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309)

새로운방범

by seungbum lee

한 달 후, 헌병 보조원이 찾아왔다.
"이산갑, 나와."
"무슨 일입니까?"
"읍사무소에 가야 한다. 조사할 게 있다."
이산갑은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야마자키 건이 다시 불거진 것은 아닐까?
"계민아, 걱정 마라. 금방 다녀올게."
이산갑은 아들과 아내를 안심시키고 헌병을 따라갔다.
읍사무소에는 일본인 읍장이 앉아 있었다.
"이산갑, 앉게."
"네."
"자네, 최근에 토지 명의를 아들에게 많이 옮기고 있다던데?"
"네, 그렇습니다."
"이유가 뭔가?"
"제가 나이가 들어서요. 미리 물려주려고요."
읍장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산갑을 바라봤다.
"자네 나이가 몇인가?"
"마흔여덟입니다."
"마흔여덟이면 한창 때 아닌가? 왜 벌써 물려주려고 하나?"
이산갑은 머뭇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조선에서는 일찍 물려주는 게 풍습입니다."
"흠... 그런가?"
읍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 질문이 날아왔다.
"그런데 자네, 몇 달 전에 야마자키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나?"
이산갑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저는...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그래, 알고 있네. 하지만 의심은 여전히 있네. 혹시 재산을 빼돌리려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제 아들에게 물려주는 건데, 어떻게 빼돌리는 겁니까?"
"재산을 아들 명의로 해놓고, 자네가 독립운동 하다가 잡히면 재산 몰수를 피할 수 있지 않은가?"
이산갑은 할 말을 잃었다. 면장의 추리가 정확했다.
"저는... 독립운동 같은 거 안 합니다."
"정말인가?"
"네, 정말입니다."
읍장은 한참을 이산갑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좋아. 믿겠네. 하지만 앞으로 토지 명의 변경은 한 달에 한 번만 하게. 그리고 매번 면사무소에 와서 이유서를 제출하게."
"네... 알겠습니다."
이산갑은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됐어요?"
강지윤이 달려왔다.
"일단은 넘어갔소. 하지만 앞으로 더 조심해야 하오."
"어떻게 할 건데요?"
"속도를 더 늦춰야 하오. 한 달에 한 필지만 옮기고, 매번 이유서를 쓰고."
계민이 방에서 나왔다.
"아부지, 무슨 일이세요? 헌병한테 끌려가셨다면서요?"
"아니다, 계민아. 걱정 마라. 토지 명의 때문에 확인하는 거였어."
"토지 명의요?"
"그래. 아버지가 우리 땅을 조금씩 네 이름으로 바꾸고 있단다."
계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직 제가 어린데..."
"어리지 않다. 너는 이제 어른이야. 그리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하는 거야."
계민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부지... 고맙습니다."
"고맙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이산갑의 마음은 무거웠다. 읍장의 의심을 받는 이상, 앞으로 일이 순조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일주일 후, 이산갑은 아내와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여보, 이대로는 안 되겠소. 면장이 눈치를 채고 있소."
"그럼 어떻게 해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오. 명의를 바꾸지 말고, 차명으로 해두는 거요."
"차명이요?"
"내 명의로 두되, 실제로는 계민이가 주인이라는 문서를 만들어두는 거요. 비밀 계약서 같은 거."
강지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나을 것 같네요. 하지만 그 문서를 어떻게 법적으로 인정받죠?"
"지금은 법적으로 인정받을 필요가 없소. 일본이 망하고 조선이 독립하면, 그때 가서 인정받으면 되오."
"일본이 망한다고요?"
이산갑은 목소리를 낮췄다.
"여보, 세계 정세를 보시오.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있소. 몇 년 안에 망할 거요."
강지윤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그렇소. 그러니까 우리는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오. 지금은 재산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오."
이산갑은 그날 밤, 비밀 문서를 작성했다.
"나 이산갑은 본인 소유의 모든 토지와 가옥을 아들 이계민에게 양도한다. 이 문서는 일본 통치가 끝나는 날 효력을 발생한다."
그리고 문서 뒤에 이장과 마을 유지 세 명의 도장을 받았다.
"이산갑, 이게 무슨 문서요?"
이장이 물었다.
"제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비밀 문서입니다. 증인이 되어주십시오."
"알겠소. 자네 아들은 착한 아이니까, 잘 물려받을 거요."
문서를 완성한 후, 이산갑은 계민을 불렀다.
"계민아, 이걸 받아라."
"이게 뭐예요?"
"우리 집안의 모든 재산 목록이다. 그리고 너에게 물려준다는 비밀 계약서다."
계민은 문서를 펼쳐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이렇게 많아요?"
"우리 집안은 가난하지 않단다. 할아버지 때부터 모은 재산이야."
"하지만 왜 비밀로 해야 해요?"
"일본 놈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 그래. 조선이 독립하면, 그때 가서 당당하게 네 이름으로 바꿀 거야."
계민은 아버지를 꼭 안았다.
"아부지... 저 같은 아들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너는 내 아들이잖니.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거야."
강지윤도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
"계민아, 우리가 혹시라도 무슨 일을 당하면, 이 문서를 꼭 지켜야 한다. 이게 우리 집안의 미래야."
"네, 어머니. 꼭 지킬게요."
그날 밤, 이산갑 부부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다. 비록 명의는 바꾸지 못했지만, 최소한 재산을 지킬 방법을 찾았으니까.
며칠 후, 이산갑은 또 다른 조치를 취했다. 은행 예금 중 일부를 금으로 바꿔서 땅에 묻어두었다.
"여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만약을 위한 거요. 은행이 망하거나, 일본 놈들이 예금을 동결시킬 수도 있소."
"그럼 이 금은 어떻게 해요?"
"계민이만 알고 있으면 되오. 나중에 이 금으로 장사를 시작하든, 땅을 사든, 알아서 하라고."
이산갑은 계민을 데리고 뒷산으로 갔다.
"계민아, 여기를 잘 봐라. 저 큰 소나무가 보이지?"
"네, 아부지."
"저 소나무에서 동쪽으로 열 걸음, 그리고 남쪽으로 다섯 걸음 간 곳을 파면, 금이 묻혀 있다."
"금이요?"
"그래. 우리 집안의 비상금이야. 절대 잊으면 안 된다."
"네, 절대 잊지 않을게요."
아버지와 아들은 손을 잡고 산을 내려왔다.
그렇게 1943년이 지나가고 1944년이 왔다.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졌고, 조선에도 공습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산갑은 계민에게 말했다.
"계민아, 이제 전쟁이 거의 끝나간다. 조금만 더 버티자."
"네, 아부지. 그런데 정말 일본이 질까요?"
"질 거야. 미국이 너무 강해. 일본은 이미 지고 있어."
계민은 아버지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매일 밤 기도했다.
'제발 전쟁이 빨리 끝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가족이 무사하게 해주세요.'
1944년 말, 이산갑은 마지막으로 큰 결정을 내렸다.
"여보, 우리 집을 계민이 명의로 바꿉시다."
"집을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요?"
"명의만 바꾸는 거요. 우리는 계속 여기서 살고. 하지만 법적으로는 계민이가 주인인 거지."
"위험하지 않을까요?"
"집은 토지보다 덜 의심받을 거요. 그리고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소. 일본이 곧 망할 거요."
이산갑은 면사무소에 가서 가옥 명의를 계민 이름으로 바꿨다. 면장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막을 이유는 없었다.
"이산갑, 자네 정말 아들에게 모든 걸 물려주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자네는 뭐 먹고 살려고?"
"아들이 저를 부양할 겁니다."
면장은 코웃음을 쳤다.
"조선인들은 참 이상해. 자식한테 모든 걸 주고..."
이산갑은 참았다. 화를 내봐야 소용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산갑은 계민에게 말했다.
"계민아, 이제 이 집은 네 거야."
"네? 제 거요?"
"그래. 법적으로는 네가 주인이야. 하지만 우리는 계속 여기서 함께 살 거다."
"아부지...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다. 우리가 혹시라도 재산을 몰수당하면, 최소한 너는 살 집이 있어야 하니까."
계민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1944년이 저물어갔다. 이산갑 부부는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재산을 아들에게 넘기고 있었다. 비록 모든 명의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비밀 문서와 금, 그리고 집만큼은 확보했다.
"여보, 우리 잘하고 있는 거겠죠?"
어느 날 밤, 강지윤이 물었다.
"잘하고 있소. 우리는 부모로서 할 일을 하고 있소."
"계민이가 나중에 이 모든 걸 잘 쓰겠죠?"
"그럴 거요. 계민이는 착한 아이니까."
부부는 손을 꼭 잡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지만, 최소한 아들의 미래만큼은 지켜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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