮아요."
"프로젝트는?"
재훈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엄마, 사실 말하면... 프로젝트는 항상 있어요. 그건 핑계였어요."
"뭐?"
"제가 거짓말한 거예요. 바쁜 건 맞지만, 정말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거예요. 엄마, 아빠를."
전화 너머로 어머니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재훈아..."
"죄송해요, 엄마. 이제 바꿀게요."
"아이고, 우리 아들... 고생 많았구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재훈도 울컥했다.
주말, 재훈은 고향으로 향했다. 3년 만의 방문이었다. 부모님은 나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머리는 더 희어졌고, 어머니의 주름은 더 깊어졌다.
"우리 아들 왔네!"
어머니가 재훈을 꼭 안았다. 재훈은 어머니의 품에서 울었다.
"엄마, 미안해요. 그동안..."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재훈아, 회사는 어떠니?"
"괜찮아요."
"많이 바쁘지?"
재훈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바쁘긴 한데, 아빠. 사실 그동안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무슨 거짓말?"
"시간이 없어서 못 온 게 아니었어요. 그냥...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거예요. 솔직히."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재훈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구나."
"아빠..."
"아빠도 젊었을 때 그랬어.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뵙지 않고... 항상 바쁘다고 했지. 근데 사실은 바쁜 게 아니라, 내 일이 더 중요했던 거야."
아버지의 눈이 붉어졌다.
"그러다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야 후회했어. 그때 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더라고."
재훈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빠, 이제 자주 올게요. 약속할게요."
"고맙다, 아들."
그날 밤, 재훈은 자신의 어릴 적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형광별이 아직도 붙어 있었다. 그는 미소 지었다.
'이제 알겠어. 시간은 만드는 거구나. 우선순위를 정하면.'
결(結)
월요일 아침, 재훈은 팀장 성민을 찾아갔다.
"팀장님,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앞으로 주말 출근은 정말 필요할 때만 하고 싶습니다."
성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훈아,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제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갑자기 왜?"
재훈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동안 저는 항상 '시간이 없다'고 말했어요. 운동할 시간, 가족 만날 시간, 책 읽을 시간... 하지만 사실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거더라고요."
성민은 의자에 기대며 재훈을 바라봤다.
"계속해봐."
"저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았어요. 물론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일만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걸 깨달았습니다."
성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재훈아, 솔직히 말할게. 나도 너처럼 살았어."
"네?"
"나도 너 나이 때, 미친 듯이 일했어. 주말도 없이, 야근도 밥 먹듯이. 그렇게 10년 하니까 부장이 됐지. 근데 알아?"
성민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10년 동안 나는 아이가 자라는 걸 못 봤어. 아내 생일도 매번 놓쳤고. 건강도 망가졌지. 그리고 지금 후회해."
재훈은 입을 다물었다.
"재훈아, 너는 잘하고 있어. 지금 깨달은 게 다행이야. 나처럼 10년 더 흘려보내지 마."
"팀장님..."
"주말 출근 안 해도 돼. 대신 평일에 집중해서 일하면 돼. 그게 오히려 효율적이야."
재훈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날부터 재훈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침 운동은 루틴이 되었다. 출퇴근길에는 책을 읽었다. 한 달에 두 번은 부모님을 찾아뵀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재훈은 사람들에게 솔직해졌다.
후배 지수가 물었다.
"선배, 저 영어 공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 하겠어요."
예전의 재훈이었다면 "바쁘면 어쩔 수 없지"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재훈은 달랐다.
"지수야, 솔직히 말해볼래?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아닌 거 아니야?"
지수가 당황했다.
"네...?"
"넌 하루에 넷플릭스 몇 시간 봐?"
"음... 두 시간?"
"거기에 유튜브는?"
"한... 한 시간?"
"그럼 시간은 있는 거잖아. 세 시간이면 영어 공부 충분히 할 수 있어."
지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핑계였네요."
"인정하는 게 시작이야. 나도 그랬거든."
한 달 후, 지수는 재훈에게 말했다.
"선배, 저 영어 공부 시작했어요. 넷플릭스 시간 줄이니까 되더라고요. 그냥 마음먹기 나름이었어요."
재훈은 미소 지었다.
"잘했어. 너는 나보다 빨리 깨달은 거야."
어느 토요일 오후, 재훈은 현우를 만났다. 현우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재훈아, 너 달라 보인다."
"그래?"
"응. 뭔가... 더 편안해 보여."
재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현우야, 고마워."
"뭐가?"
"그때 말해줘서.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현우가 웃었다.
"그때 기분 나빴지?"
"솔직히, 엄청."
"미안."
"아니야. 네 말이 맞았어. 나는 계속 핑계를 대고 있었어. 시간이 없다, 돈이 없다, 바쁘다... 근데 사실은 그게 내게 중요하지 않았던 거야."
"그래서 이제 뭐가 중요해?"
재훈은 잠시 생각했다.
"사람들. 가족, 친구들. 그리고 나 자신. 내 건강, 내 성장."
"일은?"
"일도 중요하지. 근데 이제 일이 전부는 아니야. 균형을 찾았어."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다."
"너도 여행 다녀와서 달라 보여."
"나도 많이 배웠어. 여행하면서."
"뭘?"
"나도 똑같은 거. 우선순위. 나는 1년 동안 여행을 우선순위로 삼았어. 물론 두려웠지. 돈도 빠져나가고, 커리어도 중단되고. 근데 그래도 갔어. 왜냐면 그게 그때 내게 가장 중요했으니까."
"후회 안 해?"
"전혀.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거야."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6개월 후.
재훈은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하프 마라톤. 목표는 완주였다.
출발선에 서자, 심장이 뛰었다. 긴장이 아니라 설렘이었다.
"파이팅!"
옆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어머니였다. 아버지와 함께 응원을 나온 것이었다.
"엄마, 아빠!"
"우리 아들, 끝까지 포기하지 마!"
출발 신호가 울렸다. 재훈은 달리기 시작했다.
5km, 10km, 15km... 힘들었다. 다리가 아팠다. 숨이 찼다.
'포기할까?'
하지만 재훈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이건 단순한 마라톤이 아니야. 이건 내가 선택한 삶이야. 내가 우선순위로 정한 것이야.'
20km 지점, 결승선이 보였다. 재훈은 남은 힘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해냈다!"
재훈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이 달려왔다.
"아들, 정말 잘했어!"
"엄마, 나 해냈어. 진짜로."
"그래, 자랑스럽다."
저녁, 재훈은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재훈아, 요즘 정말 행복해 보인다."
어머니가 말했다. 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해요, 엄마. 진짜로."
"일은 괜찮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오히려 전보다 더 효율적이에요. 집중해서 일하니까."
"그래?"
"네. 그리고 깨달았어요. 행복은 시간이 많아서 오는 게 아니라,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에서 온다는 걸."
아버지가 재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 아들 철이 들었네."
그날 밤, 재훈은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리고 썼다.
"2025년 9월.
나는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건 지금 내 우선순위가 아니야.'
혹은
'그건 내게 중요해. 시간을 만들어야지.'
이 작은 변화가 내 인생을 바꿨다.
변명을 버리고, 솔직해지는 것.
그게 변화의 시작이었다."
다음날 아침, 재훈은 6시에 일어났다.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길을 걷는 동안, 그는 미소를 지었다.
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상쾌했다. 그리고 재훈은 행복했다.
이제 그는 알았다.
시간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우선순위는 남이 정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솔직함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라는 걸.
2026년 1월 1일.
재훈은 새해 목표를 적었다.
"올해 목표:
책 24권 읽기 (달성 가능한 목표)
풀코스 마라톤 도전
부모님 한 달에 두 번 방문 (계속 지키기)
새로운 취미 하나 시작하기
솔직하게 살기 (가장 중요)"
그는 펜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
새해 첫날의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재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올해도 잘 부탁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다고.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걸 잊지 않겠다고.
솔직하게, 정직하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겠다고.
재훈은 일어나 운동복을 입었다.
새해 첫날의 운동.
그것은 변명이 아닌, 선택이었다.
끝
에필로그
1년 후, 재훈은 작은 블로그를 시작했다.
제목은 "우선순위의 기록".
첫 게시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 하냐?'
나는 대답한다.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핑계다.
돈이 없다는 말도 핑계다.
진실은 이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충분히 중요하지 않았던 것.
이 진실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당신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그 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변명을 버리고 우선순위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재훈의 변화는 작은 파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갔다.
변명의 예술이 아니라,
선택의 예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