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의시간
화장실에서 폰
Q: 왜 화장실에서도 폰을 볼까요?
A: 멍 때리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화장실을 "멍 때리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뇌에게도 공백이 필요합니다.
채워진 순간
2026년 4월, 서울 마포구의 한 광고 기획사. 29살 박준혁은 화장실 칸에 앉아 핸드폰을 스크롤하고 있었다. SNS, 뉴스, 유튜브 쇼츠.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준혁아, 안에 있어?"
동료 민수의 목소리에 준혁은 놀라 대답했다.
"응, 잠깐만!"
준혁은 서둘러 일을 마치고 나왔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민수가 물었다.
"너 화장실에서 뭐 해? 맨날 오래 있어."
"아, 그냥... 좀 쉬었어."
거짓말이었다. 쉰 게 아니라 핸드폰을 본 거였다.
준혁은 자리로 돌아와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집중이 안 됐다. 10분마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새로운 알림, 새로운 피드, 새로운 영상.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될까.'
점심시간, 준혁은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물론 핸드폰을 보면서. 음식 맛은 기억나지 않았다. 화면만 보였으니까.
같은 시각, 홍대 근처의 한 카페. 26살 정수민은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친구가 말하는 동안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수민아, 듣고 있어?"
"응? 아, 미안. 뭐라고?"
"너 아까부터 계속 핸드폰만 봐."
"미안해. 중요한 메시지 와서."
거짓말이었다. 중요한 메시지는 없었다. 그냥 핸드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한숨을 쉬었다.
"수민아, 요즘 너 좀 이상해. 맨날 핸드폰만 봐."
"그래? 미안. 습관인가 봐."
하지만 수민은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불안했다. 뭔가 놓칠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준혁은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웠다. 피곤했다. 하지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유튜브를 켰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을 봤다. 한 개, 두 개, 세 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헐, 벌써?'
준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뇌가 여전히 각성 상태였다.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수민도 비슷했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봤다. SNS를 무한 스크롤했다. 별로 흥미롭지도 않은 게시물들을 봤다. 그냥 손가락이 움직였다.
새벽 2시, 수민은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하지만 5분 후 다시 집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4월 둘째 주, 준혁은 회의 중에 화장실에 갔다. 칸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꺼냈다. 자동이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손이 움직였다.
SNS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 왜 이러고 있지?'
준혁은 핸드폰 화면을 보며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화장실에서도, 식사 중에도, 심지어 걸으면서도 핸드폰을 보게 됐을까?
회의실로 돌아가는 길에 민수가 물었다.
"준혁아, 너 화장실 오래 있었네. 괜찮아?"
"응. 근데 민수야, 너는 화장실에서 뭐 해?"
"뭐 하긴, 일 보지. 왜?"
"핸드폰은 안 봐?"
"가끔. 근데 너는?"
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수민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최근 불안감이 심해져서였다.
"어떤 증상이 있으세요?"
"집중이 안 돼요. 계속 핸드폰을 보게 돼요."
"어느 정도로요?"
"거의... 모든 순간이요. 화장실에서도, 밥 먹을 때도, 친구랑 있을 때도."
상담사가 메모를 하며 물었다.
"핸드폰을 보지 않으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불안해요. 뭔가 놓칠 것 같아요."
"멍 때릴 수 있으세요?"
수민은 잠시 생각했다.
"못 하는 것 같아요. 멍 때리면... 불편해요."
"왜 불편할까요?"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요."
상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민 씨, 뇌에게도 공백이 필요해요."
"공백이요?"
"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요."
4월 셋째 주, 준혁은 우연히 온라인 기사를 봤다.
"현대인의 디지털 과부하 - 멍 때릴 시간의 중요성"
기사를 읽으며 준혁은 놀랐다.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뇌는 끊임없는 정보 처리로 지쳐간다. 공백의 시간이 없으면 창의성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감소하며, 불안이 증가한다."
'나한테 공백의 시간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없었다. 항상 뭔가를 보고, 듣고, 흡수하고 있었다.
준혁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화장실에 핸드폰을 안 가지고 가는 것.
다음 날, 준혁은 화장실에 갔다. 핸드폰을 책상에 두고. 칸에 앉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 하지?'
손이 자꾸 주머니를 더듬었다. 핸드폰을 찾는 손.
준혁은 그냥 앉아 있었다. 멍하니. 처음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 프로젝트...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핸드폰을 보지 않자, 뇌가 자유로워졌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민도 상담사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실험해보세요. 화장실을 '멍 때리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예요."
"핸드폰을 안 가져가라는 거예요?"
"네. 그리고 그 시간에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그냥 흐르는 대로 두세요."
"어렵겠어요."
"처음엔 어렵죠. 하지만 해볼 가치가 있어요."
첫날, 수민은 화장실에 핸드폰 없이 갔다. 불안했다. 손이 떨렸다.
'뭐 하지? 그냥 앉아 있어야 하나?'
수민은 천장을 봤다. 벽을 봤다. 발을 봤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숨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호흡 소리.
'이상하게 평화롭네...'
공백의 발견
5월 첫째 주, 준혁은 일주일 동안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준혁아, 너 요즘 아이디어가 좋던데?"
팀장이 말했다.
"제가요?"
"응. 이번 주에 낸 기획안들 다 참신해. 어떻게 한 거야?"
준혁은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멍 때리면서 떠올린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냥... 생각할 시간을 가졌어요."
"생각할 시간?"
"네. 핸드폰 안 보고요."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습관이네. 요즘 다들 너무 핸드폰만 보니까."
점심시간, 준혁은 또 실험을 했다. 밥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보지 않는 것.
식당에서 혼자 앉아 밥을 먹었다. 핸드폰 없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을 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준혁은 그냥 밥을 먹었다. 음식 맛에 집중했다. 된장찌개가 짰다. 밥이 따뜻했다. 김치가 아삭했다.
'음식이 이런 맛이었구나.'
밥을 다 먹고 나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만족스러웠다. 핸드폰을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
수민도 변화를 경험했다. 화장실에서 멍 때리는 시간이 점점 편해졌다.
"이상하게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요."
수민이 상담사에게 말했다.
"그럴 거예요. 뇌가 쉬니까요."
"근데 신기한 게, 멍 때리는 동안 자꾸 생각이 떠올라요."
"어떤 생각이요?"
"오래전 일들이요.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요."
상담사가 웃었다.
"그게 정상이에요. 뇌가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이거든요."
"그래요?"
"네. 우리가 멍 때릴 때, 뇌는 오히려 활발하게 일해요. 기억을 정리하고, 연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요."
수민은 신기했다.
"그럼 멍 때리는 게 좋은 거네요?"
"당연하죠. 필수예요."
5월 둘째 주, 준혁은 출퇴근길에서도 실험을 확대했다.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보지 않는 것.
첫날, 지하철에 탔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봤다. 준혁만 고개를 들고 있었다.
창밖을 봤다. 터널이 지나가고, 역이 보이고, 사람들이 오르내렸다.
한 할머니가 탔다. 자리가 없었다. 준혁은 자리를 양보했다.
"고맙습니다, 청년."
"아니에요."
평소 같았으면 핸드폰을 보느라 할머니를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걸 놓치고 살았구나.'
수민은 친구와의 만남에서도 변화를 시도했다.
"지원아, 오늘은 우리 핸드폰 안 보면서 얘기하자."
"응? 왜?"
"그냥... 제대로 대화하고 싶어서."
"수민아, 너 좀 달라진 것 같아."
"그래?"
두 사람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했다.
"지원아, 너 요즘 어때?"
"음...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고 있어. 상사가 너무 빡세."
"많이 힘들어?"
"응. 근데 수민아, 너는 요즘 어때? 표정이 밝아 보여."
"나? 음... 최근에 멍 때리는 법을 배우고 있어."
"멍 때리는 법?"
수민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안 보는 것, 밥 먹을 때 핸드폰을 안 보는 것.
"신기하게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도 잘 돼."
"나도 해봐야겠다. 나도 요즘 너무 핸드폰만 보는 것 같아."
5월 셋째 주, 준혁은 회사 동료들에게 자신의 실험을 이야기했다.
"나 요즘 화장실에서 핸드폰 안 봐."
"왜? 고장 났어?"
"아니. 멍 때리려고."
동료들은 웃었다.
"준혁아, 멍 때리는 게 뭐가 좋아?"
"좋아.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집중도 잘 되고."
민수가 관심을 보였다.
"진짜? 나도 해볼까?"
"해봐. 처음엔 좀 불편한데, 익숙해지면 괜찮아."
다음 날, 민수가 다가왔다.
"준혁아, 진짜 신기해. 어제 화장실에서 핸드폰 안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프로젝트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그치? 나도 그랬어."
"근데 왜 그런 거야?"
준혁은 며칠 전 읽은 기사를 떠올렸다.
"뇌가 쉬면서 정보를 정리하나 봐. 그러면서 새로운 연결이 생기는 거지."
수민은 상담을 계속 받으며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수민 씨, 요즘 어떠세요?"
"좋아요. 핸드폰 사용 시간이 많이 줄었어요."
"얼마나요?"
"하루에 6시간에서 3시간으로요."
"대단하네요. 어떻게 하셨어요?"
"화장실, 식사 시간, 출퇴근길에서 핸드폰을 안 봤어요. 그리고..."
수민은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잠자기 전에도 안 봤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근데 이제는 오히려 편해요. 멍 때리는 게."
"좋은 습관이 생긴 거네요."
"네. 그리고 신기한 게, 불안감도 줄었어요."
"왜 그럴까요?"
"뇌가 쉬니까요. 항상 정보에 시달리지 않으니까."
5월 마지막 주, 준혁은 카페에서 우연히 수민을 만났다. 둘 다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실례지만, 여기 콘센트 같이 써도 될까요?"
"아, 네."
잠시 후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 많죠?"
"그러게요. 저는 프리랜서라서 자주 와요."
"저는 회사원인데, 오늘은 재택이에요."
준혁이 수민의 노트북 옆에 놓인 핸드폰을 봤다. 화면이 꺼져 있었다.
"핸드폰 안 보시네요."
"네. 요즘 안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도요!"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혹시... 멍 때리는 거 좋아하세요?"
수민이 물었다.
"네! 어떻게 아셨어요?"
"저도 요즘 멍 때리는 연습 중이거든요."
준혁과 수민은 각자의 경험을 나눴다.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안 보는 것, 밥 먹을 때 핸드폰을 안 보는 것, 멍 때리면서 떠오르는 생각들.
"신기하게 비슷하네요."
"그러게요. 저는 이걸 '공백의 시간'이라고 불러요."
"공백의 시간?"
"네. 뇌에게 주는 공백이요."
준혁은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좋은데요. 저도 그렇게 부를게요."
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했다.
"혹시 관심 있으면, 같이 모임 만들어볼래요? 멍 때리기 모임."
"멍 때리기 모임이요?"
"네. 핸드폰 없이 그냥 모여서 멍 때리는 거요."
수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어요. 해봐요."