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을 함께한 노부부의 러브레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by 이 범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 아침 당신이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당신의 은발을 비추었지요.


그 순간 나는 문득 50년 전, 처음 당신을 만났던 그날을 떠올렸습니다. 당신의 검은 머리가 바람에 날리던 그 봄날을요.


세월이 우리의 겉모습을 바꾸어 놓았지만, 당신을 바라보는 내 마음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깊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50년이라는 세월을 돌이켜보니,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결혼한 첫해, 나는 변변한 직장도 없이 당신을 좁은 셋방으로 데려왔었지요. 당신은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좁은 방을 우리만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낡은 커튼을 직접 손질하고, 작은 화분에 꽃을 키우며 미소 짓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의 일도 떠오릅니다. 첫아이를 낳던 날 밤, 나는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한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것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고통 속에서도 내 손을 꼭 잡고 "우리가 함께라면 괜찮아요"라고 말해주었지요. 그 말이 지난 50년간 내가 힘들 때마다 떠올린 주문이 되었습니다.


사업이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빚에 쪼들리고, 밤잠을 설치며, 때로는 내일이 두려웠던 그 시절. 나는 가장으로서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늘 내 편이었습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우리 가족의 건강과 사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라던 당신의 말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우리는 또 다른 시련을 겪었습니다. 큰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며 방황할 때, 당신은 밤마다 기도하며 눈물 흘렸지요. 나는 그저 화만 내고 소리를 질렀지만, 당신은 참을성 있게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당신의 그 인내와 사랑이 결국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끌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을 보내드릴 때도 당신은 곁에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말없이 내 옆에 앉아 함께 있어주었지요. 때로는 말보다 그런 침묵의 동행이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중년이 되어서는 또 다른 도전이 있었습니다. 건강 문제로 당신이 병원 신세를 질 때, 나는 처음으로 당신 없는 삶을 상상했고 두려웠습니다. 당신을 간호하며 깨달았습니다. 내 삶에서 당신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당신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요.


이제 우리는 모두 손주들에게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란 집은 이제 손주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당신에게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당신이 쏟았던 모든 사랑이 이렇게 대를 이어 흐르고 있으니까요.


사랑하는 당신,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완벽한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고집이 세어 당신을 힘들게 했고, 화를 내며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늘 들어주지 못했고, 때로는 당연하게 여기며 감사를 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든 순간들이 지금은 후회로 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늘 너그럽게 용서해주었습니다. 내 부족함을 채워주었고, 내 거친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어주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50년을 살아오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처음의 열정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사랑은 매일의 작은 선택들, 서로를 위한 작은 희생들,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순간들의 축적입니다. 당신과 함께한 50년은 그런 사랑의 증거입니다.


요즘 나는 당신의 작은 습관들이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아침마다 창가에 앉아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모습, 손주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모습, 밤마다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들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당신이 가끔 예전 일들을 까먹을 때가 있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한 시간만큼은 절대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니까요.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당신과 함께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이 옆에 있고, 밤에 잠들 때 당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의 동반자, 나의 친구여. 당신과 함께한 50년,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모든 날들에 감사합니다. 당신은 내 삶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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