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海棠花, Rosa rugosa)(2)

가시의진실

by 이 범

가시의 진실
환영이 사라지고 현실로 돌아왔다. 로제타가 비웃었다.
"그래서요?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게 자랑입니까? 중요한 것은 현재의 가치입니다. 당신네 해당화는 향수도 못 만들고, 화장품 원료로도 부적합하며, 가시만 많아 위험하지 않습니까?"
"가시?"
해당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가시를 말하는가?"
해당이 자신의 팔을 걷어 올렸다. 거기에는 수많은 상처 자국이 있었다.
"이 가시들은 천 년을 바닷바람과 싸워온 증거다. 태풍이 와도, 파도가 쳐도, 우리는 이 가시로 모래를 붙잡고 버텼다. 해안 사구를 지키고, 생태계를 보호했다."
"너희 서양 장미들은 온실에서 자라며 보호받았지. 하지만 우리는 영하 20도의 추위도, 40도의 폭염도, 태풍도 견뎌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장미의 힘이다!"
엘리자베스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약효나 쓰임새는 우리가 낫습니다. 로즈 오일, 로즈워터, 장미 향수..."
"약효?"
해당이 손에 든 붉은 열매를 들어 올렸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해당화 열매, 매괴(玫瑰)라고도 부르지. 이것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다."
해당이 열매를 하나 꺼내 잘랐다. 붉은 과육과 노란 씨앗이 드러났다.
"이 열매에는 비타민 C가 레몬의 20배, 폴리페놀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감기 예방, 피부 미용, 면역력 강화에 탁월하지."
"꽃은 어떤가. 해당화 꽃잎을 말려서 차로 마시면 소화를 돕고, 스트레스를 완화한다. 뿌리는 월경통과 류마티스에 쓰인다."
한의사 한 명이 관중석에서 일어났다.
"맞습니다! 한방에서 매괴화(玫瑰花)는 이기해울(理氣解鬱), 즉 기운을 조절하고 울체를 풀어주는 약으로 분류됩니다. 특히 여성 질환에 효과적이죠."
"하지만!"
해당이 목소리를 높였다.
"주의할 점도 있다. 해당화는 성질이 따뜻하기에, 열이 많은 사람은 과다 복용을 피해야 한다. 임산부도 신중해야 하지. 또한 꽃과 열매는 약이지만, 뿌리는 독성이 있어 반드시 전문가의 지도 아래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토종 약초의 지혜다. 약과 독의 경계를 명확히 알고, 체질에 맞게 사용하는 것."
로제타가 비꼬았다.
"그럼 뭐합니까? 시장에서는 우리 장미가 압도적이지 않습니까?"
"시장?"
해당이 차갑게 웃었다.
"그래, 너희는 시장을 장악했지. 하지만 너희가 알아야 할 게 있다."
해당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너희 화려한 장미들은 대부분 일 년생이다. 심고 피우고 죽는다. 하지만 우리 해당화는 다년생이다. 한번 뿌리내리면 수십 년을 산다."
"너희는 농약과 비료 없이는 못 자란다. 하지만 우리는 바닷가 척박한 모래땅에서도 자란다."
"너희는 병충해에 약하다. 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바다의 소금기도 견딘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해당이 단상 아래로 내려와 한국관으로 걸어갔다.
"지속가능성이다. 환경 보호다. 진정한 생명력이다."
결(結) - 바다의 장미
박람회 마지막 날, 특별 심포지엄이 열렸다.
"기후 위기 시대의 장미 재배"라는 주제였다. 세계 각국의 식물학자들이 모였다.
"최근 연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한국의 젊은 식물학자가 일어났다.
"해당화, 학명 Rosa rugosa는 내한성, 내염성, 내건성이 탁월합니다. 기후 변화에 가장 강한 장미 종 중 하나죠."
"더욱이 해당화는 질소 고정 능력이 있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해안 사막화 방지, 사구 안정화에 핵심 역할을 합니다."
프랑스 학자가 손을 들었다.
"우리도 최근 연구했습니다. 해당화의 유전자가 다른 장미 품종 개량에 매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강인함을 부여하는 유전자 말입니다."
영국 학자가 덧붙였다.
"사실 우리 잉글리시 로즈 중 일부는 해당화 유전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오스틴도 해당화의 가치를 인정했죠."
로제타와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붉어졌다.
심포지엄 후, 옥상 정원에서 해당은 홀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고향 동해 바다가 보였다.
"후회하지 않으시오?"
로제타가 다가왔다. 그녀의 오만함은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뭘 말인가?"
"더 화려해질 수 있었을 텐데. 개량하고, 교배해서 더 크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도 있었을 텐데..."
해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내 모습 그대로가 좋다."
"나는 바다의 장미다. 바닷바람에 뿌리를 내리고,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자란 장미. 화려하지 않아도, 향기가 강하지 않아도, 나는 이 땅에 속해 있다."
해당이 손에 든 해당화 열매를 바라보았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궁핍했다. 그들은 이 열매로 차를 끓이고, 잼을 만들고, 술을 담갔다. 이 꽃잎으로 염색을 하고, 화장수를 만들었지. 우리는 관상용이 아니었다. 생활의 일부였다."
"그것이 바로 토종의 의미다. 화려한 꽃병 속 장미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하는 동반자."
엘리자베스도 다가왔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소. 당신을 무시한 것, 사과하오."
해당이 미소 지었다.
"괜찮다. 너희도 각자의 역사와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다만 기억해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함이 아니라 생명력이고, 진정한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을."
한 달 후, 강릉 경포대 해변.
"해당화 복원 프로젝트 착공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환경부 장관이 삽을 들었다.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해당화 묘목을 들고 모래언덕으로 향했다.
"이제 해당화를 다시 심습니다. 우리의 해안을 지키고, 생태계를 복원하며, 미래 세대에게 아름다운 바다를 물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모래언덕에 해당화가 하나씩 심어졌다. 분홍빛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한 초등학생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해당화는 왜 바닷가에만 피어요?"
할아버지가 무릎을 굽혀 손자의 눈높이에 맞췄다.
"그건 말이야, 해당화가 바다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바다의 거친 파도도, 매서운 바람도, 모두 견디며 바다를 지켜주지."
"우와... 그럼 영웅이네요!"
"그래, 우리의 바다 영웅이지. 그리고 이 꽃의 열매는 먹을 수도 있단다. 할아버지 어릴 때는 이걸로 잼도 만들고, 차도 끓였어."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래, 가을에 열매가 열리면 함께 따서 만들어보자."
해변 끝자락에서 해당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고맙다... 다시 나를 기억해줘서..."
바닷바람이 불었다. 새로 심어진 해당화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마치 인사하는 것처럼.
무궁이 옆에 나타났다.
"잘했다, 해당아."
"선배님... 저는 그저 제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실함,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까."
해당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가 출렁이고, 갈매기가 날고, 해당화가 피어 있었다.
"나는 여기 있을 거예요. 천 년 전처럼, 지금처럼, 앞으로도. 이 바다를, 이 땅을 지키면서."
"왜냐하면 나는 해당화니까요. 바다의 장미니까요."
2026년 여름, 동해안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해당화가 만개한 것이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그들은 이제 알았다. 이 꽃이 단순히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다를 지키는 수호자이며, 생명을 구하는 약재이며, 천 년을 이 땅과 함께한 토종의 자긍심이라는 것을.
해당화의 꽃말처럼, 그들은 '온화함', '미인의 고운 얼굴', '기다림' 그리고 무엇보다 '강인한 아름다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바다 위로 석양이 지고 있었다. 황금빛 햇살이 분홍 해당화를 비추었다. 그 순간, 꽃들은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빛났다.
해당의 목소리가 바닷바람에 실려 퍼졌다.
"나는 장미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실한 장미. 약하지 않은, 바다의 장미."





海棠花讚歌(해당화찬가)
海岸沙丘玫瑰開(해안사구매괴개)
해안 모래언덕에 장미꽃 피어나니
粉紅花瓣迎波來(분홍화판영파래)
분홍 꽃잎이 파도를 맞이하네

千年堅守護疆土(천년견수호강토)
천 년을 굳건히 지켜 강토를 보호하고
風浪之中顯本色(풍랑지중현본색)
풍랑 속에서 본색을 드러내네

紅實纍纍藥食珍(홍실누누약식진)
붉은 열매 주렁주렁, 약과 식품의 보배요
理氣解鬱濟蒼生(이기해울제창생)
기운 다스리고 울체 풀어 백성을 구제하네

不爭妖艷只眞誠(부쟁요염지진성)
화려함을 다투지 않고 오직 진실되며
海棠傲骨永長存(해당오골영장존)
해당화의 당당한 기개 영원히 남으리라
해당화의 꽃말:
온화함 (溫和):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성품
미인의 얼굴 (美人): 소박하지만 진실된 아름다움
기다림 (等待): 인내심 있게 제자리를 지키는 자세
강인한 아름다움 (剛健之美): 역경을 이겨내는 생명력
매괴(玫瑰): 해당화의 한약명
해당(海棠): '바다의 사과나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바닷가 꽃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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