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순위 혼란
우선순위 혼란
Q: 왜 중요한 것과 급한 것을 구분 못 할까요?
A: 모든 것이 급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아이젠하워 매트릭스입니다.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에 투자하세요.
2025년 4월, 서울 여의도의 한 광고 대행사. 오전 9시 30분, 회의실은 이미 전쟁터였다.
"서현 차장님, 오후 3시까지 클라이언트한테 제출해야 하는데 아직도 시안이 안 나왔어요!"
마케팅팀 막내 준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서현은 노트북 세 대를 동시에 열어놓고 있었다. 하나는 급한 메일을 쓰고, 하나는 발표 자료를 만들고, 하나는 클라이언트 채팅창이 떠 있었다.
"알았어, 지금 하고 있어. 근데 너 어제 부탁한 보고서는 했어?"
"아, 그게... 어제 갑자기 다른 일이 생겨서..."
"준호야, 그거 오늘 오전까지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할게요!"
서현은 33살, 광고 대행사에서 7년째 일하는 중간 관리자였다. 그녀의 하루는 항상 불타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쏟아지는 급한 일들. 그녀는 매일 그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상사인 김 이사였다.
"서현 차장, 지금 당장 내 자리로 와봐. 급해."
서현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는 반쯤 식은 커피. 아침에 탄 커피를 아직도 다 마시지 못했다.
김 이사의 자리로 가자,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서현 차장, 큰일 났어. A사에서 방금 연락 왔는데, 내일 프레젠테이션 일정을 오늘 오후로 당긴대."
"네? 오늘 오후요? 지금 2시간밖에 안 남았는데요!"
"알아. 근데 어쩌겠어. 클라이언트가 급하다는데. 할 수 있지?"
서현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늘 오후에는 이미 다른 미팅이 두 개나 잡혀 있었다. 그리고 준호의 보고서도 확인해야 하고, 3시 제출 건도 있고...
"차장님?"
"네, 네... 할게요."
"그래, 믿는다. 서현 차장이 최고야."
김 이사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서현은 웃을 수가 없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책상 위에는 또 다른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차장님, 급합니다. 전화 주세요 - 영업팀 과장"
서현은 포스트잇을 떼어내며 휴지통에 던졌다. 아니, 던지려다 멈췄다. 혹시 정말 급한 건 아닐까?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과장님. 무슨 일이세요?"
"아, 차장님! 다음 주 캠페인 건인데요, 예산 배분 좀 다시 짜주실 수 있어요?"
"다음 주 건이요? 그게 왜 지금 급해요?"
"그게... 그냥 미리 해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서현은 눈을 감았다. 다음 주 일이 왜 지금 급한가?
"과장님, 제가 지금 정말 급한 게 많아서요. 다음 주 일은 내일 봐도 될까요?"
"아, 네... 그럼요.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 서현은 책상에 엎드렸다.
'왜 모든 게 다 급할까?'
그녀의 일정표를 보면 빨간색 투성이었다. "급함", "긴급", "ASAP", "최우선"... 모든 일이 급했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일이 가장 급하다고 말했다.
오후 2시, 서현은 커피를 네 잔째 마시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수정하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카페인 과다였다.
"차장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인사팀 대리 민수였다.
"차장님, 팀원 면담 일정 잡으려고 하는데요. 지난달에 부탁드린 거..."
서현은 고개를 들었다.
"면담?"
"네, 분기별 팀원 면담이요. 분기가 이번 달에 끝나는데, 아직 한 명도 못 하셨잖아요."
서현은 기억을 더듬었다. 맞다. 분기별 팀원 면담. 회사의 정책이었다. 팀장들은 분기마다 팀원들과 1:1 면담을 해야 했다. 팀원들의 고민을 듣고, 성장을 돕고, 관계를 쌓는 시간.
하지만 서현은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죄송한데, 이번 주는 힘들 것 같아요. 너무 급한 일이 많아서..."
민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차장님, 그게... 지난달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랬어?"
"네. 그리고 지지난달에도요."
서현은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해요."
"네, 알겠습니다."
민수가 돌아가고, 서현은 다시 자료에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팀원 면담... 그게 중요한 건 알아. 근데 지금은 급한 게 너무 많아서...'
저녁 8시, 프레젠테이션은 무사히 끝났다. 클라이언트는 만족했다. 김 이사는 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서현 차장이야! 잘했어."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내가 쏠까?"
"죄송한데, 오늘은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피곤하지? 푹 쉬어."
사무실을 나서며, 서현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 다섯 통. 읽지 않은 메시지 스물세 개. 이메일 마흔일곱 개.
'내일 출근하면 또...'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집에 도착한 건 밤 10시. 혼자 사는 원룸. 불을 켜자, 책상 위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거실 한편에는 작년 생일에 받은 요가 매트가 접혀 있었다.
'운동 시작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언제? 시간이 없었다. 아니, 급한 일이 너무 많았다.
서현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을 켰다. 업무 메일이 또 와 있었다.
"차장님, 내일 아침 9시 미팅 준비 부탁드립니다 - 김 이사"
서현은 휴대폰을 던지고 싶었다. 하지만 대신 알람을 7시로 맞췄다.
'내일도... 불을 끄는 하루겠지.'
그녀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