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함께한 노부부의 러브레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by 이 범


사랑하는 여보에게,
오늘 아침 당신이 잠든 모습을 보았어요. 평화로운 얼굴로 잠들어 있는 당신을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당신은 수줍음 많은 청년이었지요. 지금도 당신은 여전히 내게 그 수줍은 청년입니다.


50년이라는 세월이 믿기지 않습니다. 어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원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당신 없는 내 삶을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날, 당신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커피를 엎지르기도 했었지요.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어요. 그때 나는 알았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웃음이 끊이지 않을 거라고요.


결혼식을 올리던 날, 내 손을 잡은 당신의 손이 떨리고 있었어요. 나도 떨렸답니다. 하지만 그 떨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었어요. 당신과 함께 시작할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였지요.


신혼 시절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당신도 편지에 쓰셨듯이, 좁은 셋방에서 시작했지요.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 중 하나였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곳이든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당신이 새벽같이 일하러 나가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추운 겨울날에도, 더운 여름날에도 당신은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어요. 늦은 밤 피곤한 몸으로 돌아와도 내게 미소 지어주던 당신. 그 미소가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첫아이를 낳던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진통이 심할 때 당신의 손을 너무 세게 잡아서 손톱자국이 남기도 했지요. 하지만 당신은 아파하지 않고 계속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주었어요. 그리고 아기가 태어났을 때 당신이 흘린 그 눈물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밤새 아픈 아이를 돌보고,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공부를 가르치고... 때로는 너무 지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당신은 늘 곁에 있어주었지요. 퇴근 후 아이들과 놀아주고, 주말에는 함께 공원에 가고, 아이들의 학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어요.


당신의 사업이 어려웠던 시절, 나도 힘들었습니다. 당신이 밤마다 고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어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내 믿음은 틀리지 않았지요. 당신은 결국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당신은 편지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인내심이 있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당신에게서 배운 것이에요. 당신이 나에게 보여준 그 끝없는 인내와 이해가 있었기에, 나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중년이 되어 건강이 나빠졌을 때, 당신의 사랑을 가장 깊이 느꼈어요. 병원을 오가며 지친 표정으로도 내게 웃어주려 애쓰던 당신. 밤새 내 곁을 지키며 간호해주던 당신. 그때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나의 전부라는 것을요.


이제 우리에게는 손주들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요. 세월은 정말 빠르지요. 어느새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나, 우리 둘만의 시간은 여전히 소중합니다.


저녁 식사 후 함께 산책하는 시간, 손을 잡고 걷는 그 시간이 좋아요. 말이 없어도 편안한 그 침묵. 50년을 함께 산 부부만이 나눌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이지요.


사랑하는 여보, 나도 고백할 것이 있어요. 나 역시 완벽한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당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할 때도 있었어요. 당신이 피곤해서 일찍 자고 싶을 때도 이것저것 부탁하곤 했지요.


시어머니를 모실 때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때로는 힘들고 지쳤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늘 이해해주었고, 중간에서 잘 조율해주었어요. 당신의 그 배려가 있었기에 우리 가족이 평화로울 수 있었습니다.


50년을 함께 살면서 배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은 로맨틱한 순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랑은 매일의 작은 배려, 서로를 향한 존중, 함께 겪는 시련 속에서 자란다는 것을요.


당신이 아침마다 내게 커피를 타주는 것,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먼저 챙겨주는 것, 추울 때 내 어깨에 숄을 걸쳐주는 것. 이런 작은 것들이 모여 우리의 사랑을 만들어왔습니다.


요즘은 당신과 함께 보내는 매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져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하는 오늘이 어제보다 더 사랑스럽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가끔 당신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때가 있어요. 나도 그렇고요. 하지만 괜찮아요. 우리가 함께 만든 추억은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질리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이야기할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신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 행복합니다. 주름이 늘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몸이 예전 같지 않아도 당신과 함께라면 괜찮아요. 우리는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 당신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밤에 당신의 "잘 자"라는 말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이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남편, 나의 인생의 동반자여. 당신을 만나 결혼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당신과 함께한 50년,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보물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웃음도 눈물도, 모두 함께해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과 함께 걷고 싶어요. 손을 잡고, 천천히, 우리만의 속도로. 그리고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당신과 함께이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당신의 아내 올림
이 두 통의 편지는 서랍 깊숙이 함께 보관되어, 가끔씩 노부부가 꺼내 읽으며 미소 짓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손주들에게도 전해져,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가보가 될 것입니다.


월, 화,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