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서재 (63)

마음이머문 흔적

by 이 범

“그 손님… 오늘도 다녀가셨어요.”
준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책방 구석에 앉아서,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더라고.”


소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문장 —
“마음은 조용히 흘러간다”
그 말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날, 소연은 노트를 꺼내
그 손님의 이야기를 글로 적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아픔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아픔을 조용히 바라봐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위로였다.”

준혁은 그녀의 글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말했다.
“소연아,
그 문장…
너 자신에게도 건네는 말 같아.”


소연은 잠시 멈칫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맞아.
그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지나온 시간들도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졌어.”

저녁이 되어 책방이 조용해지자,
준혁은 소연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엔 손수 만든 책갈피가 들어 있었다.
소연의 문장을 새긴,
작고 단단한 마음의 조각.

“이건…?”
소연이 놀란 듯 물었다.
준혁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책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네 문장을 조금 더 오래 남겨주고 싶었어.
그리고… 너에게도.”

밖은 가을의 밤공기가 부드럽게 퍼지고 있었고,
책방 안엔 잔잔한 기타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은
마음이 머문 흔적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더 깊이 이해했고,
그 마음은 또 다른 이야기를 향해
조용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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